‘가정 보호’ 못하는 가정보호재판

남편 상담 안받고 폭행 반복
과태료 500만원 유일한 제재
어차피 한 집안 돈 신고 안해

처벌보다는 교육과 상담을 통한 가정 재건에 목적을 둔 ‘가정보호사건’이 정작 폭력 행위자를 보호해주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1998년 남편 A 씨와 결혼한 B 씨는 날이 갈수록 술만 마시면 폭력을 행사하고 물건을 집어 던지는 남편을 참다못해 결국 경찰에 신고했고, A 씨는 2014년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돼 재판을 받게 됐다. A 씨가 알코올중독 치료와 상담을 받으면 충분히 폭력 성행을 개선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법원은 A 씨에게 알코올중독 치료와 80시간의 수강 명령 및 상담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A 씨는 치료와 수강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지정된 상담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 음주 후 폭행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B 씨는 수사 기관에 먼저 적극적으로 알릴 수 없었다. 보호 처분을 불이행할 경우 A 씨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하는데, 결국 이 돈은 B 씨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A 씨의 보호처분 불이행이 적발되자 오히려 B 씨는 “모두 없던 일로 하면 안 되겠느냐”며 하소연을 했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가정보호사건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정작 보호처분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곤란을 겪는 가정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보호사건은 2005년에만 해도 약 5000건 정도였지만, 지난해 2만 건이 접수될 정도로 대폭 증가했다.

하지만 상담이나 교육, 치료 등 보호처분을 위반했을 경우 처벌할 수 있는 제재수단이 마땅히 마련돼 있지 않아 폭력 행위자 중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권양희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는 “보호처분 불이행 시 거의 유일하게 제재할 수 있는 조치인 과태료도 결국 부부 공동 재산에서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원치 않아 하는 경우가 많다”며 “또 보호처분 중 6호에 해당하는 ‘감호시설 위탁’은 법 조문에만 있고, 정작 국내에 감호시설이 한 군데도 없어 해당 처분을 내릴 수 없다”고 밝혔다. 상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장에서 일하는 상담 전문인력이 워낙 부족하고, 프로그램도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부모-자식 간 폭력으로 상담 처분을 받은 사람들에게 부부 금실에 대한 상담을 해 주는 곳이 있을 정도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관계자는 “건강한 가정을 재건한다는 목적으로 보호 처분을 하는 것은 좋은 시도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처분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올바른 제재 방식과 적절한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wh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