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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6년 04월 06일(水)
계산으로 환원된 ‘미래 지성’ 앞에… 연약하고 가여운 ‘인간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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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송재우 기자 jaewoo@munhwa.com

김범준의 과학 이야기 - ⑫ 집중과 직관 : 인간 지성의 한계

좁고 깊은 ‘집중’· 넓고 얕은 ‘직관’
인간은 둘 중 한가지만 사용하지만
인공지능은 ‘넓고 깊게’ 볼 수 있어

우리가 ‘알파고 충격’서 배울 것은
바둑 잘 두는 기계 만드는게 아니라
알파고를 가능하게 했었던 시스템


세기의 대결이 끝났다. 알파고와 이세돌 얘기다. 요새 과학자들 두서넛만 모이면 어디 가나 알파고 이야기였다. 어지럽게 싸움이 벌어진 바둑판의 한 부분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하는 이세돌처럼, 알파고가 보여준 놀랍도록 발전한 인공지능에서 과학자들은 눈을 쉽게 다른 곳으로 돌리지 못하고 있다. 정보처리 용량이 그리 크지 않은 인간의 지성은 외부의 모든 다양한 정보에 고루 눈을 두지 못한다. 독자도 한번 해보시길. 책을 펼치고 왼쪽 면의 글에 눈길을 고정하고 동시에 오른쪽 면의 글씨가 무엇인지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각정보의 엄청난 양을 처리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사람의 뇌는, 아주 좁은 부분에 시각을 집중함으로써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이다. 커피숍에서 마주 앉은 친구와 깊은 대화에 빠지면 방금 전까지 시끄럽게 느꼈던 옆 테이블 대화의 내용이 전혀 들리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혼란스럽게 들어오는 청각정보를 남김없이 모두 처리하는 대신, 사람의 귀는 집중을 통해 듣고자 하는 말만 들을 수 있다. 사람은 결국 정보처리 용량의 한계를 이처럼 의식의 ‘집중’으로 극복하는 존재다.

정보처리 용량을 얼마든지 늘릴 수 있는 인공지능은 다르다. 많은 정보에 동시에 집중할 수 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좁고 깊게’와 ‘넓고 얕게’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인공지능은 ‘넓고 깊게’ 볼 수 있는 존재라는 말이다. 어지럽게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 바둑판의 한 부분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하는 이세돌이 깜짝 놀라는 몇 장면을 보았다. 알파고가 정말 쿨하게 지금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부분에서 손을 빼서, 바둑판의 다른 곳에 수를 둘 때다. 사람은 이렇게 두지 않는다. 아니, 이렇게 두지 못한다. 검은 돌과 흰 돌이 놓인 바둑판 전체는 지금까지 두어진 수순의 역사에 관계없이 ‘지금 현재’로만 하나의 전체로 알파고에게 다가온다. 알파고의 반상에 과거는 없다. 역사도 없다. 알파고는 자기가 방금 전에 어디에 돌을 두었는지와 무관하게, 현재의 바둑판 반상 전체로부터 다음 한 수를 결정한다. 쿨하게.

바둑의 규칙은 정말 간단하다. 희고 검은 것은 돌이니 내 돌, 네 돌을 갈라 둘이 번갈아가며 검은 두 선이 만나는 위치에 돌을 하나씩 내려놓으면 된다. 내 돌로 상대 돌을 못 도망가게 둘러싸면 상대의 돌은 내가 들어내 내 집이 된다. 그리고 집이 적은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이긴다는 것이 약속이다. 규칙은 간단하지만 바둑판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정말 무궁무진하다. 바둑을 어려서부터 수없이 둔 프로기사라도 바둑판의 모든 가능성을 경험할 수는 없다. 처음 맞닥뜨린 낯선 새로운 상황에서 프로기사들은 ‘직관’을 이용한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직관’이 엄청 신비로운 것은 아니다. 결국 과거의 수많은 경험을 일반화해서 새로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직관’이다. 아무리 바둑 신동이라도 태어나서 둔 첫 판에 프로기사를 이길 수 없고, 아무리 과학 천재라도 물리학을 공부한 경험이 전혀 없이 힉스 입자를 생각해내 노벨상을 받을 수는 없다. 결국 ‘직관’은 축적된 경험 위에 자리 잡은, 정제되고 결정화된 일반화의 힘에 붙은 다른 이름일 뿐이다. 사람은 태생적인 정보처리 능력의 한계를 ‘집중’으로 좁혀 해결하듯이,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깊이 따져보는 데서 발생하는 시간 자원의 과도한 소모를 ‘직관’이라는 무디지만 빠른 도구로 대치해 해결한다. 즉, 좁고 깊게 사고하는 것이 집중이라면, 넓고 얕게 사고해 빠른 결정을 이끌어내는 힘이 직관이다.

외부에서 끊임없이 들어오는 엄청난 시각정보의 양에 맞서, 사람은 시간적으로도 정보의 양을 줄인다. 사람의 뇌는 순간순간의 정보를 모두 처리할 수 없어, 시간의 축을 따라 띄엄띄엄 정보를 끊어 처리한다. 1초에 24장의 정지화면을 보여줘도 우리 뇌는 영화 스크린 위에서 무언가가 연속적으로 움직인다고 장면을 이어서 인식하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다른 얘기도 있다. 사람은 빠르게 움직이는 테니스공의 매순간의 위치를 연속적으로 정확히 인식할 수 없다. 테니스 심판은, 공이 바닥에 닿은 그 찰나의 순간에 공의 위치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다. 바로 이 이유로 설명할 수 있는, 테니스 심판의 오심에 관한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있다. 공이 사실은 경기장 안에 떨어졌는데도 밖으로 나가 아웃되었다고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반대로 사실 공이 경기장 밖에 떨어졌는데도 안에 떨어졌다고 잘못 판단하는 경우보다 훨씬 많다. 땅에 닿은 정확한 시간의 정보를 포착하지 못한 사람의 뇌가 두 시점의 공의 위치를 이어서 대충 어림짐작하다 보니 생기는 오류다. 시각정보를 사람의 뇌가 처리하는 과정에서, 쳐다보는 시야를 공간적으로 좁혀 ‘좁고 깊게’ 보는 것이 ‘집중’이라면, 시간적인 측면에서 정보의 양을 줄여 띄엄띄엄 정보를 처리하는 사람 뇌의 전략은 어찌 보면 ‘얕고 넓게’ 보는 ‘직관’을 닮았다. 소모할 수 있는 자원의 양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면 ‘직관’은 필요 없다. 바둑 한 수를 두는 데 무한대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알파고 아닌 인간 바둑 기사도, 말 그대로 모든 수를 하나도 빠짐없이 두어보고 그중 가장 좋은 다음 수를 결정하면 되니까 말이다. 무한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혹은 정보처리의 시간이 0으로 수렴해 얼마든지 빨리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면, 대충 대충 빠르기는 하지만 틀릴 수 있는 직관을 이용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아주 느린 사람의 정보처리 속도를 생각하면, 넓고도 깊은 엄청난 크기의 정보 덩어리를 사람의 뇌가 처리하려면 폭을 줄여 깊게 보거나(집중), 얕지만 넓게(직관)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알파고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승패를 떠나 우리에게 아주 좋은 경험이다. 좁은 골짜기에 빠져 정체된 사회는 크게 흔들지 않으면 다른 방향을 보지 못한다. 충격은 좋았지만 제안되고 있는 해결책은 여전히 좁아 보인다. 인공지능 학문의 역사는 제법 길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통계물리학 분야에서도 이미 1980∼1990년대에 활발히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 알파고의 인공지능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눈앞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란 뜻이다. 인공지능의 역사에서 커다란 장애물에 가로막혀 발전이 정체되어 있을 때, 꾸준히 장애물 앞에 머물며 이를 극복하려 노력해 결국 넘어선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드디어 이세돌의 바둑을 이기는 알파고를 만든 것이다. 인공 신경망을 학습시키는 역전파 방법의 발견, 지도학습과는 다른 강화학습의 발견, 그리고 얼마 전 딥러닝을 통한 표현학습의 가능성 발견 등이 바로 커다란 장애물 앞에서 포기하지 않았던 훌륭한 과학자들이 오랜 노력을 통해 거둔 성과들이다. 바둑 잘 두는 인공지능에 깜짝 놀란 우리 사회가 마치 새치기하듯 끼어들어 앞서 나가기에는 과거 실패의 경험이 너무 적다는 점이 필자는 걱정이다. 그리고 앞으로 분명히 닥칠 다음의 인공지능 발전의 큰 장애물 앞에서 오래 서성이며, 어떻게든 넘어서려 애쓸 과학자는 우리나라에서는 나오기 어렵다. 연구비도, 논문도, 대학원생도, 기업의 지원도, 그리고 국민의 지지도 곧 사라져 없을 테니까. 알파고의 충격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바둑 잘 두는 기계를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그것이 가능했던 시스템이다. 그것만 잘 배운다면 바둑뿐이겠는가.

요즘 생각이 많아진다. 사실 ‘집중’과 ‘직관’은 우리가 지금까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만에 빠져 자랑스러워했던 인간 지성의 엄청난 능력이 아니라, 결국 어쩔 수 없이 한계 지워진 가여운 인간 지성의 두 약점의 이름이 아니었을까. 얼마든지 넓고도 깊게 볼 수 있는 지성은 ‘집중’과 ‘직관’도 필요 없는 것이 아닐까. ‘집중’없이 한 번에 모두 다 볼 수 있다면, 그리고 ‘직관’없이 끝까지 계산해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인간의 ‘집중’과 ‘직관’은 결국 미래에는 버려질 어떤 것이 아닐까. ‘집중’과 ‘직관’없이 모든 것을 ‘계산’으로 환원해 처리할 수 있는 미래의 지성 앞에서, 사람의 연약하고 가여운 지성은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한의 정보를 0으로 수렴하는 시간 안에 계산으로 처리하는 것은 인공지능에게도 당연히 불가능하겠지. 그렇다면 유한한 존재라면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이런 한계에 맞서, 인공지능도 ‘집중’과 ‘직관’을 배울까. 그럼 인공지능이 갖추게 될, 인간보다 더 넓은 ‘집중’과 더 깊은 ‘직관’은 인간의 그것과 어떻게 다를까. 인공지능이 스스로를 창조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성이 만든 지성이 만들 지성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문화일보 2016년 3월 9일자 24면 11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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