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총선 뒤 野 재편과 ‘정통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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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 논설실장

총선이 1주일 앞이다. 이번에도 이변이 속출할 것이다. 갈수록 판세는 오리무중이고, 선거 뒤 정국은 더 예측불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도왔던 김종인·이상돈 두 사람이 제1·2 야당 선거 책임자가 됐으니, 당분간 어떤 정치적 변신도 무죄다. 전면적 새판짜기도 가능하다. 그래도 윤곽이 떠오르는 일들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야권 후보 단일화 무산의 후폭풍이다. 야권 패배 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본인 당선도 장담하기 어렵다. 승리하더라도 앞길은 험난하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비슷한 처지다. 문재인 전 대표는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선거 승패와 단일화 무산의 책임이 야권 재편의 중요한 근거로 작용할 것이다.

60년 야당사(史)를 돌아볼 때 언제나 단일화 열망이 있었다. 특히 1987년 양김의 분열과 뼈아픈 패배는 역설적으로 ‘단일화=야권 승리=정치적 선(善)’이라는 환상을 갖게 했다. 5·16 이후 1963년 대통령선거 당시에도 야권은 쪼개졌고, 윤보선·허정 후보가 각각 출마했다. ‘제비뽑기’까지 했으나 단일화에 실패했다. 결국 박정희 후보에게 15만여 표 차로 졌다. ‘원조’ 민주당 시절이던 1956년 대선에서는 승리를 눈앞에 두고 신익희 후보가 급서(急逝)했지만 조봉암 진보당 후보와 연대하지 않고 ‘추모 투표’를 했다. 부통령 선거에서는 장면 후보가 이겼다. 정통 야당은 정권을 잡기 위한 ‘대선후보 단일화’에는 최선을 다했지만 총선의 경우엔 각자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또 종북(從北)이 의심될 경우에는 정권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연대하지 않았다. 2012년 총선·대선에서 통합진보당과의 단일화는 이런 유구한 전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번 후보 단일화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성은 물론 정치 원칙의 측면에서도, 국민에 대한 도리 측면에서도 사리에 어긋난다. 혁신을 거부한 정당으로는 정권 교체가 불가능하다며 안 의원이 ‘광야’로 나간 것이 지난해 12월 13일이다. 이탈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우려가 커지자 뒤늦게 문재인 대표가 물러서고, 김종인 대표를 내세웠다. 그런데 친노·운동권 세력과 행태가 여전하다는 사실은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가 곧 여당 승리라는 주장도 역대 총선 결과를 보면 허구다. 3당, 4당 경쟁일 때 제1당이 과반이 안 되거나 여소야대(與小野大)로 귀결됐고, 여야 맞대결 경우엔 과반인 경향이 뚜렷했다. 게다가 총선 직전에 갈라서놓고, 우선 후보만 단일화하자는 것은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의석(議席)만 노리고 명분을 내팽개친다면 사상누각일 뿐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분열의 뿌리는 총선·대선에서 연패하고도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은 문 전 대표와 친노 세력에 있다. 2012년 대선 패배 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2년 패배 뒤 영국으로 떠났던 것처럼, 깨끗하게 물러났더라면 패인(敗因)은 청산되고 그 빈자리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채워졌을 것이다. 문 전 대표와 친노는 그 뒤에도 재·보선 패배, 당 대표 경선 등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지만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단일화가 모든 것인 듯이 주장하는 것은 본말전도의 궤변이다.

이런 측면을 종합하면 단일화 시비에 관한 한 안 대표가 내세운 다음의 논리가 설득력이 있다. ‘굳이 단일화하겠다면 확장성이 큰 국민의당으로 하자. 평소 편 가르기 정치를 하다가 선거 때만 되면 합치자는 것은 앞뒤도 맞지 않고,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그래서는 정권 교체가 불가능하다. 이제 와서 무조건 단일화하자는 것은 국민의당을 허물기 위한 정치공작일 뿐이다. 그것이 실패하니 이제 패배의 책임을 돌리려 하고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수권(受權) 야당을 만드는 일이다. 단일화 무산은 야권 표 분산에 따른 단기적 아픔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창조적 파괴로 연결될 수만 있다면 헛되지 않은 진통이자 밀알이 될 수 있다. 이번에 대규모 단일화가 이뤄졌더라면 일부 후보와 ‘친노·친문’세력에게는 유리했겠지만 야당의 진정한 혁신과 개조는 더 멀어졌을 것이다. 냉정한 단일화 재인식이 필요하다. 전쟁에서는 후퇴도 작전이다. 현 야권에는 의석을 일부 잃는 전술적 패배를 감수하더라도 정권 교체라는 전략적 승리를 지향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