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진 교수의 드라마 세상>피리 부는 사나이, 사회적 약자들의 간절한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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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 교훈을 무서운 방법으로 전하는 동화가 그림형제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다. 동화의 제목을 그대로 차용한 tvN 월화드라마 ‘피리 부는 사나이’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무력이 아니라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일촉즉발 협상극’을 표방한다. 약속의 중요성을 강조한 동화의 교훈을 바탕으로 자살과 인질극 그리고 테러와 전쟁의 위기상황이 빈발하는 현대사회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주성찬(신하균)은 천재적인 기업 협상 전문가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는 인물이다. “협상이란 결국 상대에게 원하는 것을 주고, 그 이상의 것을 내가 얻어내기 위한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주성찬에게 진심이나 공감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상대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과 믿음을 주는 목소리가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애인이 인질범에게 목숨을 잃은 사건 이후 주성찬의 협상관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그는 기업 협상 전문가의 자리에서 떠난다. 그리고 위기의 현장에 나타나 사태를 해결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된다.

경찰 위기협상팀의 여명하(조윤희) 경위는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주성찬임을 알아내고 그에게 외부자문위원을 제안한다. 여명하 경위는 협상팀의 일원이라는 것이 납득되지 않을 정도로 말주변이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이해하는 공감능력이 뛰어나서 눌변에 가까운 그의 말에서 진정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녀의 공감능력은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몰입하는 자세에서 형성된 것으로 진정한 소통의 정석이라 할 수 있다.

뛰어난 달변가이지만 공감능력이 부족한 주성찬과 말주변이 떨어지는 눌변가이지만 공감능력이 뛰어난 여명하는 끊임없이 발생하는 위기 상황을 배후 조종하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뒤쫓는다. 이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위기 상황 에피소드들은 개인적인 억울함을 넘어, 언론과 공권력의 외면이라는 사회적 차원의 문제로 확장된다.

뉴타운 재개발 사업 때문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것으로도 모자라 목숨까지 잃어버린 도시 서민의 아픔,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하고 성폭력의 위험에까지 노출된 외국인노동자의 고통,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진 강간 때문에 법정에까지 서야 하는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눈물, 진실 보도를 위해 내부 고발을 강행했다가 직장에서 쫓겨난 해직 기자의 울분 등의 에피소드가 그렇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피리 부는 사나이’의 정체는 결말부로 넘어가면서 TNN 채널 나이트뉴스의 간판 앵커인 윤희성(유준상)으로 밝혀진다. 윤희성은 시대정신의 화신이자 언론인의 표상으로 사회적 명망이 높으면서도 성공 지향적이며 정치적 야망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힘없는 진실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바로 그의 실체이다. “악은 피를 먹고 자라지 않아, 침묵을 먹고 자라. 눈과 귀를 닫고 보고 듣고도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악을 살찌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를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괴물로 만든 것이다.

폭력이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고, 그것을 독점한 국가가 가진 자들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는 윤희성의 주장을 반박할 논리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진짜 위기일지 모른다.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