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여당에 ‘정치 히딩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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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 정치부장

4·13 총선 참패는 새누리당 위기의 종착역이 아니라 향후 닥쳐올 파국적 위기의 서막에 불과했다. 지난 15일 동안 새누리당은 망하는 조직의 특징들을 빠짐없이 보여줬다. 첫째,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처한 위기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참패의 핵심 원인은 오만이다.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배신의 정치에 대한 심판’ ‘진박(진실한 박근혜) 마케팅’ ‘옥새 파동’ 등의 구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야권은 분열됐고 보수 성향의 유권자가 다수인데 어떤 짓을 해도 결국 새누리당을 찍을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오만방자한 태도에 결국 텃밭인 대구·경북지역 지지자들조차 등을 돌렸다. 그럼에도 불구, 새누리당은 총선이 끝나기 무섭게 오만의 프레임을 다시 작동시키고 있다. 총선 참패의 책임과 차기 당권을 둘러싸고 총선 전과 똑같이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이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심지어 원내대표 경선을 둘러싸고 친박계는 자중지란에 빠져들었다.

둘째, 위기가 골수까지 번졌지만 이를 돌파할 리더는 보이지 않는다. ‘차떼기 정당’ 낙인이 찍히면서 존립 자체를 위협받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천막당사’로 당을 구해냈다. 그러나 현재 새누리당에서는 비전을 제시하고 당을 통합시킬 리더를 찾을 수 없다. 그나마 차기 대권 여론조사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던 인사들은 줄줄이 낙선했다. 두 차례 대선 승리는 차세대 리더에게 오히려 불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이명박정부에서는 ‘박근혜’란 2인자의 그늘이 워낙 넓고 깊어 차세대 리더들이 성장할 수가 없었고 박근혜정부에서는 박 대통령이 2인자나 도전자를 인정하지 않아 차기 대권 후보군이 빈약해졌다.

셋째, 위기 상황이면 으레 등장하는 개혁 성향의 소장파 그룹도 사라졌다. ‘미래연대’ ‘수요모임’ ‘민본21’ 등 초·재선으로 구성된 개혁 성향의 소장파 모임들은 19대 국회에서 명맥이 끊겼다.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친박-비박이란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인 잣대로 재단되고 비박으로 낙인 찍히면 박 대통령의 단죄가 이뤄지면서 설 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넷째, 비전과 소명의식이 아니라 계파 간 이해관계와 대통령의 일방적인 리더십으로 당이 운영되면서 당의 정체성이나 당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고 당의 조직력도 와해됐다.

이런 상태에서 새누리당이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고 정권 재창출에서 유의미한 경쟁자로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새누리당은 부분적 개혁으로 회생할 수 없다. ‘마누라 빼고 다 바꿔라’는 어느 대기업 오너의 주문처럼 당의 기본적인 정체성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우선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과 관계설정을 다시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더 이상 새누리당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아니다. 국정지지율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박 대통령은 총선이란 중간평가에서 새누리당과 함께 낙제점을 받은 극복해야 할 권력이자, 20여 개월 뒤면 사라질 권력이다. 따라서 박근혜정부의 성공이 정권 재창출의 핵심 토대라는 공식도 수정해야 한다. 박근혜정부가 실패해서는 안 되겠지만, 박근혜정부를 넘어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정권 재창출도 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친노·운동권으로 대표되는 ‘낡은 진보’ 청산에 나서면서 다시 한 번 국민의 지지를 받았듯이 새누리당도 친박·비박으로 퇴화한 ‘낡은 보수(保守)’를 청산하고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정립해야 한다. 새로운 보수는 기존의 가치를 지키되 변화에 따른 보수(補修)를 두려워하지 않는 개혁적 보수여야 하고, 시장과 공정한 경쟁의 원칙을 지키되 사회적 약자에 대해 배려를 아끼지 않는 따뜻한 보수여야 하고, 과거에서 정체성과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미래의 가치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미래지향적 보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새누리당은 국민이 동의할 수 있으면서 정치적 리더십을 갖춘 리더를 외부에서 모셔와야 한다. 계파와 구연(舊緣)에 얽매이지 않을 ‘히딩크’가 필요하다. 비상대책위원장이 되든 당 대표가 되든, 영입한 리더에게 당 혁신의 전권을 부여해야 한다. 동시에 친박과 비박은 스스로 계파 해체를 선언하고 혁신의 길에 백의종군할 것을 국민 앞에 약속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이번 기회에 병을 치유하지 못하면 새누리당은 대선 레이스에 들어가기도 전에 군소정당으로 분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