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비리’ 이대론 안된다>‘국위선양’ 대가 특혜 누려… 자정 노력·체질 개선 급선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송재우 기자 jaewoo@

한국은 전 세계에서 6번째로 스포츠 이벤트 그랜드슬램(하계올림픽, 동계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을 달성했다. 오는 8월 개막하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선 4회 연속 종합순위 톱10 진입을 목표로 삼고 있다. 스포츠 선진국으로 발돋움했으나 국제적인 명성과 달리 속은 곪았다. 체육계 비리는 너무나 오래된 관행이기에 척결은 쉽지 않다. 체육계의 자정 노력, 체질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근절될 수 없다. 한국 체육의 ‘체질 개선’을 위해 2일부터 5회에 걸쳐 한국 체육의 비리 청산을 위한 기획 기사를 연재한다.

지난 2013년 5월 전국체전 태권도 서울시 고등부 선발전에서 탈락한 선수의 아버지가 승부 조작을 폭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들이 경기 종료 50초 전까지 5-1로 앞섰지만 7차례나 경고를 받아 7-8의 패배를 당하자 죽음으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사건을 보고받은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강한 어조로 체육계에 만연한 비리 척결을 지시했고,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전국 2099개 체육단체를 대상으로 특별 종합감사를 벌였다.

2013년 8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문체부의 체육단체 특별 종합감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문체부는 337건 비위 사실을 적발하고, 10개 단체의 수사를 의뢰했으며 15억5000만 원을 환수했다고 발표했다. 경기단체 사유화, 횡령, 승부조작, 입시비리, (성)폭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체육계 비리가 확인됐다.

체육계 비리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정부는 2014년 2월 승부조작, (성)폭력, 입시비리, 조직 사유화를 4대 악(惡)으로 지목하고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를 출범시켰다. 그해 5월엔 경찰과 합동으로 스포츠 4대악 합동수사반을 발족했고, 12월 체육계 비리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합동수사반은 당시 “국가대표 지도자와 경기단체 임직원 등이 모두 36억 원 규모의 횡령·불법적 자금세탁 등을 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문체부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조직 사유화를 기반으로 한 조직적 예산 횡령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고, 횡령에 관여한 임원과 지도자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을 적용해 영구 퇴출하며, 형사 기소된 직원은 직위 해제 조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결산 세부 내역 공개를 의무화하고 승부조작이나 횡령 등 비리가 발생한 경기 단체에는 국가대표 경기력 향상비를 포함한 국고 보조금 전부 또는 일부를 감액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체육계의 비리는 되풀이되고 있다.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에 지난해 12월까지 접수된 4대 스포츠비리 신고 건수는 459건에 달했다. 조직 사유화가 158건으로 가장 많았고, 승부조작 52건, (성)폭력 21건, 입시비리 13건의 순이었으며 기타 비리 제보는 215건이었다. 문체부는 이 가운데 11건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고, 6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종목별로는 야구가 49건으로 가장 많았고 축구 46건, 태권도 42건, 복싱 25건, 수영 25건, 빙상 18건, 댄스스포츠 17건 순이었다. 경기 단체는 물론 국가대표팀, 대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중학교 운동부에서도 비리가 확인됐다.

한국 체육계 비리가 뿌리를 깊게 내린 건 그동안 ‘치외법권’에 비유될 만한 특혜를 받아 왔기 때문이다. 건국 이후부터 스포츠는 전폭적인 국가 지원과 국민 사랑을 받았다. 전쟁이 남긴 상흔과 가난에 신음하던 국가, 국민에게 스포츠는 긍지를 안겨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맨주먹으로 세계 정상에 도전하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스포츠는 고단한 삶에 지친 마음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스포츠는 약소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유용한 도구였다. 국가 차원에서 ‘체력은 국력’이라면서 체육을 권장했다. 스포츠 스타들은 국제무대에 대한민국을 알리는 홍보대사였다. 먹고살 만큼 경제적인 성장을 이룬 뒤엔 국민에게 기쁨을 안겨주면서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희망과 위안, 그리고 즐거움을 선사하는 대가로 한국 스포츠는 특별 대우를 받았다. 힘들게 운동해 국위를 선양하는 체육계 우대 방침은 ‘방관’으로 변질했고, 결과적으로 비리가 자라나는 토양이 됐다.

국내 프로, 아마 스포츠는 자생력이 없다. 아마 스포츠의 경우 그래서 연간 4000억 원의 정부 예산, 즉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다. 하지만 관리,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인 덕에 일부 부도덕한 임원, 지도자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손쉽게 정부 지원금을 빼돌려 왔다.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란 명목으로 폭력이나 다름없는 물리적인 체벌이 횡행했고, 성적지상주의에 사로잡혀 ‘군기잡기’는 오히려 장려됐다. 거액의 운영비 조달을 약속하면서 경기 단체의 수장을 맡은 뒤 친·인척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등 경기 단체를 개인 소유물로 전락시켜도 제지받지 않았다. 승부조작과 입시비리를 아무런 죄의식 없이 저지르는 것도 스포츠는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우리만의 세상’이란 삐뚤어진 인식 탓이다. 부정한 돈을 받아도, 제자를 때려도, 조직을 내 마음대로 주물러도 처벌받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관행이라는 도덕 불감증이 팽배해진 건 당연한 일. 정부가 체육계 비리 근절을 위해 칼을 빼들었지만 체육계 비리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고착됐기에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

손우성 기자 applepi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