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지급불능 기업’은 淸算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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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근 / 건국대 특임교수, 한경연 초빙연구위원

여·야·정(與野政) 구조조정협의체 구성 논의, 정부의 스리트랙 구조조정 방안 제시, 박근혜 대통령의 한국판 양적완화 필요성 강조에 이어 그동안 발권력(發券力) 동원에 소극적이던 한국은행도 적극적인 역할로 선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구조조정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여전히 국책은행 자본 확충 문제에 집중되고 있고 정작 중요한 본질적인 구조조정 자체는 논의가 실종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문제일수록 원칙을 가지고 주어진 골든타임 내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추진할 것인지, 보다 본질적이고 구체적인 로드맵과 액션플랜이 나와야 한다. 내년에는 대선이 있어 사실상 추진이 어렵다. 올해 안에 구조조정이 안 되면 급증하는 기업부실이 금융부실로 전이돼 금융위기를 초래하게 될 우려가 크다. 이미 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 기관들이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원칙을 가지고 올해 안에 마무리해야 한다.

첫째, 여야 정치권은 구조조정 관련 법규를 정비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대기업을 제외하고 공급 과잉 업종으로 제한해 실효성이 반감된 사업재편지원특별법도 문제가 되고 있는 부실기업 대부분이 대기업이고 비록 공급과잉 업종이 아니더라도 신성장동력 산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사업 재편이 시급한 점을 고려해 재개정할 필요가 있다. 기업 구조조정이란 관련 업종을 없애는 게 아니라, 경쟁력이 사라져 부실해진 부분을 도려내고 신성장동력 부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하므로 기업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이 패키지로 추진돼야 효과가 크다. 이 과정에 정치 논리가 개입돼선 안 된다.

둘째, 정부는 구조조정 방향, 지원 방식, 일정, 사후 대책 등 큰 그림만 그려야 한다. 그동안 구조조정은 제대로 못 하고 부실만 키워온 국책은행을 여전히 구조조정 주도 기관으로 할 것인지, 금융위기 후 성공적으로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2012년 말 종료된 부실채권정리기금의 부활 등 새로운 기구를 통해 할 것인지, 부실여신으로 악화한 은행자본금은 어떤 방식으로 보전할 것인지,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오는 실업자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등 큰 정책 방향만 설정한다. 이보다 더 나가면 정부 실패가 발생할 수 있다. 실업 문제와 관련해 한국판 뉴딜정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조선·철강 등 구조조정으로 타격을 입을 지역이 동남권인 점을 고려해 동남권 신공항 건설도 좋은 대책이다. 이런 대책과 패키지로 추진할 때 반발을 최소화해 추동력을 가질 수 있다.

셋째, 채권은행은 1~2년 정도를 내다본 미래 지향적인 기업 정상화 계획을 토대로 재무 상태를 분석해 일시적 유동성 위기인지, 지급불능인지를 판단하고 일시적 유동성 위기 기업에 대해서는 대주주 경영진 채권은행 노조의 손실 분담 원칙 아래 자구 노력을 전제로 채무 재조정과 금융 지원 등 채권은행과 기업 간의 자율 협약이나 기업개선 작업을 통해 살리고, 지급불능 기업은 법정관리로 가는 등 청산(淸算) 절차를 진행한다. 감독 당국은 채권은행의 추진 상황을 감독한다.

넷째, 현장의 구조조정은 구조조정 전문가가 전권을 가지고 추진한다. 정치권과 정부가 배제된 구조조정 전문가가 추진함으로써 정부 개입과 정치적 논란에서 자유롭고 구조조정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금융위기 후 미국 GM의 구조조정을 구조조정 전문 투자은행 로펌 컨설팅회사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가 성공적으로 완수한 사례가 좋은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