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절벽 ‘정상일터’로 넘어야>워킹맘 숨통 틔우는 ‘전환형 시간선택제’… 사용자는 489명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3일 서울시청 직원이 자녀를 위탁하기 위해 서울 중구 서소문로 ‘서울시청 직장어린이집’에 자녀와 함께 들어서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③ 근로시간, 생애 맞춤형으로

육아·학업 등 개인적 사유로
근무 시간 단축이 필요할 때
일정기간 시간선택제로 전환

고용의 질은 계속 보장하면서
직장과 가정의 양립도 가능해

사측, 추가 인건비 부담에 꺼려
조직문화·업무분담 새로 짜야

지난 3월 기준 20대 남성과 여성의 고용률은 각각 55.6%와 58.4%로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30대가 되면 남성 고용률은 89.8%까지 치솟는 데 반해 여성 고용률은 57.9%로, 20대 때보다 오히려 감소한다. 이렇듯 30대에 시작된 남녀 고용률 격차는 평생 만회가 안 된다. 40대 남성 고용률은 91.9%에 달하는 반면, 여성은 65.3%에 불과하다. 50대에는 남녀 각각 85.8%, 60.7%의 고용률을 보인다. 출산·육아기에 맞닥뜨린 여성은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하다가 결국엔 노동시장 밖으로 튕겨 나간다. 40∼50대에 다시 노동시장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불러주는 곳은 적고, 그나마 손에 잡히는 것은 저임금에 고용불안이 심각한 일자리뿐이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4일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직장을 완전히 떠나지 않으면서 나중에 풀타임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전환형 시간선택제’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환형 아니었으면 둘째는 생각도 못했다” = 비행기 탑승 업무를 담당하는 대한항공의 자회사 ‘에어코리아’의 오세진(여·34) 대리는 얼마 전 둘째를 출산했다. 2012년 첫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1년을 썼다. 비행기 탑승 수속 업무 특성상 오전 6∼7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오후 6시가 넘는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오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이런 이유로 복직에 대한 걱정이 태산이었을 때, 전환형 시간선택제를 알게 됐다.

2013년 당시 이 제도를 활용한 회사 동료는 아직 없었다. 다행히 회사는 눈치를 주지 않고, 제도를 활용할 수 있게 해줬다. 오 대리는 1년 3개월 동안 오전 6시에 출근하고 오후 1시에 퇴근했다. 물론 근로시간이 준 만큼 월급도 줄었다.

그는 “월급이나 보너스가 동료들보다 적은 건 있는데, 내가 일한 만큼 받는 게 임금이니까 감수한다”며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없었다면 진작 회사를 그만뒀거나 둘째를 가지는 건 생각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환형 시간선택제는 기존의 정규직 풀타임 근로자가 육아나 학업 등 개인적인 사유로 근로시간 단축이 필요할 때 일정 기간 시간선택제로 전환해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활용 기간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정규직 풀타임 근로자로 다시 전환될 수 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존 시간선택제는 저임금이나 기간제 등으로 질 낮은 일자리라는 편견이 있다”며 “전환형 시간선택제는 정규직 풀타임 근로자를 대상으로 해 고용의 질이 보장되면서 일과 가정의 양립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유연한 근무시간은 남성도 필요하다 = 사회복지법인 ‘울산공동체21’의 송창섭(39) 과장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1년 동안 하루 4시간만 일한다. 원래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풀타임 근로자였으나, 회사의 1호 전환형 시간선택제 근로자가 되면서 근무시간이 반으로 줄었다.

송 과장은 사회복지기관 근무 8년 차인 만큼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싶었다. 그래야 승진도 되고, 전문성도 더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풀타임 근무를 하면서 자격증 취득 시험공부까지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송 과장은 “회사에 처음 얘기를 꺼냈을 때 인력부족 때문에 회사에서 다소 부담스러워하기도 했다”며 “정부의 대체인력 채용 비용 지원 등을 설명하자 회사에서 ‘그래 한번 해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오전에 동영상 강의를 듣고, 도서관에 가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이 교수는 “전환형 시간선택제는 육아 외에도 학습이나 가족의 간병 등 여러 필요나 생애주기에 따라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하는 것”이라며 “아무래도 한국사회에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남아 있어 남성의 경우 쓰기가 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루 2시간 단축·임금 20% 감소 선호도 높아 = 고용노동부는 지난 4월 6일부터 6월 6일까지 500인 이상 기업 430만 근로자와 CEO, 인사담당자 등을 대상으로 일·가정양립 수요 조사를 진행한다.

현재까지 조사에 응한 15개 공공기관 근로자 2만7256명의 중간 조사 결과를 보면, 장년기·육아기·임신기 근로 단축을 포함해 전환형 시간선택제를 활용할 의사가 있거나, 활용한 경험이 있는 근로자는 9635명이다. 전환형 시간선택제가 필요한 이유(복수 응답 가능)로는 42.8%가 육아, 35.4%가 출산이라고 답했다. ‘학업이나 자기계발을 위해서’라고 응답한 비율도 13.6%에 달했다. 전환형 시간선택제를 활용할 경우 선호하는 근로시간 단축 수준은 하루 2시간 이하가 45.1%를 차지했고, 활용 기간은 6개월∼1년 미만이 40.0%로 선호도가 가장 높았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감내할 수 있는 임금수준에 대해선 10% 이상∼20% 미만이 34.4%로 가장 높게 나왔다. 한편 전환형 시간선택제 활용의사가 없다고 답한 근로자의 52.0%는 임금 및 복리후생 저하를 원인으로 꼽았다. 39.8%는 맡은 직무가 전환형 근로 단축에 부적합해서, 22.8%는 동료 직원의 업무가 많아질 우려 때문이라고 답했다. 업무 공백에 따른 대체인력 채용이 어려워서라고 답한 비율은 14.0%였다.

◇장시간 근로 만연한 ‘비정상일터’ 문화부터 바꿔야 = 장시간 근로가 만연한 비정상일터 문화에서 생애맞춤형 근로의 정착은 쉽지 않다. 사업주 입장에서 전환형 시간선택제를 활용하는 근로자가 많아지면 추가적인 인건비가 들어가고, 시간선택제에 적합한 형태로 조직문화와 업무분담을 새로 짜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동료 근로자들 또한 누군가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내 업무부담이 가중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 업무의 연속이나 전문성이 중요한 직무의 경우에는 시간선택제 전환이 더 어려울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전환형 시간선택제를 활용하고 있는 근로자는 2016년 3월 현재 489명에 불과하다.

배 선임연구위원은 “일반 근로자들은 원하지만, 기업에서 못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일단 기업 관리자들의 생각이 바뀔 때 사용률이 늘 수 있다”며 “생애맞춤형 근로는 조직문화를 더 좋게 만들고, 양질의 근로자가 재충전을 하고 돌아와 좋은 성과를 낸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