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1년 전 검역망은 아날로그… 메르스에 뚫릴 수밖에 없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정진엽(오른쪽)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6일 국민연금공단 충정로지사에서 문화일보와 2시간여 인터뷰를 한 뒤 대회의실에서 화상회의를 주재하기에 앞서 이기일 대변인으로부터 항생제 과다 사용 실태에 대한 보고를 받으며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의사 출신답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습관을 갖고 있는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16일 국민연금공단 충정로지사 건물 내 문화일보와 약속한 인터뷰 장소로 향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국가적인 질병 재앙 때문에 장관이 된 의사가 있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의사 출신은 김대중정부 시절 주양자 장관 이후 17년 만이다. 그때와 정치적·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점에서 더욱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시대를 거스르면서까지 복지보다 보건이 우선시돼야만 하는 긴급사태였다는 의미다. 25년 경력의 의사가 호출될 정도로 국가의 질병관리시스템이 후진적이었다는 당시의 위기의식도 컸다.

실제 정 장관은 전염병이 없었다면 분당서울대병원장을 계속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많았다. 지난해 8월 임명 당시 청와대의 설명도 그랬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 장관이 다양한 의료경험, 한국 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와 높은 식견을 갖춰 공공의료 강화와 국민 건강에 안정을 이룰 적임자로 평가했다. 의료·국민 건강 얘기뿐이다. 실은 기존 질병관리시스템을 획기적으로 수술하라는 특명이다. 온 나라가 14세기 흑사병 같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이는 상황을 재연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정은 이랬다. 꼭 1년 전인 2015년 5월 20일, 첫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가 발생한 날. 선진국 진입을 자랑하던 대한민국의 방역체계 붕괴가 확인된 날이다.

충격이었다. 신종 감염병보다 국민이 무서워했던 건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보건당국의 허술한 대응태세였다. 38명의 목숨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동안 일상생활은 마비됐다. 공포는 극에 달했다. 메르스 ‘사태’로 명명된 배경이다. 메르스 바이러스에 최고의 숙주는 낙타가 아니라 대한민국 보건의료체계였다는 평가마저 나왔다.

참사가 수습되자마자 투입된 정 장관이 복지부를 이끈 지 9개월여 지난 시점, 지금은 시스템 문제가 해결됐을까. 최근 ‘지카(Zika)바이러스’의 위협 속에 몇몇 허술한 구멍이 드러났으니 답은 “아직도 진행 중” 이상을 기대하기 힘들다. 방역망 강화, 음압격리병상 확대, 권역별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정규직 역학조사관 증원,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확대 등 미완의 숙제가 많다. 의지만큼은 강하다. 정 장관은 “제2의 메르스 사태는 없다”고 강조했다. “취임 후 와서 보니 진짜 메르스 사태가 생길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정 장관, 아날로그 대응방식을 디지털 방식으로 바꾸는 대책을 힘줘 말하면서도 완성 시점에 대해서는 확답을 하지 못했다.

문화일보와의 인터뷰는 지난 16일 국민연금공단 충정로지사 15층 회의실에서 2시간여 진행됐다.

―장관 인선 발표 때 의외라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왜 장관에 임명된 것 같습니까.

“허허허. 대통령 뜻이겠지만, 메르스 사태가 결정적이었겠죠. 17년 동안 보건전문가가 하지 않다 보니…. 메르스가 국민적으로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복지부 입장에서는 보건 분야를 짚고 넘어갈 좋은 기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동안 역대 장관이 보건 분야도 물론 신경 써왔지만, 보건전문가가 보는 시각과 아닌 분이 보는 시각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질병관리본부 운영체계도 살펴보고 보건을 아는 사람이 체계를 갖추는 데 무엇이 중요한지, 제한된 자원을 어디에 집중 투자하고 포커싱해야 하는지, 의료인 입장에서 더 잘 볼 수 있습니다.”

―전문가로서 보기에 그동안 모든 시스템이 엉터리였다는 말씀이네요.

“모두 엉터리는 아닙니다. 관심은 있는데 전문적인 시각이 없었던 거죠. 제가 벌써 질병관리본부를 4번 다녀왔습니다. 역대 장관 중 4번 간 사람은 없을 거예요.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장관도 있다던데요. 그저 자연스럽게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이었을 거예요.”

―보건, 국민 생명에 관한 한 이전과는 다른 질적 심화를 기대해도 되겠네요.

“중요한 방향 체계, 틀은 갖춰 가고 있습니다. 취임 후 와서 보니 진짜 메르스 사태가 생길 수밖에 없구나, 너무 허술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천공항 검역소에도 여러 번 나갔는데 보완할 문제가 많았습니다. 열감지카메라를 통해 직원이 일일이 들어오는 사람을 보는데 쏟아지는 입국자를 어떻게 다 확인합니까. 사실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정보기술(IT)이 발달한 나라에서 그런 굉장히 비효율적인 방법을 쓰고 있더라고요. 검역소장에게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아날로그 방식이냐, 디지털 방식으로 바꾸라고 했습니다. 열 발생을 감지하면 눈으로 보지 않고도 시그널을 보내고, 자동저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죠. 검역 서류 수작업도 디지털로 바꾸라고 했습니다. 스마트검역시스템이죠. 올 하반기 시행을 준비 중입니다.”

―최근 지카바이러스도 문제인데….

“지카바이러스 덕분에 그간 만든 방역체계를 점검해 보는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동안 구축한 신속관리체계를 실전 훈련하는 셈입니다. 입국 시 SNS로 문자 보내기, 위험국가 방문 시 DUR(의약품 안심 서비스·Drug Utilization Review) 시스템 등이죠. 또 보건당국에 모의 환자, 즉 가짜 환자를 보내 제대로 대응하는지 수시로 점검하고 있습니다. 제가 장관이 된 후 처음 실시하는 겁니다. 신종 감염병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측면에서 공포감이 큽니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한 이유죠. 질병관리본부 조직 개편을 통해 긴급상황센터를 신설, 컨트롤타워 역할을 강화했습니다. 우수인력 확보, 매뉴얼 개발, 음압격리병상 확대,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등을 계속 추진하고 있습니다.”

―장관 임명 시 박 대통령의 각별한 당부 사항은 무엇이었나요.

“무엇보다 메르스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셨고, 복지도 전반적으로 잘 챙겨 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은 확실히 만들어 놓고 가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정 장관은 “저의 강력한 소임”이라고 말했다. 의료 분야에서만큼 정 장관이 전문가로서 성공적인 대수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의문은 남았다. 정 장관이 문외한인 복지 문제는 잘할 수 있을까. 따지는 듯한 질문 공세가 불가피했다. ‘복지연구를 많이 하는가’‘의사·교수·병원장 일이 바쁜데 복지를 제대로 들여다볼 기회는 있었나’ ‘복지철학은 무엇인가’ ‘복지정책도 매우 중요한데 잘 이끌 수 있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나’ 등등.

그의 솔직한 답변이 이어졌다. 평생 사회적·의료적 약자를 보살피는 일을 한 경험은 그의 복지철학의 출발점이었다는 설명이다.

“복지연구를 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장관이 된 후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 전공이 정형외과, 그중에서도 소아정형외과입니다. 주로 신경 근육에 문제가 있는 소아마비죠. 제 환자의 85%는 뇌성마비예요. 수술해 주고 재활치료를 하면서 장애인을 많이 접해 왔습니다. 예전부터 장애인에 대한 관심은 많았지만 그래도 공부할 게 아직 많습니다. 장관 하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합니다. 정부에서 투입하는 복지 예산이 1년에 123조 원입니다. 전체 예산의 31.9%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는데도 국민 체감도가 낮습니다. 사각지대도 많습니다. 박근혜정부의 복지제도를 내실화하는 것, 이것이 제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체감도는 높이고 사각지대는 없애는 것이죠. 국가적인 차원으로 봐서는 저출산·고령사회 문제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보건 분야에서는 바이오 헬스 7대 강국 진입이 가장 큰일입니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의 큰 틀도 완성해야 합니다. 또 이번에 새로 하나 시작한 게 있는데 ‘읍·면·동 복지 허브화 사업’입니다. 복지전달체계를 확 뜯어고치는 것이죠.”

―새로운 게 뭔지 자세한 설명을 좀 해주시죠. 그물망 복지를 통해 사각지대를 없애는 시스템인가요.

“지난해 시범사업을 했습니다. 기존 읍·면·동 주민센터는 행정·민원업무가 7이라면, 복지업무는 3에 불과했는데 이를 거꾸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아직은 지방자치단체별로 차이가 큰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모범지역은 서울 북가좌1동입니다. 행정의 경우 자동민원발급기, 스마트폰, 인터넷으로 모두 처리 가능하니까 복지를 7로 늘린 것이죠. 상담사와 방문간호사를 전진 배치하고 지역사회보장센터 분들뿐 아니라 민간도 연계시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찾아가는 복지죠. 요구르트·신문 배달하시는 분들도 전부 네트워크로 연결했습니다. 그분들이 다니면서 SNS로 복지 사각지대 문제를 공유합니다. 또 동네 지도를 넣은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취약계층 가정에 깃발을 표시해 놨습니다. 화면의 깃발을 누르면 무슨 지원이 필요한지 알려 줍니다. 이렇게 주민센터가 복지의 근본 허브가 돼야 합니다. 시범사업을 통해 사각지대 발굴은 3배 정도, 취약계층 방문 횟수는 6배 올랐습니다. 주민 만족도 역시 90%로 증가했죠. 경기 남양주는 잘돼 있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지역협의체가 구성돼 주민이 기금도 만들었습니다. 차상위계층 등 정부의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은 지역 기금으로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복지 허브시스템을 내년 말까지 전국적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복지전달체계의 큰 변화죠.”

―복지장관으로서의 복지철학은 무엇인가요.

“일자리를 연계해 주는 복지가 제일 좋은 복지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노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자리를 갖고 있는 노인의 진료비가 평균 56만 원 적게 들어갑니다. 우울증 발생률도 훨씬 낮아요. 역시 본인이 활발하게 일하면서 소득을 얻는 활동이 가장 중요하다는 겁니다. 장애인 중에서도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합니다. 아동은 물론 다르지만요. 이와 함께 복지는 경제와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선별적 복지를 어떻게 잘하느냐죠. 정부가 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조화롭게 해 가급적 많은 분이 혜택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민간 자원 연계에도 많이 신경 쓰고 있습니다. 다층노후소득보장을 위해 개인연금도 확대하고 주택연금이나 농지연금을 활성화하려고 합니다. 대상 확대, 맞춤상품 개발, 공동 홍보 및 노후설계 서비스 제공, 공사연금 통합포털 등 정보체계를 구축 중입니다.”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의 구분 기준은 뭡니까.

“분야별로 다르겠죠.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은 보편적 복지로 가야 합니다. 대신 취약계층·장애인·노인·아동 등은 선별적으로 집중적인 지원을 해야 합니다. 이게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합니다.”

―브라질·베네수엘라의 경우 복지포퓰리즘 때문에 정권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북유럽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반론도 있고요.

“그런 점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게 복지의 지속가능성입니다. 국민연금은 2060년 고갈됩니다. 미래세대 부담을 가급적 줄여야 하는데 인구는 줄어들어 돈 낼 사람도 감소하니 차세대에 엄청난 부담이 됩니다. 2026년이면 초고령사회(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사회)가 되는데 감당할 수 없습니다. 스웨덴도 최근 복지정책을 조금씩 바꾸고 있습니다. 많이 일하는 사람과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에 차별을 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 중심으로 복지정책을 바꿔 가고 있습니다. 인구가 1000만 명이 안 되는 스웨덴은 현 국내총생산(GDP)으로 적은 인구를 충분히 지원할 여력이 있습니다만 한국은 GDP도 적고, 인구는 상대적으로 많아 똑같이 복지혜택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맞는 복지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만들며 복지를 넓히고 있습니다. 일괄 지원하던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다양한 지원으로 바꾼 맞춤형 생활보장제도 역시 많이 발전했습니다. 복지라는 게 점진적으로 나가야 합니다. 한번 주게 되면 그다음에 절대로 뺏지 못하니까요. 단계적으로 경제와 조화롭게 나가야 합니다. 복지에 대한 지출 증가가 다른 분야 예산보다 가장 큽니다. 박근혜정부 이후 복지 지출이 계속 증가한 겁니다. 복지 지출은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적절하게 단계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복지 지출을 약 10% 더 늘릴 경우 국가채무비율이 금세 90%(현재 40%)로 올라갑니다. 이건 엄청난 문제입니다.”

실제 기획재정부가 2015년 12월 발표한 ‘장기재정전망’에서는 2020년 10조 원의 신규 의무 지출 도입 시, 2060년 국가 채무비율은 88.8%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기존 복지 지출 단가가 상승할 경우 99.2%, 저성장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 94.6%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정 장관이 “복지 지출을 무조건 늘리다가 재정이 거덜 나면 안 된다”고 우려를 표하는 근거다.

―서울시와는 청년활동지원사업 문제로, 성남시와는 무상복지사업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데 해결방법이 없습니까.

“서울시가 사회보장기본법상 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청년활동지원사업 예산안을 지난해 12월 의결한 데 대해 복지부가 지방자치법(제172조)에 따라 1월 대법원에 제소해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서울시는 청년수당 조건을 저소득층에 한해 지원하는 등 처음에서 많이 바꾼 수정안을 마련해와 협의하고 있습니다. 성남시도 비슷한데 경기도가 대법원에 제소해 역시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복지부와 협의 중인 서울시와 달리 성남시는 3대 무상복지사업에 대해 예산 집행 등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혀 협의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성남시는 판교 발전으로 재정에 여유가 있어 그런 듯한데 다른 지자체와의 형평성도 봐야 합니다. 재정이 어려운 지자체는 박탈감이 커질 수 있습니다. 복지는 조화롭게 해야 합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단기간 내에 몇 가지 선언적으로 한다고 해결되지 않을 텐데 근본적으로 푸는 방법을 찾았나요.

“비혼, 즉 결혼을 안 하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결혼과 출산율을 분석해 보니 20대에 결혼하면 합계출산율이 2명이 넘는데 30대에 결혼하면 0.8명밖에 안 됐습니다. 만혼 영향을 제거할 경우 2014년 출산율은 1.58명인데 실제 출산율은 1.21명이죠. 기존 대책은 애를 낳아 쉽게 키울 수 있는 보육환경에 포인트를 뒀습니다. 그런데 분석해 보니 비혼이 문제였던 거죠. 그래서 왜 결혼을 안 하는지 살펴보니 높은 청년실업률이 한 이유였습니다. 직장을 갖고, 집을 장만하고, 돈을 마련한 뒤 결혼하려니 늦어지는 거죠. 청년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박 대통령도 올해 전 부처가 해야 할 첫 번째 미션으로 제시한 게 일자리 창출, 특히 청년 일자리 창출입니다. 다음이 주거 문제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혼부부가 좋아하는 행복주택단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신혼부부 전용 전·월세 임대주택을 5년간 13만5000호 공급할 예정입니다. 또 애를 낳으면 여성들이 직장을 다니기 어려운 상황도 문제입니다. 결국 애를 낳지 않게 되는 것이죠. 출산율이 높은 선진국을 보면 여성들의 일·가정 양립이 잘되고 있습니다. 이들 대책은 복지부만이 아니라 모든 부처가 힘을 합해 추진해야 합니다. 또 하나, 정부가 아무리 얘기해도 안 되고 국민이 인식을 바꿔야 하는 문제입니다. 가족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없어지면 결혼을 왜 하느냐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가족·가정에 대한 가치관이 무너진 것이죠. 가족을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도 필요합니다. 부모 교육이 없으니 아동학대도 더 많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종교계·경제계·시민사회단체 등을 다 만나 인식개선 캠페인도 전개하고 있습니다.”

―고령화 시대, 국민연금에 대한 관심도 높은데 기금 고갈 걱정이 많습니다.

“저출산·고령화를 고려하면 기금의 장기 지속가능성 제고가 필요합니다. 2013년 제3차 재정계산 결과, 현행 국민연금제도 유지 시 2060년에는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 전에 보험료 인상이 필요합니다. 인상 폭은 시기와 기금수익률에 따라 달라집니다. 제3차 재정계산에서는 2083년의 기금 적립 상태를 기준으로 현행 소득대체율(2028년 40%)에서 필요한 보험료를 소득의 13%에서 16%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내년도 제4차 재정계산에서 전문가, 가입자 대표 등과 협의를 통해 보험료 인상 등 적정 부담, 기금수익률 제고 등 구체적인 재정안정화방안을 논의할 계획입니다.”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연말정산 파동을 겪었던 터라 예민할 텐데요.

“연말정산은 7만 원 올라가는 것 때문에 그렇게 큰 반향이 있었는데, 사실 건강보험료는 더 큰 문제입니다. 저소득층의 보험료 부담을 완화하고 보험료 부과 기준의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이 필요합니다. 우선 직장보험 가입자, 지역보험 가입자 간의 형평성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고소득자임에도 상한선이 있어 많이 벌어도 더 이상 내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배우자 중 직장 소득 외 수익이 많아도 보험료 징수를 안 했고, 무임승차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피부양자의 범위도 넓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형제 다 들어갑니다. 지역가입자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느냐, 소득파악률이 70% 정도밖에 안 됩니다. 소득이 다 파악되면 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됩니다. 지역가입자 소득분포를 75등급으로 했는데, 소득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보다 덜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역진성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워낙 예민한 문제라 시뮬레이션을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있습니다. 소득은 안 올랐는데 보험료가 올라가는 상황도 발생하고,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옮겨 갔더니 보험료가 오르는 일도 있고 다양한 상황이 많습니다. 최근 야당에서 의견을 냈는데 대략 계산해도 2조 원 이상의 재정이 더 들어갑니다. 그런 식이면 몇 년 안에 건강보험 재정이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습니다.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원격의료 사업이 의료계 반대로 지지부진한 상태인데요.

“1월 발표한 시범사업 평가 결과를 보면 만성질환 관리에서 임상적 유효성이 입증됐습니다. 도서벽지, 군부대, 원양선박 등 의료취약지 거주자들이 원격의료 혜택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급증하는 만성질환을 1차 의료기관이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의료계 및 정치권과 충분히 협의하고 논의해 의료법 개정도 추진하겠습니다.”

정 장관이 처음으로 분당서울대병원장을 3번 연임한 비결은 ‘감성경영’과 무관치 않다. 애당초 막무가내식으로 휘어잡는 리더십 스타일은 아니었다. 합리성·시스템에 의한 조직 관리다. 자칭 ‘남산골 샌님’이 거대 조직을 이끄는 힘의 원천이다. 본관이 동래인 정 장관 집안이 조선 시대 정승을 줄줄이 배출해온 명문가답다. 그러니 정 장관에게 복지부를 휘어잡을 업무 장악력을 묻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모든 조직은 시스템으로 가야지 윽박지르고 강압적으로 가봤자 다시 원위치 됩니다. 병원을 운영하는 것처럼 복지는 기본적으로 대국민서비스라 조직 구성원들이 신 나게 일하고, 보람을 느끼며, 자기 위치에서 자부심을 갖게 해야 합니다. 복지부는 국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처로서 탄생 순간부터 평생 국민 곁에서 힘이 되고자 합니다. 특히 다양화되고 높아지는 국민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하겠습니다.”

인터뷰 = 김상협 사회부장 jupite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