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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Who, What, Why 게재 일자 : 2016년 05월 25일(水)
‘조영남 사건’으로 본 ‘代作과 創作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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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남의 ‘대작 사건’이 현대미술에서 창작의 의미와 한계에 대해 다양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루벤스·정선 등 거장들 조수 뒀지만 ‘반드시 현장지휘’
조영남, 본인 감독 없이 그린 것 배달받아 …“협업 아냐”

- 代作·代筆의 역사
구한말 유명 풍속화가 김준근
주문 밀려들자 그림 대량생산
워홀, 공방 아닌 공장으로 불러
허스트는 조수 100명 넘게 둬

- 미술계가 본 조씨 사건
“작가가 직접 관리감독 안해
도제 공방식 작업과 다르다”
“화투그림, 팝아트로 분류땐
창작품으로 봐야” 일각 의견


방송인 조영남의 ‘그림 대작(代作) 사건’으로 미술계가 시끄럽다. 조영남은 조수가 그려준 화투 그림을 자신의 작품처럼 팔았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까지 받고 있다. 이 때문에 현대미술에서 대작과 창작의 한계가 어디까지냐에 대한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창작이 아이디어와 설계를 제공하는 ‘기획’이 되면서 제작과정과 분리되기 시작한 현대미술에서는 ‘페인팅’에서의 대작도 수용해야 하는 현실이 된 것일까. 과거에는 대작, 특히 동양에서는 대필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조영남 대작 사건 이후 창작의 경계를 놓고 미술계 안팎에서 일고 있는 논란에 대해 정리했다.

◇ 동서고금의 논란 = 사실 대작 논란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겸재 정선(1676∼1759)의 제자 마성린(1727∼1798)은 ‘안화당사집’이란 문집에서 “선생님의 제자로 10년 있었는데 하도 대필을 많이 시켜 힘들어서 그만두었다”는 내용의 기록을 남겼다.

사실 조선시대 화가 중에 정선만큼 다작을 남긴 작가도 드물다. 그만큼 주변에 수요가 있었기 때문인데 그래서 대필 논란의 한가운데 있었다. 마성린뿐만이 아니다. 정선의 진경산수 화풍을 물려받아 ‘정선파’로 분류되며 거의 정선 작품과 흡사한 그림을 그린 일부 제자들도 대필 의혹을 받고 있다.

정선이 남긴 수백 편의 그림 중에 인왕제색도처럼 작품성이 뛰어난 것과 그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작품이 혼재하는 등 굴곡이 심한 것도 그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겸재뿐만이 아니다. 조금 다른 형태이기는 하지만 단원 김홍도의 스승 강세황(1713∼1791)은 대나무 그림 주문이 밀리자 목판을 만들어 그림 대신 찍어 주었다고 전해진다. 또 구한말의 김준근은 풍속화가로 이름을 날렸는데 외국인들의 주문이 밀리자 아예 공방을 차리고 그림을 대량 생산했다.

서양에서도 대작으로 의심받을 만한 사례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루벤스(1577∼1640)다. 루벤스는 여러 화가를 기용해 스케치를 그린 후 옮기는 작가, 얼굴만 그리는 작가, 옷을 그리는 작가 등으로 분업체계를 만들어 운영했다. 루벤스의 유화만 무려 3000여 점이 돌아다닌다. 그림을 그릴 때 제자들의 도움을 받는 것은 중세 때부터 일반화된 방식이지만 루벤스의 경우는 중세 도제식 공방을 공장식으로 운영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대형 조각이나 설치미술, 팝아트의 경우에는 아예 공공연히 조수와의 협업 사실을 밝힌다. 앤디 워홀은 자신의 작업실을 ‘공방(workshop)’이 아니라 ‘공장(factory)’이라고 불렀고, 데이미언 허스트는 무려 100여 명의 조수를 두고 작업을 한다.

그들은 마치 미술작품을 건축물처럼 보고 아이디어와 설계를 제공한다. 그러면 공장의 작업자들이 작품을 완성하는 식이다. 인도 조각가 애니시 커푸어가 대형 창고 건물에서 수십 명의 조수와 함께 조형물을 만드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미켈란젤로(1475∼1564)가 대형 벽화를 그릴 때 조수 10여 명의 도움을 받은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작가가 직접 붓을 들지 않아도 적어도 현장에서 관리 감독했다. 그리고 자신의 계획을 작품에 반영했다.

◇ 조영남 작품에 대한 미술계 논란 =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조영남의 경우는 어떨까. 화단에서는 일단 조영남의 작업은 과거의 도제 공방식 작업과는 다른 것으로 이해한다. 작가의 관리 감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인이 그린 그림을 배달받은 것은 ‘작가와 조수의 협업’이라는 방식에서 벗어나 있다는 지적이다. 조영남이 ‘미술계의 관행’이란 표현을 썼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도 그 때문이다.

조영남의 화투 그림을 복제와 대작이 횡행하는 팝아트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일반적인 평면회화가 작가의 일격, 즉 ‘손맛’에 의해 완성되는 작품이라면 팝아트는 ‘생각으로 만드는 그림’이다. 작가가 일종의 기획자인 셈이다.

미술평론가 최열은 “조영남의 화투 그림은 순수 회화라기보다는 팝아트에 가깝기 때문에 비록 대작을 시켰더라도 그의 창작으로 봐야 한다”며 “본인이 기획, 설계한 작품이라면 분명히 그의 창작품”이라고 단언했다. 단지 그는 “조수를 혹사시킨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견해도 많다. 그동안 조영남의 태도를 되돌이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순수 평면회화를 잘 그리는 사람처럼 포장했다. 스스로를 가수와 화가를 합친 ‘화수(畵手)’로 불러달라고 했으며 화투 그림이 독창적인 자신의 화풍이라고 알렸다. 그의 그림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도 그림 솜씨가 뛰어난 가수로 그를 받아들였다. 이명옥 한국미술관협회 회장은 “그 같은 조 씨의 이중성 때문에 설령 그의 그림이 팝아트 계열로 분류된다고 하더라도 많은 미술인과 대중의 공분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영남의 대작 사건에 대해 대체로 미술계가 일치된 시각을 보여주는 것은 ‘검찰 수사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도덕이나 윤리 차원에서 다뤄야 할 문제를 검찰이 수사선상에 올렸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 교수는 “현대미술에서 창작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논의 자체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조 씨 문제는 이를 방임하고 유통시킨 시장에 먼저 책임을 묻고 시장이 해결하도록 기다렸어야 한다”며 “검찰이 수사에 나서며 학문적 토론이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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