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국회의원 선서는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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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권 / 정치부 차장

대개 처음이 다짐으로 시작되듯이 오는 30일부터 임기를 시작하는 20대 국회의원들도 개원 국회에서 ‘나는’으로 시작해 ‘엄숙히 선서합니다’로 끝나는 81자 분량의 국회의원 선서를 한다.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다’고 손을 들고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하지만 국회의원들이 이를 지킬 것이라고 믿는 사람보다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국회의원 선서가 가식적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의원들의 비양심적이고 불성실한 행태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지만 내용(국회법 제24조) 자체가 국회가 아닌 곳에서 민의와 동떨어진 채 권력의 입맛에 따라 여러 차례 수정되면서 진정성을 상실한 것과 무관치 않다. 국회의원 선서 조항은 제헌의회가 아닌 1960년 4·19혁명 이후 구성된 5대 국회 때 국회법에 처음 들어갔다.

그러나 5·16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소장은 1963년 국회가 아닌 국가재건최고회의 의결을 통해 ‘국민의 자유 증진’을 조항에 집어넣었다. 자유를 억눌렀던 군사정권이 ‘자유 증진’을 선서하라고 강요했으니 이를 믿을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유신헌법에 맞춰 비상국무회의에서 ‘국력의 배양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라는 정권의 목표를 추가했다. 1981년 이뤄진 3차 개정도 국회가 아닌 신군부의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비밀리에 진행됐다. 5·18민주화운동을 짓밟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는 ‘국력의 배양’은 빼고 ‘국가이익 최우선’을 넣었다. 군사독재 정권이 무얼 하든 국민은 관심도 갖지 않았다. 현재의 선서 내용은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13대 국회에서 개정된 내용이다. 당시 법 개정을 주도했던 정창화 국회법개혁특위 위원장은 “그간 국회 외 기구에서 개정이 이뤄져 왔지만 이번 개정은 민의가 충실히 반영된 국회에서 민주화 시대에 걸맞게 개정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국회에서 의원들의 각종 범법 행위와 국익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행태가 끊이지 않으면서 선서는 사문화되다시피 했다.

20대 국회가 출범하는 가운데 국회의원의 첫 약속을 희화화하며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28년이 지난 국회의원 선서도 바뀔 때가 됐다.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는 ‘국민 통합’을 포함시키고, 국회의원들이 ‘선서’가 아니라 ‘맹세’를 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이 같은 서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 약속 위반에 따른 응징이 있어야 할 것이다. 5공화국 때 국민 동의 없이 들어갔지만 ‘국가이익 우선’은 경제·안보 등 총체적 국가 위기를 생각하면 유지돼야 할 덕목이다 .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하며 국가 이익과 국민 통합을 우선으로 국회의원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이를 어길 시 국회의원직을 자진 사퇴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맹세합니다.’

말로만 하는 선서는 거짓말이다.

yb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