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노인 만난지 사흘만에 혼인신고 1억대 빼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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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력가 노인 상대 사기 기승

혼인신고 순간 친족으로 인정… 후견인 지정前 재산 가로채

돈 많은 치매 노인들을 노린 결혼 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노년층의 재산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고령이나 정신적 장애 등으로 재산을 지키기 어려운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성년후견인 제도가 있지만, 후견인 지정 이전에 재산을 처분해버리면 대처할 방법이 없고 처벌도 어렵다는 지적이다.

직장인 A(49) 씨는 지난해 11월 아버지(86)의 부동산을 관리해주는 중개업자에게서 “50대 여성이 아버지와의 혼인신고서를 보여주며 땅을 빨리 처분해 달라고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A 씨의 아버지가 지난해 8월 결혼정보업체에서 B(여·55) 씨를 소개받아 3일 만에 혼인신고를 했던 것. 시가 190억 원에 달하는 부동산 소유자로 치매가 심한 A 씨의 부친은 혼인신고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A 씨 부자는 지난 1월 서울가정법원에 성년후견인 지정과 재산을 임의로 처리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전처분’을 신청했다. 2월 19일 사전처분 결정을 받아내긴 했지만 B 씨는 효력 발생 이전에 1주일간 이의 신청 기간이 주어지는 점을 악용, A 씨 부친 통장에서 1억2000만 원을 빼낸 뒤 2월 26일 이의 신청을 했다. 1주일 시한을 꽉 채우며 돈부터 챙긴 것이다.

지난 3월에는 치매 노인 C(81) 씨에게 접근해 전 재산을 빼돌린 이모(여·62) 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 씨는 C 씨의 환심을 사 결혼한 뒤 C 씨 소유의 90억 원대 부동산을 처분, 59억 원을 챙기고 10개월 만에 이혼했다. 이 씨는 동거남(76)과 고급 아파트에서 호화 생활을 하다 체포됐다. C 씨는 오피스텔에 방치돼 혼자 살다가 2월에 세상을 떠났다.

2013년 도입된 성년후견인 제도의 구멍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다. 후견인 지정 시에는 모든 친족의 동의가 필요한데, 혼인신고를 하는 순간 부모의 새 배우자도 친족으로 인정돼 재혼 배우자가 반대하면 어려워진다. 하경미 법무사는 “새 배우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가정법원 판결을 받아 법무사, 세무사, 사회복지사 등 제3자를 후견인으로 지정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가족 간 재산 범죄에 대해서는 형을 면제하는 ‘친족상도례’ 규정 때문에, 부모의 재혼 배우자가 후견인 지정 이전에 재산을 가로채도 처벌할 수 없다. 상속전문 법무법인 관계자는 “돈을 가로챈 재혼 상대자를 형사 처벌하려면 혼인무효 판결을 받아야 하는데,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재산을 빼돌리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김리안·김기윤 기자 knr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