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2021.10.25 월요일
전광판
Hot Click
북리뷰
[문화] 게재 일자 : 2016년 06월 02일(木)
“베트남전 ‘유령’은 경험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속 실체”
  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밴드
▲  베트남인들이 전쟁 유령에게 행하는 의례는 역사의 상처를 딛고 인류의 연대라는 윤리적 지평을 열어 낸다. 사진은 베트남전쟁 당시 전사자 옆에서 망연자실해 있는 병사들의 모습. 자료사진

- 英 케임브리지大 권헌익 교수, ‘베트남 전쟁의…’ 국내 출간

현지서 머물며 일상참여 연구
학계 “인류학적 통찰의 수작”

개방정책후 정치 해빙기 도래
미군 유해 발굴 본격화되면서
전쟁영웅·적군 초월 추모 확산
전국적 차원 친족의례로 정착

“역사적인 상처와 고통을 넘어
‘인류연대’ 향한 문화적 실천”


‘유령(ghosts)’은 사회과학의 연구대상이 될 수 있을까. 유령은 다뤄지더라도 비유적으로 취급될 뿐 사회과학적 연구의 직접 대상으로 삼는 건 금기다. 유령은 사회적 세계를 구성하는 ‘사회적 사실’이 아니라는 게 일반적이고, 현대 국가는 과거 혹은 지금도 ‘미신’으로 낙인 찍어 유령에 대한 민간의 풍속이나 의례까지 강제로 금지했다.

유령을 ‘구체적 실체’로 다뤄 세계 인류학계에 충격을 던진 학자가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의 권헌익(54·사회인류학·사진) 석좌교수다. 그는 베트남전쟁 이후 현장에서의 오랜 실증적 연구를 통해 유령이 “구체적인 역사적 정체성을 가진 실체로, 비록 과거에 속하지만, 비유적인 방식이 아니라 경험적 방식으로 현재에도 지속한다고 믿어지는 존재”로서 베트남에서 ‘사회적 사실’을 구성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관한 저서 ‘베트남 전쟁의 유령’(산지니)이 영국에서 출간된 지 8년 만에 국내에서 번역됐다. 이 책은 뛰어난 동남아시아 연구서에 주는 ‘조지 카힌 상’ 제1회 수상작으로, 세계 학계에서 ‘어떠한 학자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 ‘인류학적 통찰의 거의 완벽하고 경이로운 예’라는 찬사를 들었다. 권 교수는 역시 베트남전을 다룬 ‘학살, 그 이후’(아카이브, 2012)로 2007년 인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기어츠 상’을 받은 바 있다.

저자는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상당 기간 현지에 거주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일상, 특히 가정의례에 직접 참여하며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 시점이 의미가 있다. 1986년 ‘도이머이 개방정책’ 이후 베트남 정부의 경제성장을 위한 노력, 미국 등 이전 적성국에 대한 화해 제스처 등 이데올로기의 변화는 정치적 해빙을 가져왔는데,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전국적 차원의 종교의례의 부활이었다. 주로 ‘전쟁영웅’에 제한돼 공식적으로만 추모되던 죽은 자들의 의례가 친족의 의례로 들어오고, 당시 ‘우리 편’이 아니었던 망자들도 친족의례에 편입됐다.

특히 도로 건설 등 경제개발로 발굴되는 전쟁 유해의 수가 급증했고, 미국과 수교(1995년) 이후 미군 유해(MIA·작전 중 실종자) 발굴이 본격화하면서 친족을 넘어 말 그대로 떠도는 유령들도 부활하게 됐다. 미국의 경제제재를 풀기 위해 MIA 발굴은 중요한 열쇠였고, 지방 관료들은 유해를 잘 찾는 영매(무당)를 고용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대다수 베트남인에게 전쟁 유령은 일종의 자연적 현상으로 인지되는 ‘존재론적 힘’을 가지며 그러한 사례는 책에 다양하게 소개된다. ‘존재론적 난민’이었던 유령들은 산 자들의 인정과 의례를 통해 제대로 정착하거나 떠날 수 있고, 은혜를 갚기도 한다고 현지인들은 경험을 통해 증언한다.

저자는 베트남에서 유령을 둘러싼 담론과 실천이 매우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현상일 뿐 아니라, 베트남인들의 역사적 성찰과 자아 정체성 표현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인류학적·사회학적·역사학적, 심지어 정치경제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사례 가운데 현지 조사 중에 한 지역의 영매를 만난 저자는 ‘명사수’라고 불리는 유령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 세계의 사람들도 여전히 명분 때문에 논쟁하고 싸우나요? 망자들의 세계에도 ‘우리 편’과 ‘그들 편’이 있나요?” 유령은 “아니요, 친애하는 외국인 친구! 망자들은 싸우지 않는다. 전쟁은 산 자들의 일이다. 내 세계의 사람들은 그들이 당신 세계에 있었을 때 싸웠던 전쟁의 동기와 목적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베트남인들이 전쟁 유령을 위해 수행하는 의례행위는 “역사의 상처와 고통을 넘어 인류의 연대라는 윤리적 지평을 지향하는 창조적인 문화적 실천”이라고 말한다. 6·25전쟁의 상흔을 여전히 안고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 문화부 SNS 플랫폼 관련 링크



[ 많이 본 기사 ]
▶ “18살 임신, 자퇴… 연락 안 되던 아이 아빠 사고로 죽어”
▶ 이재명 지사 대장동 연루 드러나나…“정민용 팀장, 개발 ..
▶ ‘도수치료 어디까지?’… 女 환자 가슴부위 만진 물리치료..
▶ 홍준표 “화천대유·천화동인, 이재명의 대선 프로젝트”
▶ “유괴될 뻔한 아이들, 20m 달려 도망치니 범인이 포기”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 : m.munhwa.com ]
“기침 하지마”…커피숍에서 손님 폭..
‘한강 대학생’ 경찰수사 종료…친구, ..
이준석 만난 김종인 “11월 5일 지나봐..
김태호·박진·심재철·유정복, 尹캠프 공..
미국 MZ세대가 본 ‘오징어 게임’ 열풍..
topnew_title
topnews_photo JTBC 시사 교양 프로그램 ‘팩추얼-오늘부터 가족’에 스무살에 홀로 육아하는 이루시아의 사정이 전해졌다.23일 첫 방송된 ‘팩츄얼-오늘..
mark“이재명 지사님, 구치소 밥 맛있습니다…다른 증인도 있어”
mark이재명의 ‘그분·조폭·김부선’
이재명 지사 대장동 연루 드러나나…“정민용 팀장..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김선호 팬 응원문’..
‘도수치료 어디까지?’… 女 환자 가슴부위 만진 물..
line
special news 실탄 없는 ‘콜드 건’ 소품이라더니 ‘탕’…알렉 볼..
불행한 사고로 촬영 감독 사망? 안전 외면 ‘인재’ 가능성 제기총격 닷새 전에도 ‘콜드 건’ 사고…노조 “안전..

line
“유괴될 뻔한 아이들, 20m 달려 도망치니 범인이 ..
홍준표 “화천대유·천화동인, 이재명의 대선 프로젝..
“속옷 색깔 궁금해” 군 여성 상관 성적 모욕한 20대
photo_news
신용카드 주워보니 주인이 ‘인디아나 존스’…진..
photo_news
이재영도 그리스 리그 데뷔…“코치진, 동료 덕..
line

illust
‘60억분의1’ 표도르, 2년만의 복귀전서 1라운드 KO승

illust
고진영, BMW 챔피언십 우승…LPGA 투어 한국 선수 200승 쾌..
topnew_title
number “기침 하지마”…커피숍에서 손님 폭행한 40..
‘한강 대학생’ 경찰수사 종료…친구, 유기치..
이준석 만난 김종인 “11월 5일 지나봐야 결심..
김태호·박진·심재철·유정복, 尹캠프 공동선대..
hot_photo
신봉선, ‘오징어 게임’ 술래 인형..
hot_photo
BTS “아미 소리 질러!”…팬데믹..
hot_photo
‘영화계 거목’ 이태원씨 별세…‘서..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사업안내 | 이용안내 | 구독안내 | 독자참여 | 회원서비스 | 고충처리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한형민) | Site Map
제호 : 문화일보 | 주소 :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22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697 | 등록일자 : 2011년 7월 15일 | 발행·편집인 : 이병규 | 발행연월일 : 1991년 11월 1일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 ☎ 02) 3701-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