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기사 상세 찾기 | 2019.10.18 금요일
전광판
Hot Click
북리뷰
[문화] 게재 일자 : 2016년 06월 02일(木)
“베트남전 ‘유령’은 경험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속 실체”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베트남인들이 전쟁 유령에게 행하는 의례는 역사의 상처를 딛고 인류의 연대라는 윤리적 지평을 열어 낸다. 사진은 베트남전쟁 당시 전사자 옆에서 망연자실해 있는 병사들의 모습. 자료사진

- 英 케임브리지大 권헌익 교수, ‘베트남 전쟁의…’ 국내 출간

현지서 머물며 일상참여 연구
학계 “인류학적 통찰의 수작”

개방정책후 정치 해빙기 도래
미군 유해 발굴 본격화되면서
전쟁영웅·적군 초월 추모 확산
전국적 차원 친족의례로 정착

“역사적인 상처와 고통을 넘어
‘인류연대’ 향한 문화적 실천”


‘유령(ghosts)’은 사회과학의 연구대상이 될 수 있을까. 유령은 다뤄지더라도 비유적으로 취급될 뿐 사회과학적 연구의 직접 대상으로 삼는 건 금기다. 유령은 사회적 세계를 구성하는 ‘사회적 사실’이 아니라는 게 일반적이고, 현대 국가는 과거 혹은 지금도 ‘미신’으로 낙인 찍어 유령에 대한 민간의 풍속이나 의례까지 강제로 금지했다.

유령을 ‘구체적 실체’로 다뤄 세계 인류학계에 충격을 던진 학자가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의 권헌익(54·사회인류학·사진) 석좌교수다. 그는 베트남전쟁 이후 현장에서의 오랜 실증적 연구를 통해 유령이 “구체적인 역사적 정체성을 가진 실체로, 비록 과거에 속하지만, 비유적인 방식이 아니라 경험적 방식으로 현재에도 지속한다고 믿어지는 존재”로서 베트남에서 ‘사회적 사실’을 구성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관한 저서 ‘베트남 전쟁의 유령’(산지니)이 영국에서 출간된 지 8년 만에 국내에서 번역됐다. 이 책은 뛰어난 동남아시아 연구서에 주는 ‘조지 카힌 상’ 제1회 수상작으로, 세계 학계에서 ‘어떠한 학자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 ‘인류학적 통찰의 거의 완벽하고 경이로운 예’라는 찬사를 들었다. 권 교수는 역시 베트남전을 다룬 ‘학살, 그 이후’(아카이브, 2012)로 2007년 인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기어츠 상’을 받은 바 있다.

저자는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상당 기간 현지에 거주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일상, 특히 가정의례에 직접 참여하며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 시점이 의미가 있다. 1986년 ‘도이머이 개방정책’ 이후 베트남 정부의 경제성장을 위한 노력, 미국 등 이전 적성국에 대한 화해 제스처 등 이데올로기의 변화는 정치적 해빙을 가져왔는데,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전국적 차원의 종교의례의 부활이었다. 주로 ‘전쟁영웅’에 제한돼 공식적으로만 추모되던 죽은 자들의 의례가 친족의 의례로 들어오고, 당시 ‘우리 편’이 아니었던 망자들도 친족의례에 편입됐다.

특히 도로 건설 등 경제개발로 발굴되는 전쟁 유해의 수가 급증했고, 미국과 수교(1995년) 이후 미군 유해(MIA·작전 중 실종자) 발굴이 본격화하면서 친족을 넘어 말 그대로 떠도는 유령들도 부활하게 됐다. 미국의 경제제재를 풀기 위해 MIA 발굴은 중요한 열쇠였고, 지방 관료들은 유해를 잘 찾는 영매(무당)를 고용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대다수 베트남인에게 전쟁 유령은 일종의 자연적 현상으로 인지되는 ‘존재론적 힘’을 가지며 그러한 사례는 책에 다양하게 소개된다. ‘존재론적 난민’이었던 유령들은 산 자들의 인정과 의례를 통해 제대로 정착하거나 떠날 수 있고, 은혜를 갚기도 한다고 현지인들은 경험을 통해 증언한다.

저자는 베트남에서 유령을 둘러싼 담론과 실천이 매우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현상일 뿐 아니라, 베트남인들의 역사적 성찰과 자아 정체성 표현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인류학적·사회학적·역사학적, 심지어 정치경제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사례 가운데 현지 조사 중에 한 지역의 영매를 만난 저자는 ‘명사수’라고 불리는 유령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 세계의 사람들도 여전히 명분 때문에 논쟁하고 싸우나요? 망자들의 세계에도 ‘우리 편’과 ‘그들 편’이 있나요?” 유령은 “아니요, 친애하는 외국인 친구! 망자들은 싸우지 않는다. 전쟁은 산 자들의 일이다. 내 세계의 사람들은 그들이 당신 세계에 있었을 때 싸웠던 전쟁의 동기와 목적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베트남인들이 전쟁 유령을 위해 수행하는 의례행위는 “역사의 상처와 고통을 넘어 인류의 연대라는 윤리적 지평을 지향하는 창조적인 문화적 실천”이라고 말한다. 6·25전쟁의 상흔을 여전히 안고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mail 엄주엽 기자 / 문화부 / 부장 엄주엽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많이 본 기사 ]
▶ 분노의 표창장…복직한 조국에 날린 청년들의 ‘신랄한 풍..
▶ 경찰관이 심야 귀가여성 집까지 따라가 성폭행 시도
▶ 도로 줄지어 이동하던 멧돼지 가족 10마리 ‘로드킬’
▶ 정무위 국감…한인섭 “曺자녀 인턴 말 못해”, 野 “제2의 조..
▶ 이번엔 입원증명서… 정경심만 거치면 ‘미스터리 논란’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 : m.munhwa.com ]
[AD]
topnew_title
topnews_photo - 한국갤럽 여론조사 조국사태 거치면서 급격 하락 민주당 지지율 36%까지 근접 국정수행 부정 평가 이유로 경제·민생이 인사문제 앞서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진 것..
ㄴ 文대통령 국정 지지율 40%선 첫 붕괴
하늘에선 8년차 女승무원, 땅에선 ‘몸짱’ 스타
문재인 하산 길, 박근혜보다 험난하다
정경심이 제출한 입원확인서엔 ‘뇌수막염’ 기재
line
special news 가수 김준수 “호텔 매매 300억 사기 피해”…경찰..
2017년 1월 토스카나 가족호텔 매매 관련 300억 규모 사기 고소…“처분 과정 속임수” 상대방은 의혹 부인..

line
민갑룡 “화성8차 ‘수사논란’ 받아들일 준비됐다”
文대통령, 李총리 통해 아베에 친서 보낸다
경찰관이 심야 귀가여성 집까지 따라가 성폭행 시..
photo_news
“제가 소설 펴냈다니까 앨범에 딸린 ‘굿즈’로 오..
photo_news
드라마 ‘타잔’ 론 엘리의 아들, 친모 살해
line
[Review]
illust
‘여권 쇄신론’ 불 지핀 정성호… ‘빌보드 200’ 1위 슈퍼엠
[주철환의 음악동네]
illust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나 같아”… 중년의 가슴을 흠뻑 적시..
topnew_title
number 서울시 남북협력기금 年 140만원 → 41억 폭..
김수연 “책 좋아하던 아들 가슴에 묻고… 전..
野, 서울교육청 ‘조국딸 감싸기’ 질타
“탈세 제보로 7조원 추징했는데 포상금은 0..
hot_photo
“새 아파트 욕실에 버섯이 자라다..
hot_photo
‘몸짱소방관’ 달력 사세요…전액..
hot_photo
김정은, 백마 타고 백두산행…“미..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사업안내 | 이용안내 | 구독안내 | 독자참여 | 회원서비스 | 고충처리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한형민) | Site Map
제호 : 문화일보 | 주소 :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22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697 | 등록일자 : 2011년 7월 15일 | 발행·편집인 : 이병규 | 발행연월일 : 1997년 1월 1일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 ☎ 02) 3701-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