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국회 해산권 · 2년 임기 自請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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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논설주간

헌법에는 그 나라의 헌정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미국의 대통령제, 프랑스의 이원정부제, 영국의 양당형(兩黨型) 내각제, 독일의 다당형 내각제는 한결같이 혁명과 전쟁을 포함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각국이 정착시킨 고유한 제도다(영국은 불문헌법). 이런 역사성을 외면한 채 허울만 수입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올바른 개헌을 위해 냉철한 진단, 그에 기초한 국민적 심사숙고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또다시 개헌 논의가 불붙고 있다. 과거에도 1990년 3당 합당 당시의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내각제 밀약,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의 내각제 공약,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 발표를 비롯, 대선 때마다 유력 후보들이 당선 뒤 추진을 공약했지만 모두 없던 일이 됐다. 그에 비하면 최근 정치 환경이 친(親)개헌 쪽으로 상당히 움직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백화제방(百花齊放)할 뿐 열매를 맺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우선, 다수 국민은 개헌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절박성은 느끼지 못한다. 헌법의 문제보다 정치의 문제, 지도자의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어떤 개헌이냐’가 실질적으로 중요한데, 국민적 합의가 없다. 1987년 개헌은 직선제 열망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은 대통령 4년 중임제, 이원정부제, 내각제 등 전혀 다른 생각이 혼재하고 있다. 기본권 강화, 통일과 북한 조항, 지방 분권은 물론 전문(前文)의 ‘건국 기점’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규정까지 가면 현 상황에서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개헌이든 국회 권한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현행 헌법에는 국회의 대통령 탄핵 및 국무위원 해임건의권은 있지만,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은 없다. 국정감사·조사권에다 국회의원·장관 겸직도 가능하다. 매번 ‘역대 최악’이란 오명을 듣고 있는 국회의 권한이 더 커지는 것을 국민이 호응하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개헌의 방향과 시기를 분리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필자도 헌법 보완에는 공감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5년 단임제에 문제점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국정 난맥이 발생한다는 주장은 허구다. 3년 차만 되면 지지자들조차 ‘투표한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는 마당에 4년 중임을 한다고 좋아질까. 선거 주기(週期) 문제도 번거롭기는 하지만 국정을 결정적으로 해칠 정도는 아니다. 통일이 되거나, 임박해지면 어차피 새로운 헌법이 필요하다. 혹시 개헌을 하더라도 한꺼번에 바꾸기보다 미국의 수정헌법처럼 필요한 조항 하나씩 하는 것이 화끈하지는 않지만 혼란을 줄일 것이다.

특히, 어떤 권력 구조가 최적인지에 대한 검토가 더 필요하다. ‘제왕적 대통령’이 문제인지, ‘무소불위 국회’가 문제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정확한 판단 위에서 선택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사실관계보다 정파적 이해관계에 휘둘리고 있다. 막연한 오해도 심각하다. 프랑스 이원정부제가 권력 분점형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초강력 대통령제다. 다만, 여소야대가 되면 ‘동거정부’라는 내각제적 운영이 시작되는데, 프랑스는 이런 일도 줄이려 대통령과 의원 임기를 5년으로 맞추는 개헌을 했다. 또 1960년 제2공화국 실패의 기억 때문인지 ‘내각제=정정 불안’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다. 그러나 영국이나 독일 총리는 대개 미국 대통령보다 강력하고, 자주 바뀌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개헌 불길을 확산시킬 태세다. 대선 정국에 따라 뜻밖의 동력이 생길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임기말 현상이 악화하면 개헌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있다. 관건은 현직 대통령의 결단과 국민의 지지다. 임기 마지막 해였던 2007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개헌 담화’까지 냈지만 국민 지지를 얻지 못해 실패했다. 개헌론자들이 조기 개헌을 시도하려면 방법은 있다. 국회 특권의 근본적 축소를 자청하는 것이다. 면책·불체포 특권 폐지를 넘어 국회 해산권을 도입하거나 4년 임기를 2년으로 줄여 ‘민의 반응성’을 높이겠다고 하면 국민이 진정성을 다소나마 인정할 것이다. 국회 해산권이 없는 미국에선 하원 임기가 2년이다. 프랑스 대통령은 국회 해산권과 비상 입법권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여야는 이런 것은 쏙 빼고 4년 중임이나 이원정부 얘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