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에 의한 또다른 냉전… ‘한국전쟁’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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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냉전시대 최초의 열전 / 베른트 슈퇴버 지음, 황은미 옮김 ／ 여문책

우리는 한국전쟁을 ‘우리식’으로만 알고 있지는 않나? 분단을 겪은 독일의 역사학자가 쓴 이 책은 한국전쟁에 대해 한반도 안에 갇혀 있는 우리의 시각을 ‘세계사’로 끌어올린다. 제3자가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가늠하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내용도 있지만, 역사를 우리가 편한 쪽으로만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저자 베른트 슈퇴버(55)는 독일 포츠담대학의 현대사 교수로 국내 학자들과 교류가 깊다. 주요 연구분야는 나치즘과 냉전, 동·서독 현대사인데, 특히 냉전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동서냉전의 시각에서 한국전쟁을 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 양 진영 간 대결은 그리스, 이탈리아, 이란 등지에서 ‘작은 대리전’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소련은 1945년 중국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의 혁명이 성공하는 순간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대, 특히 부산과 인천 등지의 항구에 관심을 가졌지만, 미국에 한반도는 최고의 관심구역에서 벗어나 있었다. 1950년 1월의 ‘에치슨 라인’ 발언이 잘 말해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안보정책을 펴는 데 효과적인 선전 도구로 이것을 이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각적인 유엔의 참전결의를 이끌어 낸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 책은 한국전쟁을 거시적 시각에서 보면서도 미시적인 부분까지 들여다본다. 예컨대 미국 병사들 사이에서 극심했던 심리적 공황상태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일부 미군들은 가능한 한 빨리 남쪽으로 도망치기 위해 무기를 버리고 내뺐다. 미군 의무대 기록에 따르면 전쟁 초반인 1950년 9월까지 정신질환이 급격히 상승했다. 무감각, 몸을 떠는 증상, 악몽 등의 이러한 증상은 나중에 ‘쇼크에 의한 적응장애(PTBS)’라는 이름으로 의학적으로 정리됐다.

한국전쟁이 미친 영향도 흥미롭다. 미국의 경우 한국전쟁 초기에 중앙정보국(CIA)의 첩보활동 패배가 여론의 비판을 받으면서 적의 정보조직을 도청하는 데 특화된 국가안전보장국(NSA)이 설립됐다. 동서 진영이 군비경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계기도 됐다. 1951년 미국 의회는 군사비를 70%나 증액했고, IBM은 군비를 지원받아 계산기를 만들었다.

미군 포로들이 적군에 기밀을 누설하는 사례가 늘자 미 첩보기관들은 대항 프로그램으로 심리학과 정신병학을 동원해 최면술, 전기충격, 환각제, 고문 등의 실험을 했고, 이는 ‘MK 울트라 프로젝트’라 불렸다. 미 해외정보국(USIA)의 주도로 ‘미국의 소리’(VOA) 등 국제적인 심리전도 본격 시작됐다.

무엇보다 미국은 한국전쟁으로 서양의 패권국가가 됐다.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서독은 그렇게 빨리 재무장을 할 수 없었고, 영국·프랑스·캐나다도 군사력 강화의 압박을 받았다. 일본의 경제부흥과 군수산업 발달, 군사적 재무장도 한국전쟁의 영향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