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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Her Story 게재 일자 : 2016년 06월 29일(水)
“남성 소대원들이 저보고 ‘무시무시하다’ 할 때 으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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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군과 미군의 최정예 전투원 자격을 모두 취득한 ‘한국판 GI 제인’ 정지은 중위가 지난 22일 육군 30사단 기계화보병대대 훈련장에서 소총으로 조준사격을 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

韓·美 최정예 전투원 동시합격 여군중위 정지은

경기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 육군 30사단 기계화보병대대에서 만난 정지은(26·학군 53기) 중위의 소속부대 지위는 ‘백비호(白飛虎)대대 늑대중대 2중대 소대장’이란 무시무시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정 중위의 첫인상은, 곱상한 외모, 키 160.3㎝의 단아한 체격, 상냥한 말투 등 어느 모로 보나 한·미가 공인한 최초의 ‘여군 최정예 전투원’ 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마음씨도 여리고 착한 편이라는 게 주위 전언이다. 더군다나 늑대중대 소대장에 걸맞은 우락부락한 체격도, 영화 ‘GI 제인’의 여전사 데미 무어를 연상케 하는 위압감 같은 건 찾기 힘들었다.

늑대가 상징마크인 2중대 투혼중대 도서관에서 인터뷰 도중, 얼굴에 시커먼 안면 위장 크림을 ‘화장품 찍어 바르듯’ 분칠하고, 군용 고글을 착용하고 나타나자 정 중위의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사진 촬영을 위해, 억수같이 내리는 장맛비 속, 나무 아래서 총을 겨누는 눈빛은 기계화대대의 상징물인 야생의 백비호를 연상케 했다.

날렵하고 용맹하며 강인한 체력을 상징하는 백비호는 장갑차나 전차를 몰고 적 부대 한가운데를 신속히 돌진하며 종횡무진하는 기계화대대의 화신, 수호신이다.

정 중위는 지난주 매일 쇄도하는 언론 인터뷰로 정신없이 바빠 보였다. 정 중위는 지난해 11월 부사관학교에서 시범 시행된 육군 최정예 전투원 2기 자격시험에 응시했다. 85명의 지원자 중 합격자는 정 중위를 포함해 4명에 불과했다. 여군은 그가 유일했다. 내친김에 지난 5월 8일부터 26일까지 미 2사단 내 한미연합사단 캠프 케이시에서 실시한 우수보병휘장(EIB·Expert Infantryman Badge) 경연대회에도 출전했다. 한·미 보병전투원 630명이 참가한 대회에서 한국군은 50명 중 21명이 합격했다. 미군에서도 우수보병 휘장을 획득한 여군은 아직 없다. 미군은 올해 1월 1일부터 여군에게 보병병과를 개방했다.

정 중위에게 육군 최정예 전투원 자격시험에 출전하게 된 동기를 물었다. “백비호대대에 배치된 뒤 처음 접한 중대장에게 반했기 때문”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 백비호대대 소대장으로 배치됐을 때 중대장님(강태형 대위)이 제가 닮고 싶은 전형적인 군인상이었습니다. 선두에서 부하들을 든든하게 이끌고 지휘할 때도 카리스마가 있고 절도가 있었지요. 무엇보다 부하들을 따뜻하게 대하고 아끼는 지휘관의 모습을 보고 그런 지휘관이 되고 싶었습니다.” 정 중위는 “그런 지휘관상에 빨리 다가서기 위해 최정예 전투원에 도전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정 중위가 미군 EIB에 도전하게 된 것은 “세계 최강의 군대인 미군이 어떻게 교육받고 훈련받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미 군대 훈련의 차이를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군 최정예 전투원 자격시험이 미군의 EIB보다 난도가 높고 준비기간도 많이 들었습니다. 급속행군 시 완전군장 무게가 한국군의 경우 군장 무게만 미군에 비해 4kg 더 많이 나갔습니다.”

그는 “미군 경연대회에 합격하는 데 우리 육군의 자격시험 참가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며 “한국군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힘들 때마다 사단의 구호인 ‘아이 캔 두(I can do!)’를 되뇌며 최선을 다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한국군 최정예 전투원 도전을 위해 한 달 보름간 사단에서 준비를 했다. 하지만 미군 EIB는 훈련이 생소해 사전 준비를 못했다고 한다. 2주간의 미군 집체 교육기간에 3∼4시간씩 자면서 준비해 따낸 합격의 성취였기에 더욱 값졌다. 연합사단장 시어도어 마틴 소장은 “정 중위는 한·미 장병을 통틀어 남녀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해 EIB를 취득한 유일한 여군”이라며 “이 사실을 미 보병학교에 통보해 미국 본토에도 홍보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정 중위에게 가장 힘든 과목은 급속행군이었다. 3시간을 완전군장한 채 20㎞를 주파하는 과목이다. “보폭이 짧아 일반 남군의 걸음 속도와 차이가 났습니다. 그들이 걸을 때 저는 뛰어야 했지요. 하지만 신체적 조건의 차이가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누구든 준비하면 해낼 수 있습니다.” 한국군 군장의 무게는 20㎏으로 소총 등 장구류를 모두 착용할 경우 25㎏에 이른다.

정 중위는 어릴 때부터 군인을 꿈꿔왔다. “가족 친지 중에 군인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어릴 적 외할머니가 다큐멘터리를 보라고 했는데 그게 제 눈에 꽂혔어요. 여군과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그때부터 군인을 목표로 삼게 됐습니다.” 정 중위에게 육사 응시 탈락은 인생의 첫 패배였다. 그만큼 실망이 컸다. 대안으로 택한 것이 용인대 경찰행정학과(군사학 전공)였다. 지금은 군 복무 중 용인대 경찰보안정보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용인대 재학시절, 실망하지 않고 군인의 길을 목표로 체력을 단련하고 몸을 꾸준히 연마했다. 당시 태권도 3단, 유도 3단 유단자가 됐다. 아마추어 복싱에도 입문해 ‘파이터’로서 입상 경력을 쌓았다. 2011년 생활체육대회 우승, 2012년 아마추어로 경기도여자신인선수권 대회 우승, 전국여자신인선수권 대회 3위에 입상했다. 그는 “제가 파이터로서 타고난 공격적 기질이 있는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달리기는 3㎞를 12분 초반에 주파했다. 특급 전사가 15분대에 주파하는 것에 비하면 뛰어난 편이다. 마라톤 풀코스를 4시간 30분에 달리며 지구력을 길렀다. 특급여전사는 이런 각고의 노력과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부하 장병들의 반응과 지휘철학이 궁금했다. “남자 부하들이 저보고 소대장님 무시무시하다, 무섭다고들 야단입니다. 그 말 듣고 군인으로서 자랑스럽고 든든합니다. 부하들이 제 지시를 잘 따라주고 말도 잘 들어 기분이 좋습니다.”

정 중위는 소대장으로서 분명한 소신과 신념을 갖고 있었다. “소대장으로서 저는 단순히 부하들에게 명령만 하는 게 아니라 먼저 솔선수범하는 소대장이 되고자 합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 노력을 많이 합니다. 남군 부하들이 저를 봤을 때 여군이라는 생각이 안 들고, 소대장으로서의 제 지시를 따르게 하고 전쟁이 일어났을 때 생사를 걸고 함께 싸울 수 있는 전우라는 생각이 들게끔 지휘를 하고 싶습니다.”

한국군과 미군 특수부대원이 기예를 겨루고 전우애를 함께하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 주인공 송중기 오빠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더니 대뜸 “잘생긴 제 남자친구와 비교할 수 없다”는 돌직구성 대답이 돌아왔다. 정 중위의 남자친구 자랑은 스스럼이 없었다. 충북 증평군 13공수여단에 근무하던 남자친구에게 합격 소식을 전했더니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무엇보다 다치지 않아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며 남자친구 자랑에 열을 올렸다. 용인대 경찰행정학과 동기로 힘든 훈련 과정을 곁에서 보며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친구라고 소개했다.

정 중위는 ‘태후’의 인기비결을 묻자 “국민이 원하는 군인의 모습을 잘 묘사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태후는 정말 중요한 가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외적으로도 군인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군인들이 일반인과 가족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모습, 막연하게 국가를 지킨다는 별종의, 동떨어진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 국민과 함께하는 소중한 사람들을 가까이서 지켜준다는 그런 믿음직하고 든든한 모습을 잘 그린 것 같습니다.”

‘철녀(鐵女)’ ‘GI 제인’ 등 무시무시한 수식어가 부담스럽지 않으냐고 물었다. “제가 바뀐 것은 없는데 주위에서 너무 치켜세워 주니까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부담스럽습니다. 제가 짊어지고 가야 할 무게고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주위 칭찬과 합격의 기쁨은 이제 가라앉히고 전투력 향상을 위해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빈틈없이 챙기는 군인이 되겠습니다.”

그는 “제가 꿈을 이뤄온 과정을 지켜본 지인들은 제 목표의 꿈은 어딘지, 어디까지 변할 건지, 너답다며 자랑스럽다고 축하인사를 건네온다”고 웃어 보였다. 정 중위는 “최근 여군이 많이 늘어나면서 모교인 용인대 등 학군단 여학생들과 여군 후배 중에서 저를 롤모델로 삼아 장교가 되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정예 전투원이 되기 위해 여군 남군 가리지 않고 부사관과 장교 중에서 노하우를 가르쳐주고 조언을 해달라는 이메일도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최정예 전투원 시험에 지원하고 싶은 간부들이 많은데 실패하거나 불합격할까 봐 두려움에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간부들이 많은데 결과와 상관없이 과감하게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실패했다고 해서 그것이 패배는 아닙니다. 실패의 경험이 나의 다른 도전에 영향을 미치고, 성취하는 경험들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성취해본 사람은 또 다른 성취를 위해 노력할 수 있고 시너지 효과를 내는 멋진 경험을 하게 됩니다.”

끝으로 여전사의 미래 꿈을 물었다. “후보생 때부터 한·미동맹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가능하면 한미연합사에서 근무하고 미군 위탁교육도 받고 싶습니다. 단순히 육군의 범위를 벗어나 함께 싸워야 할 세계 최강 미군의 잘하는 점을 배우고 공부하는 것이 제가 걸어야 할 또 다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정충신 부장(정치부) csjung@munhwa.com
e-mail 정충신 기자 / 정치부 / 부장 정충신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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