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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6년 07월 06일(水)
천체의 엑스선 발산처럼… 인간활동에도 ‘버스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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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김연아 기자 yuna@

김범준의 과학 이야기 - ⑮ 카카오톡

카톡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자주 쓴다. 금년 초 30년 만에 입학 동기들이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때 만든 카톡방에서 안부를 전하기도 하고 재밌는 얘기도 나눈다. 이제 반년 가까이 지나다 보니, 카톡방에 자주 글을 올리는 친구가 누구인지, 새 소식을 올리면 금방금방 답을 하는 친구가 누구인지도 알 수 있었다. 카톡방은 대부분의 시간 별 얘기 없이 한산하다가 누군가 글을 올리면 곧 다른 친구들이 답글을 연달아 올려 갑자기 대화가 활발하게 진행된다. 그러다 또 잠잠. 이처럼 우리가 살면서 어떤 일을 할 때는 대부분의 시간에는 별일 없이 잠잠하다가, 한번 시작되면 후다닥 활동이 활발해지는 그런 것들이 있다.

사실, 내가 이 연재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긴 행복한 평화의 시기가 지나고 마감일이 다가오면 어떤 내용으로 글을 쓸까 고민하며 망설이다 주제를 하나 잡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처음엔 짧은 단락 하나, 그러고는 또 한동안 잠잠. 마감일이 점점 임박하면 조급해진 마음에 노트북 앞에 앉는 시간이 늘어나고 후다닥 활동이 활발해진다. 하지만 글만 쓰며 사는 것은 아니다. 하루에 몇 시간 정신없이 글을 쓰다가도 점심 먹고 커피 마시고 다른 일도 하는 휴지기가 중간에 끼어든다. 그러고는 또 후다닥. 휴지기는 길이가 뒤죽박죽이다. 아주 긴 휴지기와 짧은 휴지기가 함께 있다.


오늘 얘기는 바로 내가 속한 동기들 카톡방 이야기다. 지난 1월 초에 시작한 이 카톡방에 올라온 글을 모두 모으니 반 년 동안 2000개 정도의 글이 있었다. 단 한 번이라도 대화에 참여한 친구는 모두 51명이니, 한 명당 평균 40개 정도의 글을 쓴 거다. 평균이 이렇다는 얘기지, 글 쓴 친구들 모두가 비슷한 개수의 글을 쓴 것은 아니다. 가장 많은 글을 쓴 친구는 무려 350번 정도 글을 남겼고, 딱 한 번만 글을 올리고는 잠수를 타는 친구도 있었다. 이럴 때는 친구들이 글을 쓴 횟수가 어떻게 분포하는지 막대그래프를 그려보는 것이 제격이다(자료를 정리해준 김기범 군에게 감사). 가장 글을 많이 쓴 친구가 1등, 두 번째가 2등으로 글 쓴 횟수에 따라 친구들을 한 줄로 순서대로 늘어놓은 것을 가로축으로 하고 세로축에는 각 순위에 있는 친구가 쓴 글의 개수를 막대의 높이로 표시해 그려보는 거다.


재미로 해보는 장난 같은 이야기만은 아니다. 전 세계 여러 도시를, 인구를 기준으로 일렬로 늘어놓고 1등 도시의 인구가 몇 명, 2등은 몇 명 식으로 같은 방식으로 그래프를 그려본 연구도 있고, 책을 한 권 펼치고는 그 책에 등장하는 단어들을 빈도를 기준으로 한 줄로 세우고는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그래프를 그려본 논문도 있다. 도시나 단어, 둘 모두 흥미롭게도 같은 함수 꼴을 따르는 막대그래프를 얻게 된다. 지프의 법칙(Zipf’s law)이라고 불리는 이 모양은 많은 사람이 익숙한 바로 그 반비례 관계(1/x)다. 즉, 단어 빈도가 지프의 법칙을 따른다는 말의 뜻은, 두 번째로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첫 번째 단어보다 1/2의 빈도로 쓰이고, 세 번째 단어는 첫 번째 단어보다 1/3의 빈도를 가진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도시의 크기도 마찬가지여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의 인구는 첫 번째 도시의 1/2 정도이고, 세 번째는 1/3, 네 번째는 1/4의 식으로 순위에 따라서 도시의 인구가 줄어드는 꼴이다. 단어의 빈도나 도시의 인구뿐 아니다. 기업 매출액이나 사람들의 소득도 비슷하게 멱함수 꼴로 줄어드는 막대그래프를 가진다. 그렇다면 과연, 카카오톡 내 동기들 대화방의 글들을 모아 글을 많이 쓴 순서로 친구들을 늘어놓아 그려본 순위-빈도의 막대그래프는 어떤 모습이 될까 흥미진진하다.


동기 카톡방의 순위-빈도의 그래프를 그려보니 지프의 법칙보다는 지수함수 꼴로 꼬리가 줄어드는 모양에 더 가까웠다. ‘함수’라는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고 말로만 설명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도 간단히 설명하자면, “카톡방에 자주 등장하는 친구는 정말 글을 많이 남기고, 글을 별로 남기지 않아 글 쓴 순위로 하위인 친구는 글을 정말 조금만 남긴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이처럼, 상위에 있는 무엇인가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하위로 가면 아주 조금만 있는 그런 막대그래프를 내가 이전에 다른 자료에서 본 적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성씨의 분포다. 누구나 알 듯이 김, 이, 박과 같은 흔한 성씨를 가진 사람은 우리나라에 정말 많고, 희귀 성씨를 가진 사람은 정말 적다. 한 성씨를 가진 사람들의 숫자를 세어서 그 순서로 성씨를 김, 이, 박…과 같이 차례로 늘어놓고 동기 카톡방에서와 정확히 같은 방법으로 순위-빈도의 그래프를 그리면 카톡방과 마찬가지로 지수함수의 꼴로 줄어드는 모양이 된다. 다른 나라의 성씨는 어떨까. 일렬로 성씨를 크기 순서로 줄지어 그래프를 그리는 것이니 당연히 상위에서 하위로 갈수록 막대그래프의 높이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보다 줄어드는 속도가 아주 느리다는 것이 큰 차이다(우리나라는 지수함수의 꼴을 따라 막대그래프의 높이가 급격히 줄고, 다른 나라는 멱함수의 꼴을 따라 훨씬 천천히 막대그래프의 높이가 줄어든다). 즉, 다른 나라에서는 상위에 있는 성씨를 가진 사람이 하위에 있는 성씨를 가진 사람보단 많긴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많지는 않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성씨 중 김 씨를 가진 사람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다. 또, 내 동기들 카톡방에서 가장 글을 많이 써서 일등을 한 친구가 쓴 글의 수도 전체 글 수의 거의 20%에 가깝다.


잠잠하다가 갑자기 확 어떤 일이 벌어지고, 또 한동안 잠잠하다가는 다시 어떤 일이 후다닥 여러 번 연달아 일어나는 그런 현상을 ‘버스트(burst)’라고 한다. 별 활동이 없이 잠잠하던 천체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엑스선이나 감마선을 발산하는 현상도 ‘버스트’라 불린다. 재미있게도 우리 뇌에 있는 신경세포도 비슷한 버스트 현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만히 잠잠히 있다가 갑자기 발화(firing)를 짧은 시간에 몰아서 한다는 뜻이다. 천체물리학이나 신경과학에서뿐만 아니다. 사실 이런 ‘가만히 있다 몰아서 하기’는 나나 독자나 세상을 살다보면 자주 겪는 일이다. 친구랑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주고받는 것도,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발표 자료를 준비하는 것도, 거래처를 방문하는 것도 아마도 비슷할 거다. 긴 평화로운 시간이 계속되다 갑자기 활동들이 후다닥 일어나는 이런 버스트를 보여주는 현상의 정량적인 공통점이 있다. 두 인접한 활동 사이의 시간간격을 구해보면, 잠잠한 평화기에는 시간 간격이 길고, 후다닥 활동기에는 일을 몰아서 하니 시간 간격이 짧을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평화기에는 긴 시간 간격이 듬성듬성 등장하고, 활동기에는 짧은 시간 간격이 여러 번 몰아서 등장한다. 두 활동 사이의 시간간격을 구해 일렬로 죽 적어놓고, 그 빈도를 세어서 막대그래프를 그려보면, 간격이 짧은 경우가 많고 간격이 긴 경우는 별로 없으니 꼬리 쪽(시간 간격이 긴 쪽)으로 갈수록 막대그래프의 높이가 점점 줄어드는 모양이 된다. 과학자들은 이런 당연한 얘기도 또 복잡하게 수식을 써서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과학자들이 묻는 질문은 “활동 사이의 시간 간격의 분포가 어떤 함수 꼴을 가질까”다.


이런 주제의 연구를 보고한 과학자가 이미 있다. 미국의 바라바시 교수는 2007년 ‘네이처’에 출판한 논문에서 ‘인간 동역학(human dynamics)’이라는 용어를 제안하면서 사람들이 이메일을 교환할 때 두 메일 사이의 시간간격을 조사해 그 분포를 살펴보았다. 시간 간격의 분포가 바로 꼬리가 두꺼운 멱함수 꼴이라는 것을, 즉 잠잠한 긴 소수의 휴지기와 후다닥 폭발적인 다수의 짧은 시간 간격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람들 활동에서의 ‘버스트’의 발견이었다.


내가 속한 동기들 카톡방에서 두 글 사이의 시간 간격을 계산해 그 확률 분포를 내 연구그룹의 이미진의 도움을 받아 구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바라바시 교수의 논문에서 보고된 이메일 교환과 마찬가지로 멱함수의 꼴로 줄어드는 모습을 얻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는 이처럼 완전히 다르지만 비슷한 경향을 보이는 것들이 있다. 오늘 살펴본 동기들 카톡방이나, 바라바시 교수가 분석한 이메일 교환이나 그리고 아마도 이 글을 쓸 때 내가 노트북을 사용하는 시간 간격이나 모두 비슷하게 잠잠한 휴지기와 후다닥 활동기가 마찬가지로 멱함수 꼴의 확률을 따라 분포한다. 카톡방 글 수 일등 동기가 곧 우리나라에 잠깐 방문한단다. 며칠 잠잠했던 카톡방은 오늘 또 그 일로 뜨겁다.(문화일보 6월 8일자24면 14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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