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진짜 셰프의 삶… 10년 허드렛일 해도 ‘바늘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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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희망직업 7위 조리사
조리관련 졸업생 취업은 암울
호텔·레스토랑 年 5%도 안돼

12시간 노동해도 대부분 박봉
위염 다반사·손님 스트레스도
“중도포기하는 사람 부지기수”

최근 셰프(요리사)가 최고 인기 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명 셰프들이 방송에 출연해 화려한 조리 기술을 뽐내면서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못지않게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들이 고용돼 있거나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은 예약이 몇 달씩 밀려 있을 정도로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인기가 높아진 만큼 자연스럽게 억대 연봉을 받으며 당대 최고 스타들만 찍는다는 TV 광고를 장악한 셰프들도 적지 않다. 유례없는 ‘셰프 열풍’에 장래희망으로 요리사를 꿈꾸는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 종사자들은 “셰프의 삶이 겉보기처럼 화려한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일부 유명 셰프를 제외하면 대부분 박봉에 시달리고 불규칙한 생활습관으로 건강에는 적신호가 켜지고, 일부 몰지각한 손님에게 모욕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을 배울 때는 마치 군대처럼 상명하복의 엄한 규율 아래 잔심부름이나 설거지 등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며 최소 5∼10년간 실력을 닦아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TV 화면을 통해 보이는 화려한 이미지만 생각했다가는 금세 실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따라서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면밀히 따져보고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는 게 성공한 셰프들의 조언이다.

서울 종로구에 사는 중학생 김모(15) 군은 최근 유명 요리학원에 등록했다. 이전까지 별다른 꿈이 없어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조사할 때도 형식적으로 ‘공무원’이라고 적어 냈지만, 최근 각종 TV 요리프로그램에서 맹활약하는 셰프들을 보고 ‘스타 셰프’를 꿈꾸게 됐다. 김 군의 부모도 셰프를 유망 직종으로 보고 아들의 결정을 존중해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김 군은 “최근 TV 쿡방(요리하는 방송)에서 멋진 모습으로 요리하는 이연복·오세득·최현석 셰프처럼 유명한 요리사가 되고 싶다”며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친구도 셰프가 되기를 꿈꾸며 조리 관련 학과가 있는 특성화고교에 진학하거나 해외유학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14년 전국 초·중·고교생 18만40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고교생 희망직업 7위에 조리사가 이름을 올렸다. 서울 H 요리학원의 임형욱 진로연구소장은 “수년 전만 해도 요리사는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 택하는 직업’이라는 편견이 커, 희망직업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며 “하지만 최근 셰프가 전문직으로 대우받으면서 사회적 지위가 높아져 학교 성적이 뛰어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도 일찌감치 셰프로 진로를 정하고 상담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임 소장은 “2010년에 비해 전체 수강생 수가 100%나 늘어났다”고 전했다.

대학 조리학과의 경쟁률도 높아지고 있다. 종로학원하늘교육에 따르면 경기대, 경희대, 우석대, 전주대 등 주요 14개 대학 조리 관련 학과의 올해 수시 경쟁률 평균은 8.7대 1로 지난해(7.3대 1)보다 올랐다. 경기대 외식조리학과는 경쟁률이 32.3대 1에 달했다. 대학 재학생들이 듣는 조리 실습 관련 과목에는 수강 정원의 2∼3배 학생들이 몰리며 수강 신청 때마다 전쟁이 벌어질 정도다. 셰프 지망생들은 호텔 또는 유명 레스토랑에 취직해 대기업 부럽지 않은 고액 연봉을 받고, 나중에는 ‘오너 셰프’로서 직접 레스토랑을 차려 부를 쌓아올리는 미래를 그려 보며 조리 도구를 집어 든다. 실제로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오세득 셰프는 한 방송에 나와 “억대 연봉 정도는 번다. 보통 방송에 나오는 셰프들을 보면 대기업 임원급 연봉은 된다”고 말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렇다면 일류 셰프로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전문가들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어렵다’는 말이 딱 맞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명문 요리학교인 ‘르 코르동 블루’의 제1호 한국인 유학생으로 호텔신라 총괄 조리장을 지낸 최수근 경희대 조리학과 교수는 “연간 조리 관련 학과 전체 졸업생 2만여 명 중 호텔이나 유명 레스토랑에 취업해 정통 셰프 코스를 밟는 인원은 5%가 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다수가 근무 환경이 열악한 일반 음식점이나 단체급식 부문에서 일하거나 푸드트럭 등 작은 가게를 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4대 보험 보장, 다쳤을 경우 산업재해 처리 등은 꿈도 못 꾼다. 또 장사가 안 되면 언제든 실업자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한다.

최 교수는 “그나마 정통 셰프 코스를 밟더라도 연봉 2500만 원부터 시작해 10년 이상 고된 훈련을 받으며 기본기를 쌓아야 어엿한 셰프 대접을 받는다”며 “초반에는 허리 한번 못 펴고 설거지 등만 반복하는데, 이를 견디지 못해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설거지 단계를 졸업하면 재료 손질, 샐러드 만들기, 불을 쓰는 요리 등을 차례로 배우면서 동료들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재능을 인정받은 사람만이 주방 전체를 조율하는 총괄 셰프 자리에 올라설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쉴 때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을 견뎌야 하는 등 셰프들이 감내해야 할 어려움은 그 밖에도 한둘이 아니다. 환기도 잘 안 되는 주방에서 계속 연기를 마셔 가며 일을 하느라 기관지·폐 질환에 시달리거나 끼니를 제때 챙겨 먹을 수 없기에 위염을 달고 사는 경우도 흔하다. 진짜 ‘왕’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세하는 ‘진상 손님’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일상적.

이경희 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는 “외식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능력을 갖춘 셰프들은 귀한 대접을 받게 됐다”면서도 “셰프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보기와 달리 셰프의 세계는 화려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성공 가능성도 높지 않다. 요리에 뛰어난 재능이 있고 진정으로 재미를 느끼는 사람만 셰프의 길을 택할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최준영 기자 cjy3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