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Focus >日 “인구 25% 고령노동자 활용하라”… 정년 ‘60→65세’ 확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이 초고령사회로 치달으면서 근로자들의 퇴직연령도 점점 늦춰지고 있다. 사진은 일본의 대도시 거리를 가득 메운 중장년층 신사들. 젊은이들보다 정장에 넥타이를 맨 장년층 신사들이 많은 게 어느새 일본의 보편적 현상이 됐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日 산업계 ‘정년연장’추세

전체 인구 약 4분의 1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 일본에서는 직장에서 정년퇴직한 후 ‘제2의 인생’을 맞이하고도 일을 계속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본의 고령 노동자들이 계속 일을 선택하는 이유에는 경제적 이유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인 기대 수명하에서 남은 생애 동안 뭔가 보람된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는 희망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일본의 각 기업은 장기간의 저출산으로 신입 사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숙련된 노동자’로서 언제든지 현업 각 분야에 투입할 수 있는 고령 노동자들을 귀중한 인력으로 여기고 있다. 이에 최근 일본 산업계 각 분야의 주요 기업들은 잇달아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확대 중이다.

15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최근 일본에서 정년 확대 움직임이 가장 두드러지고 있는 분야는 금융계다. 생명보험업계 대기업인 메이지야스다(明治安田)생명은 2019년부터 영업직을 제외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정년을 현재의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일본 생보업계에서 정년을 65세로 늘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메이지야스다생명은 저출산으로 인한 인력 부족을 해소하고 오랜 경험을 쌓아 전문지식을 갖춘 인재를 활용하려는 목적으로 노동조합과의 논의를 거쳐 이 같은 정년 확대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본 3대 은행 중 하나인 미즈호은행을 운영하는 미즈호파이낸셜그룹(FG)도 2018년부터 직원 정년을 65세로 연장할 방침이다. 이 역시 일본 3대 은행 중 최초다. 미즈호FG의 이 같은 결정은 경험이 풍부한 고령 직원들의 업무 노하우를 충분히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라증권은 지난해 4월부터 개인영업을 담당하는 일부 직원의 정년을 65세로 연장하고 65세 이후엔 최장 70세까지 재고용하기로 했다.

일본 금융계는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맞아 예대금리 마진 수입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경영 방식만으로는 수익 창출이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자산운용 및 활용상담 등을 통해 수입을 늘려야 하는데, 이런 업무에는 경험이 풍부한 고참 직원들의 노하우를 활용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일본 기업들의 정년 확대 움직임은 금융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제조업, 서비스업 등 각 분야에서 활발히 나타나고 있다. 음료 회사인 산토리는 이미 2013년 4월부터 임금피크제를 전제로 정년을 65세까지 늘렸으며 일본 최대 패밀리레스토랑업체 스카이라크도 지난 9월 종업원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했다.

고령자에게는 일이 버거워 보일 것 같은 제조업·건설업 분야에서도 이 같은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혼다자동차는 지난해 말 고령 사원들의 노동 의욕을 높이기 위해 정년을 5년 더 연장하고 임금피크제에 따른 임금 감소율도 기존 50%에서 평균 80% 수준으로 완화하기로 하는 내용의 새로운 정년 제도를 올해 중 시행할 계획이다. 정년 연장은 아니지만 토요타자동차도 지난해 9월 노사 합의를 통해 올해 1월부터 공장에서 근무하는 생산직 약 4만 명을 대상으로 65세까지 처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정년이 지난 노동자를 재고용하기로 했다. 주택전문 건설업체인 다이와(大和)하우스공업도 지난 2013년 이미 정년을 65세로 늘렸고, 같은 해 중공업회사인 IHI그룹도 59세의 사원들이 60∼65세 사이의 정년을 스스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선택정년제’를 도입해 선택한 정년까지는 풀타임 근무를 보장하도록 했다.

사실 일본 정부는 2013년 4월 1일부터 65세까지의 고용을 의무화한 개정 ‘고령자고용안정법’ 시행을 통해 노동자들이 65세까지 직장에 머무를 수 있는 기본 바탕을 마련했다. 이 법에 따르면 각 기업이나 사업장은 정년연장, 정년폐지, 계속고용제도 등을 통해 노동자들의 고용을 65세까지 보장해야 한다. 한국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후생(厚生)연금 지급 시기가 원래 60세부터였지만, 이때부터 순차적으로 지급 시기가 늦어져 2025년 4월에는 65세가 돼야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에 60세로 정년퇴직한 사람들이 수년간 소득 없이 지내는 사태를 막겠다는 것이 법 개정의 취지였다. 그러나 인건비 부담으로 인해 사측은 대부분 노사가 마련한 기준에 따라 정년이 지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임금 등 근로 조건 일부를 변경해 재고용하는 계속고용제도를 주로 취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고령 노동자의 가치를 재발견하며 오히려 처우를 개선해 가면서 이들을 65세까지 붙잡아두려는 것이다.

일본 주식시장에서는 고령 노동자를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기업 가치 평가의 한 항목이 되고 있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숙련 노동자들은 매뉴얼화 돼 있지 않은 공정에서 나오는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켜 기업의 장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이 같은 장점은 기업의 수익 증대와 기업 가치 향상, 주가 상승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