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한·미전문가 공동분석>“소득줄고 이민자에 복지 뺏겨”… 백인의 상실감, 트럼프에 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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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트럼프, 누가 왜 지지하나

미국 대선은 미국인들만의 선거가 아니다. 어느 당의 어떤 인물이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한국은 물론 아시아, 전 세계 정세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미 경선과 대선 프로세스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지구촌 빅 이벤트다.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맞붙는 올해 대선은 전문가들의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큰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문화일보는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워싱턴사무소 소장과 로버트 샤피로 미 컬럼비아대 정치학과 교수가 미국의 다양한 여론조사를 통해 공동으로 미국 대선의 주요 판세를 분석하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2016년 미국 대선은 이례적이다. 1940년 공화당 후보로 지명됐던 웬들 윌키 같은 기업인이나 1828년에 대통령으로 당선됐던 앤드루 잭슨, 1952년에 당선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같은 비(非)정치인들도 있었지만 1970년 이후 오늘날과 같은 예선 과정이 도입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같은 인물이 정당 대선 후보로 본선에 진출하게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계속되는 트럼프의 파격적인 발언도 현대 미국 정치에서 보기 드문 경우다. “멕시코와 벽을 쌓겠다.” “한반도에 전쟁이 나든 말든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해체돼도 미국과 큰 상관은 없다.” “무슬림의 입국을 전면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또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최악의 거래.” 등등 근거와 현실성이 적은 발언을 서슴지 않는 데도 일부 유권자들이 트럼프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이 놀라울 수밖에 없다. 공화당이 트럼프를 당 대선 후보로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된 비결을 여러 가지로 설명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지지층 성향을 파악하고 공화당의 선택을 이해하려면 여론과 예선 출구조사 자료를 기반으로 한 분석에 기댈 수밖에 없다.

먼저 분석이 필요한 자료는 경선 출구조사다. 데이터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트럼프에 대한 지지는 압도적이다. 다른 후보들과 비교해 봤을 때 어느 한 부분에서도 뒤처지지 않는다. 종교나 소속 정당 또는 가계소득과 상관없이 모든 분야에 있어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조금 더 깊게 파고들면 새로운 패턴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계소득률의 경우 전반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저소득층뿐이라는 말은 맞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소득 5만 달러(약 5680만 원) 이하에 해당되는 유권자들 사이에서 트럼프에 대한 지지는 50%가 안 되는 정도이지만, 5만 달러 이상으로는 42%를 초과한다. 8%포인트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평균 가계소득으로 따지자면 1가구당 소득 7만 달러 정도의 수준이다. 즉 트럼프가 예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력과 성별 또는 인종면에서는 더욱 분리된 패턴이 나타난다. 학력이 높아질수록 지지율은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고졸 이하 학력의 유권자들 사이에서 트럼프의 평균 지지율은 53% 정도 되고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유권자들을 합치면 50% 정도이다. 반대로 대졸 이상의 고학력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평균 35% 정도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고학력 유권자들과 저학력 유권자들의 지지율 차이가 15%포인트나 된다. 저학력 유권자들의 평균 지지율이 다른 후보들에 비해 2배가 넘는 수준이다. 적지 않은 지지율 차이다.

트럼프는 연령대가 높은 유권자 사이에서도 유리해 보인다. 29세 미만으로는 평균 지지율이 34% 정도 되지만 35세 이상으로는 10%포인트 더 높다. 마지막으로 백인 유권자 지지율이 다른 후보들에 비해 높은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 모든 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았을 때 트럼프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저학력의 백인 중·저소득층 유권자들로 분석된다. 하지만 출구조사만으로 트럼프의 지지층을 파악하기엔 한계가 있다. 경선 때 모든 주가 출구조사를 실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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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에서는 일부 28개 주만 자료를 모았다. 나머지 22개 주에 대한 출구조사 정보는 없다. 출구조사 방법론 자체에 대한 문제 외에도 예선에서 투표권을 발휘하는 유권자들은 본선과 성향이 다르다. 예선에 참여하는 각 정당 유권자들은 본선 때 참여하는 유권자들보다 극단적이고 강한 성향의 유권자층이다. 선거 이슈들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관심과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후보들의 예선 전략 역시 이러한 유권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조금 더 극단적인 자세와 태도를 강조하게 된다.

예선 때 보여준 트럼프의 모습은 이러한 공화당 유권자 성향을 반영했을 것이고 본선에 들어서면서 조금 더 중립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트럼프 선거 캠프가 코리 르완도스키를 선거대책본부장 자리에서 경질하고 공화당 주류의 폴 매나포트에게 전략 주도권을 넘겨준 것도 이러한 현실에 대한 대비책으로 볼 수 있다. 즉, 본선은 예선과 다르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고 보다 넓고 다양한 관점으로 트럼프 현상을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퓨리서치센터가 전국의 165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에 대한 남성의 지지율은 49%, 백인들의 지지율은 51%이고 흑인과 히스패닉계 지지는 각각 7%와 24%이다. 30세 미만의 경우 30.0%, 50세 이상으로는 47.5% 정도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대졸 미만의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44% 정도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대졸의 경우 35% 정도다. 가계소득이 연 3만 달러에서 10만 달러 미만인 경우 45% 정도이고 3만 달러 이하의 수준에서는 33% 이하다. 이 결과를 보면 트럼프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대부분 연령대가 높은 편이고 저학력, 백인, 남성, 중산층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는 상호적으로 연관돼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워싱턴포스트(WP)와 ABC가 지난 5월 중순에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의 지지율은 4년제 대졸 미만의 백인 유권자 사이에서 65%이고 대졸 백인들 사이에서는 46%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격차는 1980년도 이후로 처음이다. 성별 면에서 트럼프에 대한 백인 남성 유권자들의 지지율은 69%이며 백인 여성들 사이에서는 47%이다. 대졸 미만의 백인 남성들 사이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은 76%이고 대졸 이상의 백인 여성들 사이에서는 34%다. 성별에 따른 지지도의 격차가 교육수준에 따라 2배가 넘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지층은 왜 트럼프를 선택한 것인가?

첫째로, 공화당이 당원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2008년 그리고 2012년에 두 차례 새로운 정책과 정치를 존 매케인(애리조나) 상원의원과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통해 약속했지만 대선에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배하면서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공화당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한 예로 공화당 성향의 보수 운동 단체인 티파티가 2010년 이후 정치적으로 조직화되면서 티파티 지원을 받은 의원 45명이 당선된 이유도 전통적인 공화당의 사회적 보수파(social conservative)나 재정적 보수파(fiscal conservative)에 대한 반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공화당이 2008년이나 2012년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면 2016년 대선 상황은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선거에서 패배한 것도 정당 지도층에 대한 불신임을 가져왔지만, 경제 상황이 대침체로 연결되면서 중산층 사이에서 정부에 대한 불만이 커진 것도 큰 원인 중 하나다. 미국 경제는 되살아나고 있지만 평균 가계소득은 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러 공화당 소속 유권자들은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된다.

갤럽이 지난해 5월에 진행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공화당 소속 응답자 중 30% 정도가 부유층이 부담할 세율을 높이는 것을 찬성한다고 했으며,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서는 정부의 예산을 줄이는 것보다 사회복지 혜택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답한 공화당 소속의 응답자가 62% 정도나 됐다. 즉 공화당 유권자 중 부유층에 관한 세율을 높이고 복지권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상당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 지지자 중 84%는 멕시코와 벽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64%는 무슬림 종교인들을 조사해야 하며 67%는 자유무역이 미국에 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 모든 주장을 공화당의 고연령, 저학력, 중산층 백인 유권자들과 연결시키면 트럼프의 지지층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대침체로 인해 미국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고 사회 복지권이 소수민족과 여성 그리고 외국인들에게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트럼프라는 이름에 매달리고 있다. 이들은 어려운 경제와 허술해진 미국의 안보 상황에 대해 현 정부와 민주·공화당 모두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이 문제들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약속하는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권자들의 지지만으로 트럼프의 대선 승리를 예측하기엔 이르다. 오는 11월 8일에 어떤 유권자층이 어떠한 규모로 선거에 참여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부유층과 기업에 대한 반감을 품은 사회 복지권을 선호하는 중산층, 저학력, 고연령 백인들이 여성이나 소수민족 또는 젊고, 새로운 시민권 취득자들보다 더 많이 투표에 참여한다면 트럼프에게 승산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공화당의 승리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남은 기간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또는 경제나 안보 상황이 나빠지면 이는 민주당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이러면 트럼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최근에 일어난 올랜도 총기 난사 사건이 다른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확산하거나 중동 또는 아시아에서 외교안보와 관련돼 좋지 않은 소식이 연달아 발생한다면 현 정부와 연결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가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유럽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경제·외교 정책에 대한 문제로 해석된다면 공화당과 트럼프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 자유당 후보인 게리 존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에 대한 여론 지지가 15%를 넘어선다면 대선 토론에 참여하게 될 것이고 두 정당 후보에 대한 지지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다. 자유당 성향은 공화당과 가까우나 존슨의 경우 대마초 합법화나 불법체류자 추방을 반대한다는 점이 민주당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있고, 공화당 소속인 유권자들은 존슨이 주장하는 낮은 세율 정책을 선호할 것이다. 지금으로선 자유당 후보의 참여가 이번 대선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하는 상황이다.

공화당은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 끌어올린 당원들을 토대로 당의 철학과 정체성을 재정립할 것인가 아니면 이들을 무시하고 전통적 보수주의의 근본 가치를 지킬 것인가? 이번 대선은 누가 백악관을 차지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공화당의 운명을 가를 중요한 선택이 될 것이기도 하다.

로버트 샤피로·제임스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