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종’이란 말의 불편한 진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브라질 사진작가 안젤리카 다스의 프로젝트 ‘휴마네’. 전 세계 사람의 피부색을 미국 컬러 전문회사인 팬톤 색채표로 표현한 작업으로 인류의 다양성과 평등함을 보여준다. 안젤리카 다스 홈페이지

황인종의 탄생 / 마이클 키벅 지음, 이효석 옮김 / 현암사

오늘날 피부는 사회적 위계를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겉표지다. 하얗고 팽팽하고 탱탱하고 촉촉한 ‘꿀 피부’를 보호하고 관리하고, 화장술은 물론이고 미용성형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실현하라는 명령이 여러 가지 언표를 통해 끝없이 쏟아진다. 따라서 피부는 곧 권력의 작동방식을 드러낸다. 피부는 생물학이나 의학의 대상이 아니라 철학이나 계보학의 대상일 때 그 의미를 적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황인종의 탄생’은 피부 색깔의 계보학을 시도한다. 저자 마이클 키벅의 관심은 황색 피부다. 저자는 여행기, 지리학, 민속학, 의학, 생물학 등에서 가져온 방대한 자료를 순서대로 하나씩 늘어놓으면서, 피부 색깔이 어떻게 ‘백색’을 꼭짓점으로 삼아 인간을 위계화해 갔는지, 그 와중에 이른바 ‘하얀 피부’의 인간들이 어떻게 중국, 일본, 한국, 몽골 등 동아시아인들을 통째로 묶어서 ‘황색 인간’으로 만들어 갔는지, 중국인이나 일본인은 이를 어떻게 수용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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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이나 흑인은 환상일 뿐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한없는 차이뿐이다. 어떻게 측정하든 피부 색깔에는 동일성이, 특히 집단적 동일성이 전혀 있을 수 없다. 백인이라 해도 그 농담이 다르고, 흑인이라 해도 그 광택이 다르다. 완전한 흰색이나 검은색은 있을 수 없다.

백인이라고 불릴지라도 변이들, 이행들, 차이들이 개체를 횡단하면서 낯선 집합을 만든다. 가령, 처음에 유럽인은 중국인을 유럽인보다 더 하얀 백인, 또는 자신과 똑같은 백인이라고 불렀다. 피부 색깔에서 독일인과 유사하다고 여겼으며, 기독교 선교를 받아들일 만큼 훌륭한 문명인으로 여겼다. 하지만 일본에서 교역과 선교가 쉽사리 성사되고, 중국에서는 자기들 뜻대로 되지 않자 중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돌변한다. 일본인은 계속 백인이라고 불릴 만하지만, 중국인은 피부색이 어두운, 흑인에 가깝다는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 도쿠가와(德川)막부가 가톨릭을 박해하고 쇄국을 실시하자, 일본인에게서도 흰 피부의 표지를 박탈한다.

그러자 동아시아인들을 어떻게 새롭게 범주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부각된다. 흰색도 아니고 검은색도 아닌 색깔인 ‘황색’이 여기저기에서 갑자기 중요하게 호명된다. “황색이 처음에는 중국인이 유럽인에 가깝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방편(모든 중국인이 검은 것은 아니다)이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굴색의 차이를 가리키는 용어로 재편(어떤 중국인도 백색이 아니다)되었다.”

왜 황색이었을까?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황인종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인 것은 분류학자로 유명한 린네다. ‘자연의 체계’(1735)에서 그는 호모 사피엔스를 “유럽인 백색, 아메리카인 홍색, 아시아인 갈색, 아프리카인 흑색”으로 분류한다. 아시아인의 피부 색깔에 부여한 라틴어는 푸스쿠스(fuscus)다. 그런데 이 말은 ‘어두운’이라는 뜻으로도 쓰였다.

푸스쿠스가 구체적으로 무슨 색깔인지가 논란이 되자, 린네는 개정판에서 아시아인을 루리두스(luridus)로 부른다. 이 말은 ‘황색’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경멸적인 말로 ‘끔찍함, 더러움, 핼쑥함’을 함의한다. 유럽 의학에서 황색 하면 흔히 ‘무기력, 나태, 게으름’의 결과인 황달을 떠올린다.

이로써 황색 인간인 중국인한테는 ‘게으름’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진다. 완벽한 문명인인 ‘백색 인간’이 아닌, 즉 병적이고 열등한 피부색을 띤, 게으름 탓에 찬란했던 문명을 정체시킨 ‘황색 인간’이 탄생한 것이다.

1795년 형질인류학자 블루멘바흐는 “동아시아와 아프리카는 ‘태고의’ 백색 유럽으로부터 가장 멀리 퇴화해 간 지역”으로, 거기에 거주하는 인간들을 ‘몽고인종’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블루멘바흐 이전에 몽고인종이라는 말은 쓰인 적이 없다. 이후 서양에서는 동아시아인들을 몽고인종으로 구획하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피부 색깔을 측정해서 황색으로 고정하고, 몽고눈과 몽고점, 몽고증 같은 인류 공통의 신체적·의학적 증상에 몽고라는 인종주의적 꼬리표를 단다. 심지어 몽고점의 존재는 아틸라와 칭기즈칸과 무굴의 침략이 빚어낸 야만적 역사의 결과라는 왜곡까지 덧붙여진다. 이로써 “황색 피부는 동아시아인의 몸을 가리키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서양식 근대학문의 압도적인 전개 속에서 동아시아인의 의식을 지배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안에 스며든 오리엔탈리즘을 쓰라리도록 자책했다. 회의를 통해 자신을 다시 세우는 것이 비판이라면, 이 책은 우리 사유의 한 발판을 확실히 무너뜨림으로써 비판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만하다.

장은수 출판평론가·순천향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