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Focus >日 ‘헬리콥터 머니’ 최후의 카드 꺼내드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2일 일본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오른쪽) 총리가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일본 총리관저 홈페이지

- 위기의 아베노믹스… 대규모 경기부양책 주목

디플레 탈출 목표 실현 안돼
통화정책 ‘극약처방’ 관측
‘헬리콥터 벤’ 버냉키 訪日
아베 면담 뒤 기대감 커져

금융권선 실효성에 비관적
日銀, 국채 무제한 인수 땐
재정법 위반 논란 휩싸일듯
28일 금융정책결정회의 촉각

‘일본은 과연 경기 부양을 위해 극약 처방을 쓸 것인가.’

지난 10일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이 유권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기 부양을 위해 대규모 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란 전망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통화 정책에 있어 극약 처방이라고 할 수 있는 ‘헬리콥터 머니’ 카드를 빼내 들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정부가 재정에 필요한 통화를 중앙은행으로부터 직접 조달할 수 있는 이 통화 정책은 아직 세계 어느 나라도 실행해 본 적이 없지만, 아베노믹스(아베 정권의 경제 정책)의 일환으로 이미 대규모 양적 완화뿐만 아니라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한 일본이 경기 부양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통화 대책이 헬리콥터 머니밖에 없다는 관측 때문이다.

마이너스 금리 도입으로 경영에 타격을 입은 일본 금융권의 비관적 반응을 비롯한 대내외적인 헬리콥터 머니에 대한 우려, 실정법상의 난관 등으로 인해 실행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최근 일본 정권 및 중앙은행은 이를 활용할 수도 있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오는 28∼29일 열리는 일본은행의 금융정책결정회의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2일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최근 일본의 금융권 등 시장에서 ‘아베 정권과 일본은행이 헬리콥터 머니를 활용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나타나는 이유나 배경은 다양하다.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예측하기 어려운 엔화 시세다.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엔화 환율은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의 경우 한때 달러당 125엔대까지 올라갔다. 이 같은 엔저(低)는 일본 수출 기업들의 실적을 높여 일본 주식시장의 활황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초부터 상황은 역전됐다. 연초부터 110엔대로 떨어진 엔화 환율은 지난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 후 장중 한때 달러당 100엔선이 붕괴되기도 했다. 브렉시트 결정 후 한 달여가 지났지만, 21일 현재 달러당 106∼107엔대에 머물고 있다. 뜻밖의 엔고(高)는 일본 주식시장의 폭락을 초래하기도 했다.

또 금융완화, 재정 확대 등 ‘세 개의 화살’로 비유되는 경기 자극책에도 불구하고 아베노믹스의 근본적인 목표인 물가상승, 즉 ‘디플레이션 탈출’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헬리콥터 머니를 기대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총재가 이끄는 일본은행은 지난 4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2%대 물가상승 목표 시기를 종래의 2017년 4∼9월에서 2017년 중으로 연기했다. 현재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0%대다.

지난 11∼12일 일본을 방문한 벤 버냉키 전 미국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도쿄(東京)에서 구로다 총재와 아베 총리를 연이어 면담했다는 정황도 헬리콥터 머니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버냉키 전 의장은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헬리콥터 머니 정책의 전파자다. 또 내각관방참여(총리 특보에 해당)로 근무하며 아베노믹스를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혼다 에쓰로(本田悅朗) 주스위스 대사도 최근 아베 총리에게 “지금이 헬리콥터 머니를 시작할 기회”라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13일 아베 총리와 버냉키 전 의장의 면담 등 헬리콥터 머니 도입 정황에 대해 “헬리콥터 머니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또 구로다 총재도 21일 B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헬리콥터 머니 정책을 시행할 필요성도, 가능성도 없다”고 일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권이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 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였다는 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아베 정권은 이에 부응하기 위해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것이고, 그 가운데 극단적인 통화 정책이 포함될 수 있다는 관측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 헬리콥터 머니가 실제로 도입되기에는 실정법상 절차나 실효성 의문 등 난관도 만만치 않다. 헬리콥터 머니는 버냉키 전 의장의 스승이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1969년 만들어낸 용어다. 마치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는 것처럼 중앙은행이 정부의 재정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중앙은행이 국채를 정부로부터 직접 매입하는 방법 등이 있다. 이 경우 정부는 국채를 제한 없이 발행할 수 있다. 그러나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일본은행이 국채를 무제한으로 인수하는 행위는 재정 적자 보전에 해당하며, 이는 일본 재정법 5조에서 금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일본은행법에서 보장하는 중앙은행 독립성을 훼손하는 행위가 될 우려가 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제기했다.

또 헬리콥터 머니에 앞서 ‘극약 처방’으로 여겨지던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도 불구하고 엔화 환율과 일본 증시는 쉽사리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미 국내총생산(GDP) 대비 200% 이상의 부채를 안고 있는 일본 정부가 헬리콥터 머니 실시 이후 추가로 발생할 부채 부담을 감당하면서 재정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