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입문 2년6개월만에 破100… 자축 떡 돌리니 다들 웃더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비웅 ㈜아이보틀코리아 회장이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집무실에서 히커리 샤프트를 장착한 퍼터로 연습하고 있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30년째 사용 중인 가죽 골프 백을 설명하는 모습. 김낙중 기자 sa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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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웅 ㈜아이보틀코리아 회장

김비웅(59) ㈜아이보틀코리아 회장은 자신을 ‘골프 환자’라고 칭했다. 골프 마니아보다 더 골프에 빠진 사람이란 뜻이다. 김 회장을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집무실에서 만났다. 집무실 한쪽에 있는 다양한 퍼터, 그리고 앤티크 풍의 통가죽 골프 백에 대한 설명을 듣자 고개가 절로 끄덕였다. 기자가 골프 백을 들어보니 보통 것보다 배는 더 무거웠다. 30년 전 이탈리아 피렌체 여행 중 산 것인데 그동안 찢어지고 헤져 수십 차례 수리했으며, 여전히 애지중지하고 있단다. 퍼터는 김 회장 자신이 직접 히커리 샤프트를 끼워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에겐 이처럼 ‘컬렉션용’으로 수집한 골프 백이 20개, 아이언이 15세트, 골프화가 10여 켤레를 넘는다.

김 회장이 들려준 자신의 30년 골프 이야기는 반전의 연속이었다. 김 회장은 “골프를 너무 못 쳐 몇 년 동안 100타를 깨지 못했다”며 “그런데 10년 만에 첫 70대를 친 이후 지금까지 ‘왕싱글’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서른 전이던 1985년 골프에 입문했다. 1983년 대학 졸업 후 제조업에 뛰어든 김 회장은 금속공장을 운영하며 고급 패션 브랜드의 옷걸이(행어)를 생산했다. 그러다 거래처에서 현금 대신 200만 원짜리 혼마 퍼시몬 풀세트를 받았다. 요즘 가격으로 치면 2000만 원 정도는 됐다. 돈을 받지 못해 속이 쓰렸지만 남에게 되팔 수도 없어 회사 근처의 연습장에 다녔다.

한동안 볼을 제대로 맞히질 못했다. 다이내믹골드 S300 샤프트를 장착한 골프채로 힘이 좋은 프로들도 버거워할 ‘스펙’이었던 것. 김 회장의 표현대로 돌덩어리 같은 골프채였다. 그것도 모르고 무작정 휘두르다 보니 갈비뼈가 부러졌고, 골프엘보가 찾아왔다. 연습장 프로가 보더니 “이런 골프채로 어떻게 치느냐”며 당장 바꾸라고 충고했다.

어느 날 김 회장은 연습장에 떡을 돌렸다. 골프 입문 2년 6개월 만에 100타를 깬 것을 자축하는 의미였다. 처음엔 “홀인원을 한 것이냐?”며 축하하던 사람들은 사연을 듣고 파안대소했다. 김 회장은 떡을 돌리기 전날 경기 용인의 골드골프장에서 97타를 쳤다. 평소처럼 친구였던 동반자 3명에게서 핸디로 30점을 받고 출발했다. 친구들이 준 핸디를 잘 지킨 돈으로 떡을 돌렸던 것.

김 회장은 이후 10년 정도 지나 첫 ‘싱글패’를 받으며 꿈을 이뤘다. 경기 여주의 자유골프장에서 기록한 4언더파 68타가 베스트. 김 회장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아웃오브바운즈(OB)가 없다. 친구들은 “김 회장의 OB는 1년에 한두 번 볼 수 있을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다. 지금도 공인 핸디캡이 2다. 김 회장은 “컨디션이 좋으면 언더파를 치고, 난조를 보여도 70대 초반 스코어가 나온다”고 말했다.

매일 연습장을 다녔지만 100을 못 깨던 김 회장이 뒤늦게 고수가 된 비결은 실전 레슨. 연습장의 프로가 어느 날 볼만 치면 돈을 잃는 김 회장이 안타까웠던지 당분간 같이 골프장에 다니자고 해 6개월 동안 필드에서 실전 레슨을 받았다. 그 뒤부터 기량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사업상 접대가 많았지만 술을 끊은 이후 안정적으로 70대 스코어를 유지했다. 대충 동반자의 비위를 맞춰주는 비즈니스 골프는 적성에 맞지 않는다. ‘내 실력대로 친다’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 그래서 김 회장과 첫 라운드를 한 사람 중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2000년 건설사를 운영할 때에는 ‘키 작고 볼 잘 치는 분’으로 통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최경주와는 남다른 인연을 지니고 있다. 미국 진출 전 최경주는 경기 용인의 88 골프장 헤드 프로였다. 김 회장과 몇몇 아마고수들은 스파링 파트너를 자처하며 최경주와 함께 자주 라운드를 했다.

김 회장의 골프 기록 중 으뜸으로 치는 게 몇 가지 있다. 2000년 남서울 골프장 1번 홀(파4)에서 7번 아이언으로 친 두 번째 샷을 그대로 홀로 넣어 이글을 뽑아냈다. 이곳의 헤드 프로였던 최상호가 달려와 “이 홀에서 18년 만에 나온 이글”이라며 반겼다. 88 골프장에서는 ‘18홀 올 파’를 한 적도 있고, 남서울골프장에서는 ‘18홀 올 보기’를 작성하기도 했다. 홀인원은 1996년 골드 골프장에서 배운 지 11년 만에 처음이자 유일하게 작성했다. 당시 골프 볼 회사에서 골프 볼 30박스, 양주회사에서 양주 1박스, 골프장에서 1년간의 부킹을 지원해주었다.

김 회장의 골프 스타일은 독특하다. 사람들은 그를 ‘변칙골프의 대가’로 부른다. 김 회장은 장갑 없이 맨손 골프를 즐긴다. 마치 야구 배트를 쥐듯이 ‘반 베이스볼 그립’을 하다 보니 18홀을 돌면 장갑이 구멍 나기 일쑤여서 맨손으로 잡는단다. 지금도 드라이버로 220m를 보낸다. 장타의 비법은 ‘외다리 타법’. 키에 비해 팔이 긴 편인 그는 스윙할 때 축을 2개를 사용한다.

여자프로 중 김혜윤이 어드레스와 백스윙 때 발을 들어 마치 야구 스윙하듯 휘두르는데 김 회장도 마찬가지다. 김혜윤은 드라이버만 그렇게 치지만 김 회장은 아이언 샷까지 외다리 타법을 활용한다. 김 회장은 “스윙 축을 이동하면 스윙 아크가 커져 비거리를 늘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이런 자세로 연습했고 자연스레 몸에 배었다. 김 회장 스윙을 흉내 내려다 클럽을 부러트리거나, 부상을 당한 사람이 여럿 있다.

김 회장은 퍼팅 또한 남과 다르다. 내리막 퍼팅을 제외하고 대부분 왼발을 앞으로 더 내미는 ‘닫힌’ 스탠스를 취한다. 헤드업을 방지하고 볼의 구름을 좋게 해 뛰어난 방향성을 확보할 수 있단다.

김 회장은 “젊어서는 교과서처럼 볼을 치는 게 옳지만 몸이 굳어진 중장년층에게는 변칙이 오히려 알맞다”면서 “사람에 따라 체형과 체격이 다르기에 자신에게 적합한 방식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 “골프에선 길게 치는 것보다 똑바로 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