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식 기자의 버디 & 보기>골프 신데렐라의 딜레마

한국 여자골프 선수가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진출하는 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하거나, 한국에서 열리는 LPGA투어에서 우승하는 방법이죠. 두 번째 방법으로 LPGA 티켓을 거머쥔 행운의 신데렐라는 지금까지 4명이 나왔습니다. 2003년 안시현을 시작으로 2005년 이지영, 2006년 홍진주, 그리고 2014년 백규정입니다.

4명의 신데렐라는 정작 미국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해 ‘신데렐라의 저주’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안시현과 홍진주는 국내 무대로 돌아왔고, 이지영은 은퇴했습니다. 저주를 깰 선수는 백규정뿐입니다.

백규정이 지난주 국내에서 열린 BMW레이디스 챔피언십에 출전했습니다. 지난 17일 대회 4라운드가 열린 인천 영종도 스카이72골프장 하늘코스에서 백규정을 만났습니다. 지난해 10월 이후 8개월 만에 만났지만 공동 39위에 머문 탓에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쉽게 생각했다가 큰코다쳤죠”라며 말문을 연 그는 미국에서 우승하지 못한 이유로 준비 부족을 꼽았습니다.

국내에서 열렸던 LPGA투어에서 우승한 뒤 코치, 지인들은 미국 진출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라고 권했지만 자신은 무조건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답니다. 다시 미국에 진출할 기회가 왔더라도 무작정 갔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앞선 선배 신데렐라들이 털어놓은 실패 원인과 같았습니다. 백규정은 “(골프) 기량보다는 (영어) 문화 적응이 더 어렵고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캐디와 소통이 안 될 때도 잦다고 합니다. 국내에서는 아주 많이 (비거리가) 나가는 편이었지만 미국에서는 평균에 불과했고, 하루에 7∼8언더파씩 몰아치던 기세도 꺾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연습을 많이 하지 않아도 통했지만, 미국에서는 어림도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골프를 시작했을 때보다 지난 1년 반 동안에 친 연습 볼이 더 많을 정도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조심스럽지만 국내로 유턴하겠다는 뜻도 내비쳤습니다. 남은 기간에 덜컥 우승이라도 하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미국생활을 포기할 것이란 얘기입니다. 백규정은 이제 21세입니다. 살아온 나이만큼 골프 선수로 생활해야 합니다. 포기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내로 돌아와 몇 년 동안 몸을 추스른 뒤 다시 미국 무대에 도전해도 여전히 20대에 불과합니다. 시간은 많습니다.

프로바둑기사 이세돌은 한 공익광고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저도 지는 것에 익숙한 선수인데, 대신에 그 말은 해주고 싶어요.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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