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발명후 20년 천대받던 ‘스틸’… 연장 72홀 승리로 ‘반짝’ 빛났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31년 US오픈에서 빌리 버크가 스틸 샤프트를 장착한 우드로 스윙하고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스틸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대안으로 만들어진 피라톤 소재의 일명 뱀부 샤프트. 스틸 샤프트를 제작한 뒤 그 위에 대롱 모양으로 피라톤을 씌워 스틸을 커버했다.

스틸 샤프트의 발명

골프계에 혁명을 몰고 온 스틸 샤프트는 120여 년 전부터 사용됐다. 특유의 반짝거림 덕에 스틸 샤프트는 골퍼들을 유혹한다. 스틸이라는 재질로 샤프트가 만들어지면서 골프가 시작된 이래 500년 동안 사용됐던 나무 샤프트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스틸 샤프트 또한 센터 샤프트 퍼터를 처음 고안했던 아서 프랭클린 나이트가 발명했다. 나무를 대체할 여러 형태의 과도기적 샤프트를 만드는 시도는 19세기 말 영국에서부터 비롯됐다. 알루미늄이나 쇠붙이 등이 히커리 나무 샤프트의 대안이었다. 1892년 영국의 조지 그랜트와 1894년 토머스 호스버라는 골프채 장인에 의해 스틸과 유사한 샤프트가 제작됐고 특허를 주장하는 등 논란이 있었지만, 정작 스틸 샤프트 특허는 1909년 미국의 나이트에게 돌아갔다.

1902년 센터 샤프트 퍼터를 발명했던 나이트는 이번에는 스틸 샤프트에 꽂혔다. 볼 안에 심을 넣은 ‘하스켈 볼’이라는 현대적 의미의 코어 볼이 등장하면서 히커리 나무 채가 자주 부러졌기 때문이었다. 클럽을 만드는 장인은 너무 쉽게 부러지는 나무 채를 대체할 샤프트를 고안하는 데 몰두했다. 나이트는 가볍고 튼튼하면서도 수리하기 쉬운 철재가 나무를 대체할 최적의 샤프트임을 깨닫고 있었다.

1909년 나이트는 헤드에다 스틸 샤프트를 꽂는 발상의 전환을 이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스틸 샤프트는 골퍼들로부터 외면받았다. 아마추어, 프로를 가리지 않고 골퍼라면 누구나 새로운 골프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우승을 다투어야 하는 선수들은 여전히 손에 익숙한 히커리 채를 고집할 수밖에 없었다. 스틸 샤프트를 발명하면서 대박을 꿈꿨던 나이트는 그러나 침울한 나날을 보냈다.

스틸의 대안으로 ‘피라톤’이라 불렸던 플라스틱 재질의 과도기적 샤프트가 등장했다. 스틸의 반짝거림에 거부감을 느꼈던 골퍼들은 샤프트에 대롱 모양의 피라톤을 씌우고 노란색을 칠해 히커리 나무 채처럼 보이게 했다. 또 다른 이들은 스틸의 반짝임을 없애기 위해 스틸 샤프트 위에 검은색 페인트를 칠했다.

발명된 이후 20여 년 동안 천대받던 스틸 샤프트는 프로 빌리 버크가 1931년 인버네스에서 열린 US오픈에서 우승하면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무려 4일간 72홀이라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랜 연장전을 치른 이 대회에서 빌리의 적수는 반 엘름이었다. 히커리 샤프트를 고집하는 엘름과 새로운 스틸 샤프트를 손에 쥔 버크의 대결은 ‘올드’와 ‘뉴 테크놀로지’의 격돌이었다. 버크가 이기면서 반짝이는 은색의 스틸 샤프트는 순식간에 골프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1930년대 스틸 샤프트로의 전환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신바람이 난 윌슨, 스팔딩, 맥그리거 등 제조사들에 의해 스틸 샤프트는 대량으로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스틸은 거리감, 방향성, 타구감, 유연성 등에서 히커리를 능가하는 데다 수리하기에도 쉬웠다. 탄성과 복원성, 안정성에서도 히커리 샤프트는 스틸을 따라올 수 없었다. 골퍼들은 더 이상 피라톤을 씌우지 않았고 검은 페인트를 칠하지도 않았다.

영국 왕실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도 스틸 샤프트가 대세로 자리를 굳히는 데 한몫했다. USGA는 1924년 스틸의 사용을 허락했고, 스틸의 특허를 미국인에게 빼앗겨 심통이 난 영국은 6년간 사용을 금지하다가 1930년이 돼서야 스틸의 사용을 허용했다. 프로들에게 정교한 거리감을 선사하는 스틸 샤프트는 120년이 지난 21세기에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남양주골프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