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호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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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 논설위원

본격적인 바캉스 시즌이 돌아왔다. ‘피서나 휴양을 위한 휴가’란 의미의 프랑스어 바캉스가 한국 사회에 일상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다. 그 전에는 먹고살기도 힘든 상황이었기에, 그런 호사스러운 개념이 머릿속에 들어오기 힘들었던 것이다. 사실 바캉스는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 힘든 단어다. 영어의 버케이션(vacation)과도 그 어감 차이가 크다.

그런데 최근 호텔과 바캉스의 합성어인 호캉스가 유행하고 있다. 도심 고급 호텔에서 호사스러운 서비스를 누리며 휴식하는 형태를 일컫는 것이다. 서울의 호캉스 예약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며, 올해도 작년보다 20%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이젠 휴가를 여행보다는 휴식으로 여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또 휴양지로 가 봐야 인파와 바가지요금에 시달릴 뿐이란 생각도 많아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많은 호텔이 평소보다 30% 할인된 가격에 수영장·사우나·레스토랑 등의 무료 이용권을 첨부한 여름철 패키지 상품을 내놓고 있다.

테러도 호캉스를 부추기는 데 한몫하고 있다. 최근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터키 등에서 연달아 테러가 발생했다. 이슬람국가(IS)에 의한 테러뿐만 아니라, 사회 부적응자의 ‘묻지 마 테러’도 늘어나고 있다. 유럽·중동은 물론 아프리카와 동남아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테러의 일상화와 세계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김정은이 중국 북한식당 종업원의 집단탈출에 보복하기 위해 한국인을 테러·납치하라고 특수 요원 약 800명을 중국과 동남아로 파견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으니, 어디 멀리 가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도 호캉스는 금전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렇지 못하면 ‘스테이케이션’을 즐긴다. 이는 ‘머무르다’(stay)’와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집에서 즐기는 바캉스를 의미한다. 스테이케이션족(族)은 집에서 에어컨 바람을 만끽하며 그동안 못 보던 영화나 책을 보거나 휴식을 즐긴다. 필수품으로 1인용 소파나 도넛 방석, 소형 빔프로젝터, 게임기, 잠옷 겸 간단한 외출 시 입을 수 있는 이지웨어 등이 거론되는데, 최근 인터넷을 통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그러나 호캉스나 스테이케이션을 진짜로 즐기려면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부터 해방돼야 하는데, 이 경지에 이른 사람은 아직 드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