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불법 ‘공천 협박’ 조사도 않겠다는 與, 公黨 자격 없다

새로 짜인 새누리당 윤리위원회가 27일 첫 회의를 열고 최근 녹취록 폭로로 드러난 친박 핵심 실세의 노골적인 공천개입 혐의에 대해 조사는 물론 공식 입장 표명도 하지 않기로 했다. 조사 포기를 선언한 셈이다. 윤리위의 이런 입장은 8·9 전당대회를 앞두고 계파 갈등이 더 증폭될까 두려워 내린 궁여지책으로 보인다. “모르는 척 넘어갈 순 없다”던 신임 이진곤 위원장의 ‘추상같은’ 공언(公言)이 하루 만에 허언(虛言)이 된 셈이다. 앞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당내 경선 문제에 조사권 행사를 하지 않겠다”며 발을 뺐다. 공적 기관마저도 공당(公黨)의 실정법 위반 사안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릴 의지가 없다는 얘기다. 선거 기간 중 김밥 하나 돌려도 선거법 위반으로 단죄했던 그 기관이 맞나 싶다.

녹취록 문제의 핵심은 최경환·윤상현 의원과 현기환 전 정무수석 등 친박 핵심들이 4·13 총선 공천과정에서 경기 화성갑 예비 후보로 출마한 김성회 전 의원에게 지역구를 옮기라고 겁박한 혐의가 짙다는 점이다. “뒤에 대통령이 있다” “까불면 안 된다” “별의별 것 다 갖고 있다” “나와의 약속이 대통령과의 약속이다” 등 이들이 전화 통화를 통해 김 전 의원에게 한 여러 발언이 의혹의 단서들이다. 공직선거법 제237조(선거의 자유 방해죄)와 제57조(매수 금지)에는 당내 경선이라도 후보자(후보자가 되려는 사람 포함)를 협박·회유하거나 공사(公私)의 직(職) 제공을 약속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돼 있다. 혐의들이 사실로 밝혀지면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다.

사안의 경중을 떠나 불법 혐의를 무조건 덮어버리려는 건 공당 자격이 없음을 자인하는 ‘자해 행위’다. 김희옥 비대위원장이 “뼈를 깎는 고통이 있더라도 혁신하겠다”던 말도 공허하게 들린다. 국민으로부터 ‘최후통첩’을 받고서도 환골탈태를 거부한 채 이리저리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집권 새누리당이 분노와 한심함을 넘어 불쌍해 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