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68세때 68타… 지금까지 에이지슈트만 100회 넘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전우선 회장이 지난 20일 자신이 운영하는 경기 남양주시 장현그린골프클럽 타석에서 아이언 샷을 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전우선 장현그린골프클럽회장

평생 한 번 하기도 어려운 ‘에이지 슈트’를 밥 먹듯 작성하는 노익장 골퍼가 있다. 전우선(75) 장현그린골프클럽 회장이 주인공이다. 요즘에도 늘 70대 스코어를 친다는 전 회장은 두 번에 한 번은 ‘75타 이내’를 치기 때문에 대충 따져도 지금까지 기록한 에이지 슈트는 100회는 넘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일 경기 남양주시 장현리 그린골프클럽에서 만난 전 회장은 “어제도 광릉골프장에서 이븐파 72타를 쳤다”며 스코어 카드를 내밀었다.

광릉골프장 운영위원장과 경기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다는 전 회장의 공식핸디캡은 1. 2003년 광릉골프장에서 버디만 6개를 잡아내 6언더파 66타를 친 게 베스트 스코어라는 전 회장은 지금도 4번 아이언으로 200야드를 날릴 만큼 장타와 견고한 스윙을 유지하고 있다. 전 회장은 68세 때이던 2008년 광릉골프장에서 68타를 쳐 첫 에이지 슈트를 달성했다. 전 회장은 이후 70대 초반 타수로 에이지 슈트는 자주했지만 60대 타수로는 이게 유일한 기록이다.

전 회장은 1971년 골프를 시작했다. 한·일 국교정상화로 재일교포들의 투자가 잇따르던 시절이다. 전 회장은 교포 사업가가 운영하던 서울 중구 명동 로열호텔 1층에 1000㎡ 규모의 국내에서 가장 큰 선물용품점을 운영했다. 면세점이 없던 시절이어서 일본 관광객들이 한두 번 거쳐 가는 필수 코스였다. 당시엔 변변한 공산품이 없어 고려청자나 목각제품, 인삼 등이 가장 많이 팔렸다. 교포 사업가들이 간혹 라운드 때 자리가 비면 전 회장을 불렀다. 갓 서른 살을 넘긴 전 회장은 스스로 생각해도 한창 일할 나이에 골프 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명동호텔 뒤편에 청우골프연습장에 갔더니 신문이나 라디오에 나오는 정·재계 유명 인사들이 ‘사랑방’처럼 들락거렸다. 한번은 연습장 사장이 손님으로 온 그를 불러 세우더니 “젊은 친구가 일은 안 하고 골프를 치러 다니느냐”며 호통쳤다. 알고 지내던 프로들이 “프로 지망생”이라고 하자 그제야 그는 “열심히 하라”며 하루에도 두세 차례 가도 타석을 내주기도 했다.

전 회장의 골프이야기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4차례의 홀인원’이다. 전 회장은 같은 홀에서 동반자와 동시 홀인원을 했고, 홀인원 패를 받는 날 또다시 행운을 안았다. 4차례 행운은 모두 피칭웨지로 뽑아냈다. 첫 홀인원은 골프 시작 30년이 다 되던 1999년에야 나왔다. 경기 가평군 썬힐골프장 밸리 코스 3번 홀(파3·140야드)에서 언더파를 치는 아마고수 김영준 씨가 8번 아이언으로 먼저 홀인원을 했다.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 전 회장이 피칭웨지로 친 게 또다시 홀로 빨려 들어가 ‘동반 홀인원’이 됐다. 두 번째는 2001년 일동레이크 골프장 마운틴 코스 3번 홀(파3·143야드)에서 연습장협회 임원들과 동반 라운드 때 기록했다. 한 달 뒤 홀인원 패를 받으러 갔다가 같은 골프장 힐 코스 4번 홀(파3·140야드)에서 다시 홀인원을 작성했던 것. 2014년 겨울 단골 겨울 골프 여행지였던 베트남 여행 때 행운을 안았다. 손가락을 다치고도 모임의 회장인 탓에 동반했던 전 회장은 다낭의 나꾸나 라꿈골드 골프장 5번 홀(파3·128야드)에서 친 티샷이 경사를 타고 홀로 빨려 들어가 네 번째 홀인원을 기록했다.

50대에 접어들자 전 회장은 쇠락기에 접어든 관광업을 접고 무역업과 수산물 유통에도 손댔다. 그러다가 미국의 한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를 인수해 여의도 63빌딩에 회사를 차렸지만 2년 만에 접었다. 사업이 번번이 실패하자 낙담하던 그에게 두 아들이 큰 용기를 줬다.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던 두 아들은 “우리 적정은 마시고, 이제부터는 아버지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하시라”며 강권했다. 전 회장은 일찌감치 사뒀던 지금의 부지를 떠올렸고, 1년 공사 끝에 1996년 골프연습장을 열었다. 당시 연습장 주변은 인적 드문 오지였지만 이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면서 주변 인구가 17만 명이 넘는 도시로 탈바꿈했다. 전 회장은 매년 하루를 ‘연습장 회원 Day’로 정해 기념 라운드를 한 뒤 1000만 원을 모아 지역의 홀몸노인을 도와 왔고, 한국프로골프의 대부인 한장상, 김덕주 프로가 후진 양성을 할 수 있도록 3층을 증축해 아카데미 장소를 제공해 준 것을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전 회장은 자신이 45년 동안 계속 골프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노력한 만큼 보람을 느끼고 가는 매력적인 운동”이라는 생각 덕분. 전 회장은 “그 많은 룰 북 제1장에 나오는 게 ‘에티켓’이다. 에티켓을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골프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 회장은 “타수를 잘 치는 것보다 상대는 룰을 어긴 사실이나 에티켓을 더 기억한다”고 말한다. 전 회장도 과거 뼈아픈 실수를 한 적 있다. 젊은 시절 뉴코리아 골프장 회원 대회에 출전했을 때의 일화. 나이 지긋한 회원이 파 세이브를 했다며 자랑하던 그에게 다가와 “실례가 안 된다면 한마디 하겠다”면서 정색하며 “아마 당신은 룰을 몰라서 그런 모양인데, 러프에 있는 볼 뒤를 클럽으로 눌렀기에 ‘라이 개선’으로 간주해 2벌타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던 것. 전 회장은 얼굴이 달아올랐다. 룰을 몰라서 그랬다며 백배사죄했고, 그때 그 사건으로 룰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루도 안 빠지고 규칙 재정집까지 섭렵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연습장 손님들에게도 배포할 만큼 룰을 강조해 오고 있다. 룰과 에티켓을 모르면 골퍼의 품격이 떨어진다는 생각이다. 전 회장은 연습장 경영자로는 유일하게 10년 전부터 골프매거진의 ‘10대 코스 선정위원’을 맡고 있다.

지금까지 골프를 치면서 부상 한 번 당하지 않았다는 전 회장은 “라운드 전날 골프채 한 번은 꼭 잡아보고 나가는 게 기량을 유지하는 비결”이라며 “골프는 자신이 좋아해야만 열정적인 골퍼로 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남양주 =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