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法 합헌 이후>권익위 설문조사… 헌재는 여론조사, 법치주의 위협하는 ‘포퓰리즘’ 우려

전문가들 “정치적 판결 오명”

헌법재판소가 여론조사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의 판결 기준으로 삼은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될 뿐더러 법치주의를 위협한다는 비판이 법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됐다.

또 국민권익위원회도 김영란법의 핵심인 ‘3·5·10(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 이상 금지)’ 조항의 기준을 설문조사를 통해 만들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법리가 아닌 여론으로 결정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9일 전상현(상법전공) 숭실대 교수는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영란법을 부패지수 등 여론조사를 기준으로 입법한 것은 부당하다는 반론이 입법단계에서도 수없이 제기됐다”며 “특히 불명확한 여론조사를 결정문에서 인용해 사립학교 관계자와 언론인이 부패 정도가 심각하다고 밝힌 것은 법리적으로 볼 때 죄형법정주의의 핵심인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명확성의 원칙이란 ‘어떤 경우에 누구를 어떻게 처벌하는 것’이 명확하게 법에 나와야 하는데 김영란법 판결문은 너무 포괄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불명확한 여론에 의한 마녀사냥식 판결을 막기 위한 것이 법치주의”라면서 “여론조사를 인용한 헌재의 판결은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포퓰리즘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김상겸(헌법전공) 동국대 교수는 “김영란법을 합헌 판결하면서 판결문에 여론조사 용어를 집어넣은 것은 극히 드문 사례”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헌재는 전일 결정문에서 “국민들은 언론과 교육 분야의 부패 정도가 심각하고 그로 인해 직접적으로 피해를 받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며 “여론조사 결과에 사립학교 관계자와 언론인이 김영란법에 포함된 것을 지지하는 여론이 반대 여론보다 압도적으로 높다”고 적시했다.

성영훈 국민권익위원장도 28일 헌재 판결 직후 이른바 ‘3·5·10’ 조항과 관련해 “각계각층의 설문조사를 통해 나타난 국민의 인식 수준이 조항을 만드는 제일 중요한 기준이었다”며 “해외의 경우 미국은 20달러, 일본은 5000엔, 영국은 30파운드 선에서 선물 접대가 엄격하게 규정돼 있는 게 참고가 됐다”고 말했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