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원칙도 알맹이도 없는 朴정부 임기말 稅法개정안

박근혜정부가 28일 내년도 세법(稅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경제활력 제고·민생안정·공평과세·조세 합리화’라는 4대 축(軸)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했다. 이번 개정안은 내년 12월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다는 점에서 박 정부의 사실상 마지막 ‘작품’이다. 대내외 경제 여건 악화로 경제 전반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고 서민·중산층 부담은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건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런 구호는 ‘보여주기’식일 뿐 ‘무책임·무원칙·무소신’ 정책의 전형이다.

우선, 조세 원칙의 기본인 ‘공평 과세’를 또 외면했다. 정부는 이번에도 48.1%에 달하는 소득세 면세자에 대해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연말정산을 하는 근로자 1669만 명 중 802만 명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납세의무를 진다’는 헌법의 국민 개세주의(皆稅主義)를 무색케 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박 정부 들어 그런 악습(惡習)은 더 심해졌다. 2013년 32.4%였던 면세자 비율이 1년 만에 48.1%로 급등했다. 3년 전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일부 저소득자들이 ‘세금 폭탄’이라며 강하게 반발하자 정부가 이들을 달래려다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최악의 개정’을 한 대가다.

올해로 끝나는 25개 비과세·감면 항목 중 21개 항목도 연장되거나 조정됐다. 다른 민감한 사안도 대부분 다음 정부로 넘겨졌다. 은퇴자를 의식해 주택임대 수입에 대한 과세 방안 결정 시기를 올해 말로 미뤘다. 주식 양도차익 과세도 소액주주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않은 채 대주주의 과세만 강화키로 했다. 이마저도 시행 시기를 1년 유예했다.

사람들은 배 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참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세금이 바로 그런 경우다. 조세 정의에 대한 국민 신뢰가 무너지면 조세 저항도 거세지고 사회 불안 우려도 증폭된다. 정부가 조세 형평의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이유다. 또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에 비해 복지가 상대적으로 미흡한 국가이기에 복지 수요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반면 관리재정수지는 2014년부터 3년 연속 국내총생산(GDP) 대비 2%대의 적자다. 세수 관리를 철저히 하고 촘촘히 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을 9월 정기국회에 넘길 예정이다. 여야 정치권이라도 이번 개정안을 보완해야 한다. 중장기 세제 개혁안과 재정 건전성을 높이는 방안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부도 임기 말 ‘보신 행정’을 접고 국민만 바라보는 공직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합리적인 세제 개편의 큰 그림을 만드는 작업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