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문화재>도시개발에 묻힌 유물 잇단 발굴… 찬란했던 ‘백제의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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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석촌동 고분군

서울 2호선 잠실역에서 8호선 석촌역 쪽으로 15분쯤 걷다 보면 왼쪽에 아늑한 휴식 공간이 나타난다. 석촌동 고분군 공원이다. 석촌 지하차도 위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공간이다. 온통 고층빌딩과 아파트, 빌라 단지로 둘러싸여 있어 난데없는 녹지대가 푸근함과 동시에 평화로움을 준다.

공원 앞에 붙어 있는 사적 제243호라는 표지석만 없으면 이곳이 공원인지 유적지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공원에서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과 석촌역으로 바삐 오가는 인파가 항상 많아 고즈넉한 유적지라기보다 ‘통로’ 같은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석촌동 고분군에는 적석총(積石塚·돌무지무덤) 4기, 봉토분(封土墳·흙무덤) 1기 등 5개의 무덤이 있다. 모두 백제 초기(4∼5세기)의 왕과 왕족,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것들이다.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한복판에 1600년이 넘은 유적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적석총은 돌을 가지런히 쌓아 만든 고구려식 무덤을 말한다. 이 중 가장 큰 3호분(사진)은 가로, 세로의 길이가 약 50m로 중국 지린(吉林)성에 있는 고구려 장군총(장수왕 무덤으로 추정)보다도 크다. 일부에선 백제 부흥기를 이끌었던 근초고왕의 묘소로 짐작하고 있기도 하다.

이 고분들은 일제강점기 때 처음 조사됐다. 당시 자료 지도에는 이 일대에 무려 297기의 무덤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학자들은 풍납토성 일대가 백제의 왕궁터였고, 거기로부터 2∼3㎞ 떨어진 석촌동 일대가 공동묘지였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 대대적인 도시 개발 바람에 1600년 전의 백제 유적은 모두 사라지거나 그대로 땅속에 묻혔다.

그런데 이 공원 적석총 4호분과 봉토분 사이에 요즘 발굴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공원 내 도로 함몰로 적석총과 관련된 석축열, 적석부 등이 추가로 확인되면서 지난해 10월부터 본격적인 발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금동 귀고리, 부서진 기와, 토기류 등이 다수 출토됐다. 파면 팔수록 유물이 더 나오고 있어 발굴 면적을 넓혀 올해 말까지 발굴을 지속할 예정이다.

풍납토성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풍납토성은 풍납 1, 2동을 타원형으로 에워싸고 있는 흙으로 쌓은 성곽이다. 총 길이가 3.5㎞에 이른다. 폭 43m, 높이 11m다. 이 토성의 안쪽이 백제 왕궁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돼 660년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했다. 약 700년 가까이 찬란한 고대문화를 꽃피웠다. 이 중에서도 475년 고구려에 한성을 함락당해 웅진(공주)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약 500년 동안이 황금기였고, 그 중심이 서울이었다.

하지만 백제의 유적 발굴은 ‘강남 개발’에 밀려 시기를 놓쳤다. 석촌동 고분군에서 끊임없이 유물이 나오고 있으나 더 이상 발굴은 어렵다. 바로 밑으로 지하차도가 있고, 곧 지하철 9호선이 뚫리기 때문이다. 풍납토성도 마찬가지다. 발굴을 위해 땅을 매입하는 것부터가 문제다.

그러나 서울시는 지난해 풍납토성 내 경당지구 주변을 2020년까지 약 5000억 원의 토지 보상비를 들여 발굴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재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백제의 200년 도읍지였던 충남 공주와 부여가 세계유산이라면 그 두 배가 넘는 기간 백제의 수도였던 석촌동, 풍납동, 방이동 일대의 유적지구가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진 않는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