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새 與대표의 제1요건은 ‘돌직구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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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미국 공화·민주당의 전당대회를 보면 대통령 후보를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흘간의 일정 속에 찬조 연설자의 면면과 연설 내용도 눈길을 끈다. 정치 거물들과 상·하원 의원들의 연설을 들어보면 앞으로 미국 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 연설자들 중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감이 부상하기도 한다. 2004년 당시 민주당 존 케리 후보의 지지 연설을 한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역경 앞에 희망이, 불확실성 앞에 희망이, 바로 그 담대한 희망이 신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라는 명연설로 일약 스타가 됐다.

정당의 중요한 역할은 정치 리더들을 훈련시키고 성장시키는 데 있다. 그래서 전당대회야말로 치열한 연설과 토론 경쟁을 통해 ‘정치 스타’를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리더십이 형성된다. 그러나 오는 9일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를 선출하는 새누리당을 보면 ‘집권여당의 수준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가’ 하는 한탄만 나올 뿐이다. 공천·인사는 물론 대통령 면담조차 제대로 못 하는 대표가 되겠다고 수억 원을 써가며 폭염에 애쓰는 모습이 안타깝기까지 하다.

이번 새누리당 전당대회는 스스로 얘기하듯 ‘국민이 준 마지막 기회’다. 이 기회를 살려내지 못하면 4·13 총선 참패보다 더한 쓴맛을 볼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고만고만한 후보들이 난립하고 감동적인 연설은 기대도 하지 않지만, 어쨌든 현재 출마한 5명의 후보 중에서 대표가 선출된다. 김무성 전 대표 시절에 1위가 대표가 되고 등수대로 최고위원이 되는 집단 지도체제에서 이번에는 대표를 따로 뽑는 단일지도체제가 된 만큼 훨씬 권한이 크다. ‘봉숭아 학당’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지도력이라곤 없었던 당 지도부를 일신하기 위한 신임 대표의 역량과 리더십이 더없이 중요한 때이다.

신임 대표는 우선 당의 기강(紀綱)부터 세워야 한다. 대표의 권위가 없으면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다. 9일이면 임무가 끝나는 김희옥 비대위원장의 경우가 그렇다. 정치 이슈를 만들지 못하면 있으나 마나다. 대표가 한마디 하는 것을 청와대나 대권 주자들이 무시해 버린다면 이렇게 어렵게 대표를 뽑을 이유가 없다. 38석의 의석으로 정치 이슈를 주도하는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부지런한 것은 기본이고 당내에서 초(超)계파적인 지지를 얻어야 한다. 친박·비박이라는 굴레는 벗어날 수 없겠지만, 대표 스스로 계파의 대변자가 된다면 새누리당은 싹수가 없다.

김무성 전 대표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많이 참았다”고 했지만, 이제 새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서도 돌직구를 날릴 수 있는 결기도 가져야 한다. 이제 남은 1년6개월 대통령 임기 동안 청와대가 주도해 국정 성과를 남기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우병우 민정수석 건만 봐도 대통령 스스로 불통과 아집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당 대표가 이를 끌고 가는 것이 공멸(共滅)을 막는 길이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청와대에서 오라고 하든 말든 찾아가 대통령과 독대하고 당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담대한 용기’가 필요하다. 대통령을 만나지 못하는 여당 대표는 허수아비다. 여의치 않으면 박 대통령의 탈당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5명의 후보 중 대통령에게 ‘계급장 떼고 이야기하자’고 할 인물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안타깝다. 대표의 리더십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신임 대표는 선출되자마자 경북 성주로 내려가 사드 문제에 대해 군민들을 진정성 있게 설득하고 몸으로 부딪쳐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보면 의원들을 끊임없이 만나고 상대 당을 직접 찾아가는 등 끈질기게 설득하는 데서 신뢰를 얻는다. 이와 함께 정국의 흐름을 제대로 짚어내는 감각이 절실하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시끄럽던 제1야당을 진정시킬 수 있었던 것도 정국과 이슈를 주도하는 능력과 경륜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위기는 곧 보수의 위기다.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10년의 실적이 이것밖에 되지 않느냐는 평가를 받는 순간 정권을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 이제 34만 명 선거인단의 손에 새누리당의 미래가 달려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