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 Story >“여행 왔다 깊은 인상… 이젠 외국인 서울살이 상담 年 5만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폴 카버 서울글로벌센터장이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빌딩 4층 사무실에서 “일본,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우리 센터를 벤치마킹하러 와 가슴 뿌듯하다”며 “올해 센터를 알리는 동영상을 만들고 내년부터는 유튜브 등을 통해 센터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 데 더욱 힘쓸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폴 카버 서울글로벌센터장

“서울은 굉장히 살기 좋은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지난 1992년 처음 왔을 땐 사람들이 먹고사는 것에 열중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레저시설도 많이 생겼고 한강에 자전거 전용길도 생기는 등 여가를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큼 좋아졌어요. 주말이 기다려지는 거죠. 게다가 사람들이 친절해요. 전철역에서 기다리고 있다 보면 사람들이 다가와 ‘혹시 도와줄 것 없느냐’고 물어요. 다른 나라에선 이런 문화를 쉽게 볼 수 없어요. 저렴하고 편리한 교통시설은 물론 교통문화도 눈에 띄게 개선됐어요. 해외 팝스타와 록밴드들이 서울을 찾아 공연을 많이 하는 것만 봐도 서울은 이미 세계적인 도시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영국 출신으로 지난 1992년 우연히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의 매력에 흠뻑 빠져 한국인 아내도 맞이하고, 현재 서울시 외국인지원기관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폴 카버(40) 서울글로벌센터장은 서울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서울시 소속 외국인 공무원 8명 중 최고위직으로 서울 거주 외국인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를 지난 2일 서울 종로1가 서울글로벌센터빌딩 4층 사무실에서 만났다. 186㎝의 훤칠한 키에 축구마니아로 프로축구 FC서울의 소문난 광팬이기도 한 그는 24년 동안 인연을 맺고 있는 서울과 한국에 대한 진한 애정을 유창한 한국어로 또박또박 막힘없이 풀어냈다.

―서울글로벌센터는 어떤 곳인가.

“서울 거주 외국인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각종 불편사항을 원스톱으로 해결해주고 있다. 통역에서부터 세무, 회계, 노무, 창업, 한국어교육, 운전면허 등에 이르기까지 각종 분야에 걸쳐 10개 국어로 상담해주고 지원해 외국인들의 빠른 서울정착을 돕고 있다. 2008년 처음 문을 열었고 이곳 종로 말고도 영등포구 대림동과 중구 광희동에 각각 서남권글로벌센터와 동대문글로벌센터가 개설돼 외국인들을 지원하고 있다.”

―센터가 문을 연 지 8년이 지났는데 외국인들은 물론 서울 시민들도 센터를 잘 모르는 경우가 여전히 많은데.

“올해 센터를 알리는 동영상을 만들고 내년부터는 유튜브와 전철 등에서 적극적으로 알리려고 한다. 서울에서 행사가 많이 열리는데 행사 장소에 부스를 설치해서 홍보물을 돌릴 계획이다. 또 각국 대사관과도 보다 긴밀하게 지내면서 글로벌센터를 널리 홍보할 생각이다.”

―센터의 성과를 말한다면.

“연간 5만 건 정도 상담을 한다. 같은 사람이 여러 번 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45만 명 정도인데 유선, 이메일, 방문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상담해 온다. 근로자의 경우 주중엔 일을 하기 때문에 주말을 이용해 종로구 혜화동의 ‘필리핀 시장’에서 수시로 이동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비자 문제는 서울시와 관련 없는 문제인데 외국인들이 잘못 알고 센터로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많다. 그땐 도움이 못돼 미안한 마음뿐이다.”

―센터장으로서 어떤 때 보람을 느끼나.

“센터장 면접을 봤을 때 센터장이 되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나는 학생으로서, 다문화가족의 아빠로서, 회사 직원으로서 다양한 이력으로 한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만큼 여러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막상 센터장이 돼서 와보니까 나와는 다른 경험을 해온 사람들도 많았다. 나와 같은 다문화가족의 일원이지만 내 경험은 동남아 여성과 완전히 다르고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이후 나보다 훨씬 힘든 경험을 했던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센터에서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은.

“내년에 다문화가족 아이들을 위한 교육사업을 하려고 한다. 내 경우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한 월급을 받고 있어 본국인 영국으로 아이들을 보내 교육시킬 여력이 있다. 하지만 다소 생활이 어려운 국가에서 온 외국인들은 그럴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한국과 본국의 언어와 전통문화를 교육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이다.”

―센터장으로서 기억에 남는 일은.

“우리 센터로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에서 벤치마킹하러 많이 온다. 지난 4월에 일본 도쿄(東京)에서 글로벌센터를 만들려고 한다며 배우러 왔다. 그런 일이 자주 있다. 서울글로벌센터는 ‘세상에서 외국인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하는 최고의 센터’이고, 내가 이 기관의 장이라서 자부심을 느낀다. 지난해 중국에서도 찾아왔고 얼마 전에 충북, 인천, 경기 안산에서 배우러 왔다.”

―임기 2년을 마칠 때까지 꼭 이루고 싶은 것은.

“글로벌센터가 있는 이유는 아직까지 외국인들이 서울에서 불편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내 목표는 이 센터가 필요없이 외국인들이 와서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당연히 내 임기인 2년 안에는 어렵겠지만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한국에 온 지 얼마나 됐나.

“1992년에 가족 여행으로 왔고 1996년에 학생으로 잠깐 왔다. 그때 한국외국어대에서 한 달간 문화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2000년부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을 2년간 다녔다. 졸업하던 2002년 당시 ‘붉은악마’들과 거리 응원을 펼치는 문화체험을 한 뒤 영국으로 돌아갔다. 다시 한국에 온 건 2007년이다. 그때부터 줄곧 서울에서 살고 있다.”

―어떻게 한국과 계속 인연을 맺게 됐나.

“한국을 처음 접한 뒤 귀국해 당시 고등학교 진학상담 선생님에게 ‘한국에 대한 인상이 깊어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그건 도움이 안 될 테니까 다른 걸 하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영국 더럼대에 진학해 중국어를 전공하다가 1995년 중국 베이징(北京)의 런민(人民)대로 유학했다. 약 1년 동안의 유학생활 동안 기숙사에서 한국 학생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한국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났다.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을 다니면서 만난 한국인 여성과 2002년 결혼까지 한 뒤로는 한국인이 다 됐다.”

―한국 공무원에 대한 느낌은.

“한국에서 공무원이 되는 게 무척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일단 들어오면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것도 안다. 같이 일하는 팀원들은 부지런하고 재능있다. 작은 조직이라 한두 명이라도 삐거덕거리면 운영이 어려운데 다행히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업무능력이 뛰어나다.”

―외국인으로서 한국 공무원들이 개선해야 할 점이라면.

“공무원들이 보수적이다. 일반 회사에선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워야 한다는 의미에서 ‘상자 밖에서 생각하라’고 한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상자 안에서만 생각하고 새로운 걸 하려고 하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위기를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것만 하는 것 같아 아쉽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난 적은.

“우리 글로벌센터에서 하는 행사라든가 시장님과 외국인 주민들 소통시간 등을 통해 여러 번 뵈었다. 박 시장님은 매우 선한 인상을 가졌다. 사람들이 안고 있는 문제나 불편한 점을 잘 경청하고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좋아 보인다.”

―틈만 나면 전국 방방곡곡을 찾는다고 들었는데.

“어렸을 때는 제주도를 ‘한국의 하와이’라고 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2주 전에 제주도에 갔는데, 자전거를 빌려서 일주했다. 자전거를 타면서 경치를 보니까 하와이 느낌이 났다. 그동안 여행을 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지난해부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천천히 돌아다니니까 한국에 대한 인상이 많이 바뀌었다. 자전거를 타보니까 농촌이나 작은 도시에 맛집도 많고 박물관도 많더라. 서울엔 남대문이 있는데, 다른데 가도 비슷한 역사적인 유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음식은 입에 맞나.

“춘천닭갈비가 무척 맛있다. 내가 아는 다른 외국인들도 닭갈비를 최고로 꼽는다. 느끼하지 않고 맛있다. 비빔밥도 맛있고 삼겹살과 전도 잘 먹는다. 술은 회식할 때 막걸리를 즐겨 마신다.”

―수년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한국 특파원이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고 해서 논란이 됐었는데.

“개인의 취향 문제인 것 같다. 나는 한국 맥주가 외국 맥주보다 맛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한국에도 수제 맥줏집이 많이 생겨 일률적으로 맛이 있다 없다고 할 수 없는 거 아닌가. 내게는 맥주보다 한국 빵이 맛이 없다. 한국인들도 해외에서 만든 김치 먹으면 이거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나. 신라면 같은 경우 수출용이랑 국내용을 따로 만든다. 나는 둘 다 맛이 똑같다고 생각하는 데 한국인들은 수출용은 맛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살아보니 한국 사람들한테 배울 점은 없나.

“배울 게 많다. 서양에서는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다. 하지만 한국은 그룹으로 많이 활동한다. 개인을 희생하고 타인을 도우려고 한다. 이런 점이 서양 사람으로서 가끔 답답하게 느낄 때도 있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매우 훌륭한 문화다.”

인터뷰 = 김도연 차장(전국부) kdyc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