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달동네 살던때 육성회비 대신 내줘… 아버지 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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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권투챔피언 장정구의 나를 만든 스승

“나 운동할 때만 해도 운동하는 아이들은 학교에 잘 안 갔제.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내가 심종식 샘(선생님) 같은 스승이 있다는 거만 해도 복(福)이제.”

8일 서울 강남역 인근 커피숍에서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플라이급 전 챔피언 장정구(53·사진) 선수를 만났다. ‘부산 사나이’인 그는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스승을 묻는 말에 사투리로 이같이 답했다.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인 데다 그나마 다닌 초등학교도 운동을 하느라 수업을 빼먹기 일쑤였던 장 선수에게 심 교사는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스승이다.

심 교사는 장 선수가 부산 서구 아미동 아미초등학교 1학년 시절 담임교사였다. 당시 장 선수의 가정은 육성회비를 제때 못 낼 정도로 경제 사정이 열악했다.

아미동은 해돋이길이라는 산복도로가 유명할 정도로 달동네였다. 심 교사는 학교 성적도 뛰어나지 않고 가난했던 장 선수를 아버지처럼 돌봤다.

장 선수는 “심 선생님은 300원인 육성회비를 늘 모자라게 가져오는 데다 그나마도 늦게 가져오는 나에게 싫은 소리 한 번을 안 하시고 항상 웃으면서 대해 주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는 “당시에는 몰랐는데 어른이 된 후에 내가 못 낸 육성회비를 선생님께서 대신 내줬다는 것을 알았다”며 “선생님이 참 속이 깊은 분이었다”고 말했다.

심 교사는 달동네에 살던 장 선수가 동네 꼬마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에 와도 야단을 치는 법이 없었다. 장 선수는 “부모님이 일 나가고 동네 어귀에서 혼자 놀고 있는 동네 동생들이 안쓰러워 학교로 데리고 온 나의 마음을, 그때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장 선수는 “짝꿍과 내 자리를 붙여 사이에 동생들을 앉히고 수업을 듣는데도 선생님은 싫은 내색을 한 번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북 출신의 무뚝뚝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장 선수에게 심 교사는 아버지의 자상함을 느끼게 해준 교사였다. 장 선수는 따뜻했던 심 교사의 보살핌을 선수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잊지 않았지만 바쁜 일상에 쫓겨 심 교사를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선생님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던 장 선수는 지난 4월 부산 아미초등학교에서 심 교사를 모시고 동창들과 동문회 겸 사은회를 했다. 일흔이 넘은 심 교사는 장 선수와의 40여 년 만의 만남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했다. 그는 “백발에 주름도 많은 선생님을 보니 늦게 찾아뵌 것이 더욱 후회됐다”며 “앞으로는 해마다 심 선생님을 찾아뵐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 선수는 프로선수가 된 이후에 자신을 지도해 준 임현호 코치도 고마운 스승으로 꼽았다. 장 선수는 임 코치와 4차 방어전부터 12번의 시합을 함께했다. 장 선수는 “임 사범님의 도움으로 전 경기 우승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임 코치는 자신보다는 장 선수를 먼저 생각하고 항상 함께하는 코치였다.

장 선수는 “임 사범님은 비가 오는 날은 서울 광진구 광장동의 집에서 비를 피할 수 있는 서초구 반포동의 지하상가까지 나를 끌고 가서 운동을 시킬 정도로 열정적인 코치였다”고 설명했다. 계단 뛰기 등 아침에 야외에서 해야 하는 운동이 따로 있는데 비가 오는 날에는 야외에서 할 수 없으니까 지하상가 계단을 찾아 대신했다. 장 선수는 “임 사범님과 심 선생님과 같은 고마운 스승들 덕에 챔피언이 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은 교권 회복과 아동이 행복한 환경 조성을 위해 문화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공동기획으로 진행하는 연중캠페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