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머리얹는 날, 돈 따고 91打!… 동반 친구들 “사기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안종균 파온테크㈜ 대표가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위치한 한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퍼팅을 하며 자신이 개발한 야외 스크린골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안종균 파온테크 대표

생전 처음 필드로 나간 소위 ‘머리얹는 날’ 내기 골프에서 돈을 딴 골퍼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안종균(61) 파온테크㈜ 대표가 주인공이다.

안 대표가 골프에 입문하고 3개월 지났을 무렵이었다. 2001년 강원 원주의 오크밸리골프장에서 친구들 초청으로 머리를 얹었다. 친구 3명은 평소대로 게임의 흥미를 위해 조촐한 내기를 했고, 초보였던 안 대표에게 핸디를 듬뿍 얹어 줬다. 안 대표는 1번 홀 티샷을 ‘쪼로’를 냈고, 2번 홀에서는 왼쪽으로 아웃오브바운즈(OB)를 내 친구들을 ‘안심’시켰다. 안 대표는 하지만 3번 홀부터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안 대표는 “연습장에서 하던 대로 하자고 마음먹었더니 신기하리만큼 볼이 똑바로 나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게 18홀을 마치니 핸디를 준 동반 친구 3명과 엇비슷한 스코어가 됐다. 91타였다. 안 대표는 동반했던 친구들에게 “사기꾼”이란 얘기까지 들었다. 안 대표의 골프 인생은 이렇게 유쾌하게 시작됐다. 안 대표는 “15년이 흘렀지만, 골프 실력은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 대표를 만나기 위해 지난 12일 서울 구로구 구로디지털단지 내 사옥을 찾았더니 차로 10여 분 거리의 한 골프연습장으로 기자를 데려갔다. 이곳에는 안 대표가 만든 야외스크린골프 시뮬레이터가 설치돼 있다. 안 대표는 야외스크린골프 시뮬레이터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골프존’이 실내 스크린골프 시장의 독보적인 존재라면, 안 대표의 ‘필드 존’은 야외의 대형 드라이빙 레인지 등 야외 스크린골프의 강자로 꼽힌다. 전국 1390개의 실외 연습장 중 야외 스크린이 설치된 건 100곳이 채 안 된다. 실내 스크린보다 보급률이 낮은 편이다. 안 대표는 이 중 65곳에 자사제품을 설치해 야외 스크린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10년 이상 CCTV 제조만 해오던 안 대표는 지인 덕에 골프에 입문했다. 안 대표는 취미로 배운 골프였지만 점차 본업을 위해 골프를 치기 시작했다. 안 대표의 필드행이 잦아지면서 이후 아이템 다변화 차원에서 골프 관련 제품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스윙분석기를, 2005년부터는 스크린 골프에 눈을 돌려 실내 스크린골프시뮬레이터를 개발했다. 이어 야외 스크린골프, 그리고 지루한 퍼팅 연습을 게임화시킨 ‘퍼팅 닥터’라는 연습기까지 개발해냈다. 퍼팅 연습기는 과녁게임도 하고, 퍼팅 18홀 연습도 할 수 있도록 스크린골프 부문에서 퍼팅만 오려낸 것이다. 안 대표는 평소 손으로 하는 운동은 가리지 않고 좋아했고, 빠지지는 않을 만큼 운동에 소질이 있었으며, 그 가운데 퍼팅 능력이 탁월했다. 스스로 퍼팅을 더 잘하려고 몰두하다 보니 퍼팅 전용 연습기까지 만들 수 있었다.

퍼팅이 잘되니 스코어도 좋아졌다. 골프를 한 지 2년여 만에 80대 초반을 넘나들더니 78타를 쳐 첫 ‘싱글 패’를 받았다. 안 대표는 골프 시작 3년 만에 경기 용인의 신원골프장에서 77타까지 쳤다. 안 대표는 아이언이 한창 물오를 무렵이던 2005년 경기 남양주 비전힐스 골프장에서 생애 첫 홀인원을 뽑아냈다. 이후 1년도 채 안 돼 경기 용인의 레이크힐스 골프장에서 두 번째, 그리고 몇 달 뒤 경기 양주의 송추골프장에서 세 번째 홀인원을 뽑아냈다. 3차례의 홀인원은 2005년과 2006년 작성했다.

하지만 안 대표의 골프 실력은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안 대표는 “레슨 한번 제대로 받지 않고 혼자 배웠기 때문”이라면서 “한번 몸에 밴 스윙 폼을 고치기란 쉽지 않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물론 스크린 골프시뮬레이터 개발 때문에 몇 달 동안 골프채를 잡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도 이유였다.

안 대표는 2년여 개발 끝에 2009년 첫 실내 스크린 제품을 만들었지만, 경쟁사에 비해 마케팅 능력이 떨어져 빛을 보지 못했고 경쟁이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야외 스크린골프에 눈을 돌렸다. 안 대표는 “야외 스크린의 장점은 환경(공기)이 좋고 자신의 구질을 살필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야외 스크린은 실내 스크린보다 기술 장벽이 훨씬 높단다. 야외 스크린은 날아가는 구질과 화면에서 구현되는 구질이 같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치시키는 데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했고, 구질의 정교한 표현이 시장의 선점 포인트였다. 실내 스크린은 대개 휘두르는 클럽의 궤적을 통해 회전 값을 구하는 시스템이다. 반면 안 대표의 야외 스크린은 센서가 볼이 지나가는 20㎝ 구간에서 많은 정보를 데이터로 검출해야 하는 난이도가 높은 기술이 요구된다. 안 대표는 “골프 볼의 딤플 회전력을 기반으로 95% 이상의 정확도에 ‘드로’나 ‘페이드’ 구질까지 잡는 초정밀 제품”이라는 자랑도 잊지 않았다. 특히 실내 스크린은 화면을 통해서만 나타난 홀에 퍼팅을 하지만, 안 대표의 야외 스크린은 실제 필드에서처럼 홀에 넣어야 홀아웃하는 독창적인 시스템이다. 홀은 거리에 따라 3개 중 하나를 택해 퍼팅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안 대표가 이처럼 기술력을 갖춘 건 베테랑급 엔지니어 8명을 연구·개발에만 전담토록 했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그래서 회사에서 근무하는 연구원과 직원 중 골프 고수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고 귀띔했다. 안 대표는 좋은 제품을 만들려면 직원들이 골프를 알아야 한다며 골프를 권장했다. 안 대표는 요즘엔 개발에 신경을 쓰다 보니 자주는 못 나가는 편이어서 80대 스코어면 만족하는 편이다. 안 대표는 “골프는 사람이 만든 운동 중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가장 적합한 스포츠”라면서 “골프장에 가면 모든 것을 잊을 수가 있다”고 말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