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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Her Story 게재 일자 : 2016년 08월 24일(水)
“결식, 아이들 건강뿐 아니라 심리·사회적 문제도 일으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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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 여성 NPO(비영리단체) 회장’이라는 타이틀로 주목받고 있는 양진옥 굿네이버스 신임 회장이 지난 17일 서울 영등포동 본부에서 기부와 나눔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양진옥 굿네이버스 신임 회장

“제가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기부나 나눔은 사회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고 요청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성장하면서 사회적 분위기와 흐름이 많이 바뀌었고 이제는 기부와 나눔도 자연스러운 문화로 정착하고 있습니다.”지난 1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굿네이버스 본부에서 만난 양진옥(45) 굿네이버스 신임 회장은 자신의 입사 초기 시절을 떠올리며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양 회장은 지난 1995년 공채 1기 직원으로 입사한 뒤 지난달 1일 신임 회장으로 취임하기까지 20년이 넘는 세월을 ‘굿네이버스’와 함께 걸어온 굿네이버스 역사의 산 증인이다.

양 회장이 말단 직원에서부터 ‘40대 여성 NPO(비영리단체) 회장’이 되기까지 굿네이버스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왔다. 실제 1991년 직원 8명에, 1억 원 남짓한 초기 기금으로 출발한 굿네이버스는 올해 회원 수 41만여 명, 연간 예산이 1700억 원에 달하는 거대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양 회장은 “제가 입사할 때만 해도 국내 사업이 기반이었고 국제 사업은 개척하던 시기였습니다. 또 전국적으로 확장되지 않은,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그런 조직이었어요. 그랬던 굿네이버스가 지금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중남미 등 35개국에서 아동권리 보호와 지역사회 자립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1995년 당시 2억 원 남짓이었던 예산이 올해 1700억 원대로 커졌으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 왔다고 할 수 있죠”라고 말했다.

그는 이처럼 굿네이버스가 눈부신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로 ‘혁신의 DNA’를 꼽았다. 양 회장은 “굿네이버스는 해마다 전 직원이 3개월가량 매달려 중장기 전략을 짭니다. 3∼5년 후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이고 거기서 굿네이버스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방향을 잡는 겁니다. 이 전략에 따라 내부 팀도 완전히 개편할 정도로 굿네이버스는 혁신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고 설명했다.

양 회장은 혁신의 대표적인 사례로 2001년 전격적으로 추진한 ‘길거리 모금 전면 중단’을 꼽았다. 그는 “그 무렵 대중과의 소통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을 직감했고 이에 따라 우리 사업과 모금 방식을 기존과 다르게 해보자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팀을 꾸려 웹진과 홈페이지를 만들고 온라인 전용 콘텐츠도 제작했는데 이런 발 빠른 대응이 조직이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습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년이 넘는 세월을 소외된 아동들의 권리 신장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그였지만,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양 회장은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당시만 해도 사회복지는 보육원 등을 돕고 지원하는 것이란 인식이 컸습니다. 활동하면서도 ‘이런 것으로 복지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 길이 맞는 길인가?’ 등과 같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품고 있던 그에게 굿네이버스는 어느 날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다가왔다. 굿네이버스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계기를 떠올리던 양 회장은 “졸업이 다가올 무렵 굿네이버스가 낸 채용 공고를 접하게 됐습니다. ‘제3 세계의 소외된 아동과 이웃들을 위해 다양한 구호사업을 하는 전문 구호개발 NPO입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달려갑니다’ 이런 식의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그 공고를 보자마자 이상하게 마음이 설레는 것을 느꼈습니다. 복지를 공부하면서 접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어떤 길일까’하는 호기심이 들었고 용기를 내 도전을 하게 됐습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합격하고 1주일 동안 신입사원 연수를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1주일 연수는 굉장히 생소한 거였거든요. 연수를 받으면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좋은 이웃들이 참여해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이라는 구체적인 가치가 있는데 그것을 ‘이렇게 실행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 길에 대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입사해서 1년 동안 무척 즐겁게 일했던 것 같아요. 제 길을 찾은 거죠”라며 웃었다.

이런 양 회장이 굿네이버스에서 21년 동안 활동하면서 가장 애착이 가는 사업으로 꼽은 것이 바로 ‘결식아동 지원 프로그램’이다.

그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결식아동 문제가 나타나면서 학기 중에 급식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방학 중에는 지원을 받지 못해 굶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이 아이들을 학교에 오게 해서 급식은 물론 정서 프로그램도 짜서 제공해 주려고 했는데, 정작 학교 측이 난색을 보이며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각 학교가 지역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지 않고 폐쇄적으로 운영됐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학교를 일일이 찾아가 설명하는 작업을 했어요. 결국 2002년 서울에서 시작한 방학 결식아동 사업이 2004년 전국으로 확산됐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결식아동 지원 프로그램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유에 대해 그는 “아이들을 만나 보니 결식이라는 빈곤에서 오는 낙인감 때문에 건강뿐만 아니라 심리·사회적인 문제가 추가로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집에 찾아가 개별로 하는 것보다 아이들을 모아 그룹 안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이 정착하자 아이들끼리 서로 상처를 공유하면서 ‘나도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고무적인 것은 이런 친구들 가운데 일부는 훗날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뒤 다시 우리 방학교실에 자원봉사를 나왔다는 겁니다. 실습까지 해서 굿네이버스 직원이 된 학생도 있습니다. 방학교실을 시작한 지 13∼14년 됐는데 그 안에 방학교실 ‘키즈’들이 성장한 거죠. 이처럼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닌 아이들을 보면서 계속 희망의 메시지를 줘야 한다는 목표를 갖게 됐습니다”고 언급했다.

이런 가운데 양 회장은 최근 국내 기부 문화와 관련해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고 평가하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고액자산가와 기업들의 적극적인 실천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액을 꾸준히 기부하는 풀뿌리 모금은 거의 선진국 문턱을 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난 5∼6년 동안 폭발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선진국과 비교해 기부 총량은 부족한 상황입니다. 십시일반이나 풀뿌리 모금은 많아졌는데 고액 기부 금액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앞으로는 기업이나 고액자산가들이 기부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물론 세금 부분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긴 하지만 결국 이들이 나서야 전체 기부금이 많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고 지적했다.

인터뷰 내내 업무와 관련해서는 막힘 없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던 그였지만,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 ‘워킹맘’으로서의 고충을 털어놨다. 중학교 1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의 두 딸을 키우고 있다는 그는 “시간이 부족해 더 잘해 주지 못한 것이 늘 미안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이들이 커서 제 일을 많이 이해하고 응원해 줘서 그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이 돼주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엄마가 해결해줄 수 있다는 믿음을 줘서 자녀와 굳건한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 끈을 놓지 않게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제 나름의 원칙입니다”며 자신만의 ‘팁’을 공개하기도 했다.

양 회장은 언론으로부터 ‘40대’, 특히 ‘여성 회장’이라는 타이틀로 주목받는 것과 관련해서는 “사실 젊은 것은 이슈가 될 줄 알았습니다(웃음)”며 “워낙 복지 분야에 40대 대표가 없다 보니 나이가 주목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언론에서는 ‘여성 회장’이라는 점에 더 주목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면서 아직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 완전히 열린 상태는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은 융합의 시대고 세상이 복잡해지는 만큼 공감하고 포용하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리더십이 조화롭게 운영돼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여성들이 이런 부분에서는 강점을 가질 수 있는 만큼 좋은 여성 인재들이 사회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고 강조했다.

신임 회장으로서 앞으로의 포부와 관련해서는 “사회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 만큼 NPO의 역할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대에 조직의 대표가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고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굿네이버스에 몸담아 온 만큼 직원들과 함께 지금까지 쌓은 우리의 경험을 다른 영역과 공유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공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제2의 양진옥’을 꿈꾸는 젊은 청년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부탁에 그는 “굿네이버스와 같은 비영리기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이 기관에 헌신할 수 있는 비전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사명으로 생각할 수 있는지 등과 같은 그 사람의 가치관”이라며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은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인생인 만큼 주저하지 말고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고 조언했다.

장병철 기자 jjangb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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