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Focus >美 대선, 아시아系가 ‘스윙보터’… 뭉치면 무서운 잠재력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는 11월 8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이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스윙 보터(swing voter)’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민주·공화당은 아시아계 유권자들을 방치하고 있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백인 노동자·중산층 공략에 주력했던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최근 흑인·히스패닉계 유권자를 겨냥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아시아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아시아계 등 소수 인종을 ‘텃밭’으로 판단, 특별한 전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클린턴·트럼프 캠프 모두 아시아계 미국인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구 급성장한 아시아계, ‘스윙 보터’로 떠오르다 =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에 따르면 아시아계 미국인은 전체 인구의 6%에 해당하지만, 인구 증가율은 급성장세다. 2000~2013년 인구 증가율에서 아시아계는 56%가 늘었는데, 미국 평균 증가율은 12%에 불과했다. 인구수로 따지면 1996년 170만 명이던 아시아계 유권자는 2012년에는 39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 수치는 적어 보이지만, 주별 ‘승자독식제’로 운영되는 미국 대선 체제에서는 결정적일 수 있다. 플로리다·오하이오·버지니아주 등 전통적 경합 주에서는 몇 백 표 차이로 승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2000년 대선에서 플로리다 선거인단 25명을 차지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의 앨 고어 대선 후보 간 표차는 단 537표였다.

로이터 통신도 최근 “아시아계 미국인은 네바다·버지니아·노스캐롤라이나·콜로라도·오하이오·플로리다 등과 같은 경합 주에서 결정적인 힘을 행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네바다와 버지니아주의 경우 아시아계는 각각 9%, 5%에 달한다. 실제로 마크 워너(민주·버지니아) 상원의원은 2014년 선거에서 1만8000표 차로 겨우 당선됐는데, 이 정도 수치면 아시아계의 향방에 따라 선거가 갈릴 수 있었다고 WSJ는 전했다. 아시아계 슈퍼 정치활동위원회(PAC)인 ‘아시아·태평양계 승리 기금’의 딜라와 사예드 부회장은 “아시아계는 흑인·히스패닉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소수 인종”이라면서 “이 공동체가 투표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이번 선거 결과를 실제로 좌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아시아계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적극적으로 정치활동에 나서고 있다. ‘아시아·태평양계 투표(APIAvote)’와 ‘아시아계 미국인 기자 협회(AAJA)’가 지난 10~13일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공동 주최한 연례 포럼이 대표적으로, 이 행사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게리 존슨 자유당 대선 후보, 질 스타인 녹색당 대선 후보 등이 참석했다. 한국계 미국인들도 ‘힐러리를 지지하는 한국계 미국인(KA-HILL)’ ‘트럼프를 위한 한국계 미국인’을 결성하는 등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민주·공화당 모두 아시아계 공략 전략은 전무 = 문제는 아시아계의 영향력 증가에도 불구하고 민주·공화당 모두 아시아계에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데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의 경우 아시아계를 포함한 소수 인종에게서 튼튼한 지지를 얻고 있는 만큼 ‘표밭’에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 반면 트럼프는 최근 흑인·히스패닉계 유권자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지지를 호소하고 나섰지만, 아시아계는 여전히 방치하고 있다. 여기에는 역대 선거에서 아시아계 유권자 등록률 및 투표율이 가장 저조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인구조사국(US Census Bureau)에 따르면 2012년 대선에서 아시아계 유권자 등록률은 56%로 최하위였다. 백인·흑인 등록률은 평균 71%를 웃도는 73%였고, 히스패닉계도 59%였다.

하지만 아시아계는 소수 인종 중에서는 공화당이 가장 공략하기 쉬운 상대라고 WSJ는 분석했다. NBC방송과 서베이몽키가 지난 23일 발표한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시아계의 클린턴 전 장관 지지율은 66%, 트럼프 지지율은 23%로 큰 차이가 나지만 흑인·히스패닉계에 비하면 차이가 작다. 흑인의 경우 클린턴 87%, 트럼프 8%로 압도적인 차이가 났고, 히스패닉계도 73% 대 22%였다. 실제로 APIAvote 조사에서 본인을 보수라고 밝힌 아시아계 응답자는 19%, 진보라고 밝힌 응답자는 23%로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중도’라고 한 응답자는 48%에 달했다.

아시아·태평양계 정치 연구단체인 ‘AAPI데이터’ 설립자 카식 라마크리스난은 “퓨리서치에 따르면 아시아계는 2065년이면 이민자 수에서 히스패닉계를 넘어설 것”이라면서 “특히 아시아계가 다른 소수 인종에 비해 한쪽으로 크게 치우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스윙 보터”라고 분석했다.

특히 아시아계 중에서도 한국·중국·필리핀·베트남계는 친기업적 성향이 강해 공화당과 합치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들은 주로 자영업에 종사하는 만큼 공화당이 주장하는 감세 혜택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WSJ는 “2016년은 단지 출발점일 뿐, 아시아계는 앞으로 정치적으로 부상할 일만 남아 있다”면서 “이게 바로 현재 공화당의 아시아계에 대한 무관심을 우려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워싱턴=신보영 특파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