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法보다 무서운게 폭염·가뭄… 과수농사 재난 수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화상 입은 사과 폭염으로 농작물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7일 경기 이천의 한 과수농가 농민이 일소 피해를 입은 사과를 들어 보이고 있다. 뉴시스

- 추석 앞두고 속타는 농가

일소피해로 사과·배 생산 줄어
감·대추 등 제수용 출하 포기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보다 무서운 게 폭염과 가뭄이라예. 추석 과수농사는 재난 수준이라 차례상에 과일 보기 힘들 겁니더.”

25일 오후 경북 안동농협농산물공판장. 직원들이 추석 성수기를 겨냥하고 출하된 ‘홍로’ 사과 선별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왠지 한가했다. 우현구(39) 공판장 부장장은 “지난해 이맘때는 하루 1만5000상자(20㎏들이)를 선별했으나 올해는 절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농가에서 폭염에 따른 일소(日燒·과실 표면이 강한 햇빛에 오래 노출돼 화상을 입는 것) 피해로 정상 출하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공판장은 전국 사과 생산량의 20%를 경매하고 있다. 이날 경매 가격을 보니 일부 최상품은 15만 원이 넘었지만 평균 가격은 4만5000원으로, 그나마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농가에서 일소 피해를 막고 착색을 돕기 위해 사과 주변 잎 제거와 출하 시기를 늦추고 있어 공판장 측은 걱정이 태산이다. 박승우(45) 경매사는 “이번 주말부터 기온이 다소 낮아지고 일교차가 있을 것 같아 농가에서도 사과 착색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추석 막판에 출하 전쟁이 일어나고 가격 하락 때문에 농가의 명절 대목은 실종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출하가 늦어지고 사과가격 예측이 불투명해지면서 농협도 추석 밑 기업체 등의 선물용 예약을 못 받고 있다. 농가도 마찬가지다. 5000㎡에 걸쳐 사과농사를 짓는 경북 예천군 박모(55) 씨는 “현재 최상품은 1상자(5㎏들이)에 5만 원 이상 가격으로 선물용으로 내놓을 수 있지만, 추석이 다가올수록 가격 하락이 불 보듯 뻔해 과수농가의 발목을 잡는 김영란법 시행 직전 마지막 특수도 없을 것”이라며 한숨을 지었다. 2만5000㎡ 규모의 배 농사를 짓는 충북 옥천군 이모(59) 씨는 “지난해 추석에는 15㎏짜리 800상자를 선물용으로 팔았으나, 올해는 폭염과 가뭄으로 배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 출하 시기를 조절할 수조차 없다”고 말했다. 감이나 대추 재배농가들은 잇따라 제수용 출하 포기까지 하는 형편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오는 9월 5일까지 농산물 가뭄과 폭염 피해를 조사할 예정이다. 경북도는 이미 사과 243㏊, 경남도 역시 단감 360㏊ 면적 정도의 피해를 봤다. 경남 거창 포도는 전체 350㏊ 중 50㏊(14%)가 착색이 불량해 출하시기를 놓쳤다. 안동농협농산물공판장 측은 “대부분 여름 과수는 김영란법 시행 전인 추석 밑 대목에 소진해야 하지만, 올해는 가뭄과 폭염으로 출하 시기가 뒤죽박죽되면서 농가들이 유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박천학

옥천=고광일·거창=박영수 기자 kobb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