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 Story >“경기전 잔뜩 긴장하다 막상 ‘코리아’ 소개되면 차분해져”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구본찬이 지난 29일 인천 서구 원창동 현대제철종합운동장 내에 있는 양궁 훈련장에서 과녁에 꽂힌 화살을 뽑고 있다. 구본찬은 “동료들과 훈련하고 함께 생활하는 것이 정말 좋다”며 웃었다. 인천=신창섭 기자 bluesky@

男양궁 첫 올림픽 2관왕 구본찬

지난 29일 오후 인천 서구 원창동 현대제철종합운동장 내에 있는 양궁 훈련장.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한국 양궁 남자 최초로 올림픽 2관왕을 달성한 구본찬(23)은 오후 훈련에 한창이었다. 구본찬은 이날 오전 150발, 오후 100발을 쏘면서 컨디션을 점검했다. 구본찬은 리우에서 돌아온 당일 저녁에도 훈련장에서 시위를 당겼다. 양궁은 오래 쉬면 감각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올림픽 이후 평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날 구본찬은 훈련 도중 팀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고 즐겁게 웃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그는 “올림픽을 마치고 팀으로 돌아와 행복하다”며 “동료들과 훈련하고 함께 생활하는 것이 정말 좋다”고 말했다. 구본찬은 이날 인터뷰 내내 양궁에 대한 사랑과 양궁을 즐기는 자신의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줬다. 또 자신을 끊임없이 낮추고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등 밝은 겉모습 속에 감춰뒀던 깊은 속마음도 내비쳤다.

구본찬은 귀국 후 행사, 인터뷰, 방송 출연이 이어지면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향인 경북 경주와 모교 등을 찾아 열렬히 환영받기도 했다. 구본찬은 2주 동안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동시에 올림픽 전의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스포트라이트는 길어야 한 달이면 끝나고 다시 양궁 선수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구본찬은 “경주시청에서 환영행사를 해줬는데 ‘내가 이런 것을 받아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냥 인사만 드리고 올 계획이었는데 너무 환대해 주셔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천성적으로 과도한 칭찬을 받거나 관심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운 구본찬은 단체전 금메달을 딴 후 어머니가 ‘카퍼레이드를 시켜 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인터뷰한 기사를 보고 “그런 말씀 절대 하시지 말라”고 했을 정도다. 구본찬은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정말 감사하다. 언제 이런 사랑을 받아보겠나. 하지만 관심은 3주, 한 달이면 끝난다. 올림픽은 지나갔고 저는 다시 국가대표 구본찬, 현대제철 선수 구본찬으로 돌아가야 한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자랑스러운 경력이 추가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다. 양궁 선수 구본찬은 진행형이고 이제 시작이다”고 강조했다.

단체전 금메달을 딴 후 꿈인 것 같아 일어나자마자 금메달을 찾았던 그였지만 빠르게 평소 모습으로 돌아왔다. 구본찬은 “올림픽이 끝나고 팀에 돌아와 행복하다”며 “대표팀 생활 역시 즐겁고 행복했지만 팀에 돌아와 형들과 같이 밥 먹고, 운동하고, 저녁에 TV 보고 하는 것을 정말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주에는 지하철을 타고 방송국에 갔지만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섭섭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전혀 그렇지 않다”며 “‘남자 대표팀에 구본찬이란 선수가 있지’정도면 딱 좋다. (장)혜진이 누나처럼 너무 많은 관심을 받으면 불편할 것 같다”고 손사래를 쳤다.

구본찬은 비인기 종목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격려해 달라는 부탁도 조심스럽게 했다. 그는 “평소에도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면 좋을 것 같다”며 “올림픽에서 양궁은 누구나 금메달을 딸 거라고 생각하지만 선수, 지도자, 협회가 열심히 준비하고 모든 게 잘 어우러져 성적을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본찬은 “그 과정에서 부담감과 압박감을 많이 느낀다”며 “올림픽 때만 찾아오는 관심은 슬픈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저는 운이 좋아서 잘 풀렸지만 메달을 못 딴 선수도 많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도 메달을 못 딴 선수가 공항에서 고개 숙이고 죄송하다고 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메달을 못 땄다고 죄인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선수촌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점이 무척 아쉽다.”

구본찬은 올림픽 2관왕이 되기까지 자기 앞에 놓인 일을 하나씩 달성하며 성장해 왔다. 구본찬은 “처음에는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고, 국가대표가 되고 나니 메이저대회에 나가고 싶었다”며 “노력해서 아시안게임에 나갔고, 세계선수권도 출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고 나서는 올림픽 무대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최선을 다해 올림픽 출전권도 따냈다. 그는 “선수를 하면서 올림픽 금메달을 꼭 따야겠다고 목표를 세운 것은 아니었다”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서 즐겁게 지내다 보니 올림픽 메달까지 따게 됐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어 “걱정한다고 해서 해야 하는 일이 바뀌지는 않는다”며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목표를 묻는 질문에도 솔직한 답이 돌아왔다. “(2020) 도쿄올림픽에 나가면 좋다. 모든 선수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4년은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지금 제가 이렇게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당장 이번 주말에 내년 국가대표 1차 선발전이 열린다. 계속 최선을 다하면서 잘 준비하겠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구본찬이 지난 29일 인천 서구 원창동 현대제철종합운동장 내에 있는 양궁 훈련장에서 과녁에 화살을 겨누고 있다. 인천=신창섭 기자

리우올림픽에서도 구본찬은 그동안과 다르지 않았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즐겼다. 루틴 카드(선수의 리듬 유지와 심리적 안정을 위해 자신만의 단어나 문구를 적은 카드)에 적은 것처럼 “자신있게. (빗)나가도 9점”을 되뇌며 활시위를 당겼다.

가장 긴장한 때는 단체전 결선 첫 경기였던 네덜란드와의 8강이었다. 구본찬뿐 아니라 김우진(24·청주시청), 이승윤(21·코오롱) 모두 크게 긴장했다. 구본찬은 “예선에서 우리가 1등을 해서 부전승으로 8강에 올랐고, 네덜란드는 16강전을 치렀는데 상당히 잘 쐈다”며 “우리는 첫 경기인데 네덜란드는 경험이 있어 3명 모두 긴장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막상 ‘코리아’라고 소개되고 나니 마음이 가라앉아 차분하게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개인전은 오히려 부담이 덜했다. 구본찬은 스스로 금메달 후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대회가 끝난 후 ‘누가 개인전 금메달을 딸 것으로 예상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우진이와 승윤이는 다 자기 이름을 썼다”며 “저는 우진이가 딸 것으로 생각했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김우진처럼 집중적으로 관심을 받았다면 중압감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란 게 그의 솔직한 생각이다. 구본찬은 “기대를 별로 받지 않은 제게 하늘이 금메달을 내려준 것 같다”고 말했다.

구본찬은 단체전 결승에서 6발을 모두 10점에 맞힌 것을 경기 중에는 몰랐다. 그는 “만약 4발 정도 쏜 상황에서 모두 10점을 맞혔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후 실수했을 것”이라며 “저 혼자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그 순간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2관왕이 됐어도 바뀐 것은 없다고 강조한 구본찬이지만, 최근 금메달을 딴 덕분에 소중한 선물을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 받아 본 팬레터다. 구본찬은 “고향에 갔을 때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 밤늦게 집에 돌아갔는데 교복 입은 학생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응원편지를 받아든 구본찬은 집에서 요구르트를 가져와 학생들에게 하나씩 나눠 줬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요구르트다. 고마운 마음에 그냥 보낼 수 없어 요구르트를 나눠 주며 일일이 인사했다. 축하한다는 말도 있고, 별로 잘생기지 않았는데 잘생겼다고 칭찬하는 글도 있고 그렇다. 어찌 보면 내용은 별거 없는데도 정말 고맙다. B3 정도 크기 종이에 반 학생들이 전부 글을 써 줬다. 제 방 벽에 붙여 뒀다. 아직 슬럼프가 온 적이 없는데, 그런 상황이 온다면 그 글을 보면서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구본찬은 다음 달 3일 경북 예천에서 열리는 전국남녀양궁종합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이 대회는 2017년 국가대표 1차 선발전을 겸하고 있지만 올해 국가대표는 출전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구본찬은 “올림픽을 준비하느라 소속팀 시합을 뛰지 않았다”며 출전을 자청했다. 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구본찬은 “국가대표는 저만 출전하는 줄 알았는데 우진이와 승윤이도 출전한다”며 “다시 경쟁이 시작됐다. 잘해야 한다”며 밝게 웃었다.

인천=조성진 기자 threem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