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자기검증질문 200개 ‘공직자 인사검증’ 구멍 ‘숭숭’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들이 선서 및 답변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철성 경찰청장(통과), 조경규 환경부 장관 후보자(적격 의견),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진행중),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야당 단독 부적격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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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형성 관련 40개 ‘최다’
정신과 치료여부까지 묻지만 제출자료 의존 ‘구멍’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넥슨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된 진경준 검사장에 대해 부실 인사검증을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것을 계기로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이철성 경찰청장도 최근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음주운전 논란에 휩싸였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재산 단기간 증식 의혹과 장녀 인턴 채용 압력 의혹 등이 제기됐다. 부실한 인사검증 제도는 정권을 따지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김대중정부에서는 장상·장대환 두 국무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과 세금 탈루 등으로 낙마했다. 노무현정부 때도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가 2006년 8월 논문 표절과 논문 중복 게재 등으로 인해 임명된 지 13일 만에 사퇴했다. 이명박정부에선 2010년 8월 김태호 전 국무총리 후보자가 청문회 검증의 벽을 넘지 못했다.인사검증 제도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면서 문제점과 대안을 점검해 본다.

1 인사검증제도의 목적

국무총리, 장관 등 고위 공직자들은 청와대의 임명 발표로 즉각 입각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 인사청문 절차를 거쳐서 사실상 합격 판정을 받아야 국무위원으로 취임이 가능하다. 하지만 인사청문회에서 항상 좋은 결과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청와대가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 의혹이 제기돼 낙마한 사례들이 속출하면서 보다 엄격한 검증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후보자의 낙마는 비단 개인의 불명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정권 자체에 대한 도덕성 시비를 불러일으키며 대통령의 지지율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청와대의 인사 검증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우선 후보자 본인에게 이른바 ‘사전청문회’로 불리는 질문서를 전달하고 검증의 기초 자료로 삼는다. 이어 검찰·경찰·국정원 조사를 토대로 정밀 검증이 이뤄진다.

2 대상은 누구이고 제출서류는 뭔가

국회법 제65조의 2 ‘인사청문회’ 2항에는 인사청문회 대상을 ‘대통령이 각각 임명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국무위원·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국가정보원장·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금융위원회 위원장·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국세청장·검찰총장·경찰청장·합동참모의장·한국은행 총재·특별감찰관 또는 한국방송공사 사장의 후보자’와 ‘대통령 당선인이 지명하는 국무위원 후보자’, ‘대법원장이 각각 지명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의 후보자’로 하고 있다. 이 중 대법원장, 대법관, 국무총리,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 및 국회에서 선출하는 헌법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 등은 헌법상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임명할 수 있다. 또한 인사청문회법 제5조 ‘임명동의안 등의 첨부서류’에는 △직업·학력·경력에 관한 사항 △공직자 등의 병역사항 신고 및 공개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의한 병역신고사항 △공직자윤리법 제10조의 2 제2항의 규정에 의한 재산신고사항 △최근 5년간의 소득세·재산세·종합토지세의 납부 및 체납 실적에 관한 사항 △범죄경력에 관한 사항 등이다.

3 세부검증 절차는

우선 인사 수요가 발생하면 청와대는 국무위원으로 적합한 후보군을 정한다. 이때 청와대 인사수석실은 예비후보 리스트를 작성하게 된다. 예비후보 리스트 작성을 위해 인사수석실은 행정자치부의 국가인재 데이터베이스를 참조하기도 하고 모처를 통해 확보됐거나 추천된 인재를 넣기도 한다. 정권마다 차이가 있지만 후보군이 정리되면 일반적으로 대통령 또는 대통령 비서실장 등 청와대 핵심 측근들에게 명단이 보고된다. 이를 통해 2, 3배로 후보가 압축된다. 청와대는 해당 후보자에게 200개의 질문으로 구성된 고위공직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를 보낸다. 이때부터 민정수석실의 역할이 시작된다. 민정수석실은 후보자들로부터 받은 사전 질문서를 검토하고, 후보자의 납세·병역·재산·학위 등의 기록을 꼼꼼하게 점검한다.

4 자기검증제도는

청와대가 공직후보자 인사 검증 때 후보자 본인 스스로 설문을 통해 도덕적 흠결과 업무 수행 자질에 대해 기술하도록 하는 제도다. 지난 2010년 김태호 전 국무총리 후보자 및 일부 장관 후보자가 도덕성 문제 등으로 낙마하자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공직 후보자의 인사검증을 시작 단계부터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도입됐다. 2010년 이전에는 인사 검증 마지막 단계에서 2~3배수로 압축된 유력 후보자들만 ‘자기 검증서’를 제출하면 됐지만, 현재는 예비후보 리스트에 등록된 모든 후보자는 자기 검증서를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질문 항목도 종전의 150여 개에서 200개로 늘렸다. 답변 내용은 비밀이 철저히 보장되지만 청와대 검증팀은 이 질문지 답변을 바탕으로 현장 확인과 주변 탐문 등을 통해 진위 여부를 확인한다. 또 마지막 단계에선 대통령실장이 주재하고 관계 수석들과 인사비서관 등 10명이 참여하는 인사추천회의에서 2~3배수로 압축된 유력후보자들에 대한 사전 인사청문회도 실시한다. 이런 인사 검증 방식은 미국의 인사 검증 시스템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5 자기검증서에는 어떤 내용이

이철성 경찰청장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음주운전 전과 및 음주 적발 당시 경찰 신분을 속인 것을 두고 논란이 됐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부실’ 인사검증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지만 공직후보자 자기 검증서에는 음주와 관련된 질문이 3개나 있다. 200개의 자기검증 질문 중에는 재산 형성에 대한 질문이 40개로 가장 많고 △직무윤리(33개) △사생활(31개) △납세 등 금전납부의무(26개) △전과 및 징계(20개) △연구윤리(15개) △병역의무(14개) △학력과 경력(12개) 등의 질문이 포함돼 있다. 재산과 관련해선 개인 간 채권·채무를 모두 적어내야 하고, 렌터카 1개월 이상 이용 경험, 자녀를 특급호텔에서 결혼시킨 경우, 백화점 또는 특급호텔 VIP회원으로 가입한 경력도 묻는다. 사생활과 관련된 질문 중에는 이혼 또는 재혼 경험, 정신과 진료 경험 등도 묻고 있다.

6 검증에 도움주는 기관은

청와대는 인사청문회 대상자에 대해 감사원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세청, 국세청, 병무청, 검찰청, 경찰청 등 10여 개 기관이 작성한 자료를 토대로 검증을 진행한다. 감사원은 감사 관련 자료, 선관위는 정치자금 기부 내역, 관세청은 출입국 신고 물품 및 관세법 위반 관련 자료, 병무청은 병역 자료 등을 각각 청와대에 제출한다. 소득 및 부동산 거래 내역, 원천징수 자료, 증여·양도소득·상속세 등의 항목을 살피는 국세청은 검증 참여 기관 중 가장 많은 자료를 제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검찰청과 경찰청은 범죄 경력 자료를, 농림축산식품부는 직불금 자료를 맡는 등 다양한 기관이 협력해 전방위로 검증하는 구조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의 경우 현장 답사나 탐문까지 하지는 않지만, 자료 요청이 오면 업무분야별로 교통은 범칙금, 수사는 범죄 기록 등을 제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7 부실논란 끊이지 않는 이유

이철성 경찰청장은 23년 전인 지난 1993년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냈다. 이 청장은 1995년에 사면을 받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반성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 청장이 사고 당시 경찰 신분을 숨겨 내부 징계를 모면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청장은 청와대의 사전 질문서에 있는 ‘음주운전 적발 시 ‘직업’을 사실과 다르게 진술한 경력이 있나?’라는 문항에 ‘있다’고 답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측은 문화일보의 질의에 “이 청장에 대한 문제점을 미리 파악했지만 우수한 후보를 고르겠다는 의지에 따른 선택이었다”고 답변했다. 흠결이 있지만 다른 후보들보다 낫다는 판단이다. 한 인사는 “청와대 인사 검증은 제출된 자료를 바탕으로 합격·불합격 여부를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검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무 능력이 탁월하면 결정적 하자가 아닐 경우 커다란 문제를 삼지는 않겠다는 가이드라인을 말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같은 내부 지침은 흠결 없는 공직자를 바라는 국민의 눈높이와 종종 차이가 나기도 한다.

8 허위답변 제출 처벌받나

고위공직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허위 사실을 말한다 하더라도, 법적 규정이 없으므로 처벌받지 않는다. 현재 인사청문회법에는 인사청문특별위원회의 구성과 임기, 증인 출석 의무 등에 대한 규정은 명시돼 있지만, 고위공직 후보자의 허위 증언에 대한 처벌 규정은 마련돼 있지 않다. 국회에서의 증언 등에 대해 규정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에도 국정감사와 국정조사, 인사청문회 등에서 증인 및 감정인이 증언이나 감정을 허위로 했을 경우 징역 1년 이상 징역 10년 이하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돼 있으나 공직 후보자 본인의 허위 진술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미국의 경우 백악관 인사 관리국에서 공직 후보자에게 사전 검증의 목적으로 200여 문항에 대한 답변을 제출하도록 하는데, 이에 대해 허위 기재를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9 미국의 인사청문회는

미국 정부의 고위직 인사청문회는 철저한 사전 검증을 통해 ‘중도 낙마’를 막고 있다. 백악관에서는 고위직에 오를 후보를 두고 약 2~3개월 전부터 사전검증을 벌인 뒤 이를 통과했을 경우에만 공개 지명한다. 사전 검증이 철저하게 진행되는 만큼 미국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가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한 경우는 1900년대 이후 3명에 불과했다. 후보자는 전과기록, 마약 사용 여부 등 범죄 관련 사항과 재산현황, 납세 기록 등을 백악관 비서실에 제출한다. 인사청문회를 여는 미 상원 역시 청문회 개최 전 후보자에게 서면질의서를 통해 개인 신상에 대해 면밀한 검증을 진행한다. 특히 관련 상임위는 후보자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고 제출받을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이 단계를 통과한 후보자만이 공식 인사청문회 자리에 나설 수 있어 실제 청문회에서는 개인 신상에 관련된 문제보다 주로 정책을 중심으로 질의가 이어진다.

10 유럽의 청문회는

의원 내각제 통치구조가 많은 유럽에서는 정당 내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정치인이 장·차관에 기용되기 때문에 후보자에 대한 별도의 공식 인사청문회가 열리지 않는다.

다만 영국에서는 일부 공직자에 대해 공공인선감독관실 감독 아래 후보자의 자격을 검증한 후 사전인사청문회를 열기도 하는데 청문회 결과보고서에 후보자의 개인 정보가 담기지 않도록 하는 등 사생활 보호장치를 마련해 둔 점이 우리나라와 다르다. 프랑스에서는 헌법재판소와 고위직 법관에 한해 인사청문회를 열어 상임위의 5분의 3이 반대할 경우 임명이 철회된다. 유럽연합(EU) 역시 EU 집행위원장이 26명의 위원장을 선임할 경우 각 상임위별로 청문회를 거친 뒤 본회의 표결을 통해 최종 임명을 결정한다.

김만용·박정경·김대종·이후연 기자 my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