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덕 셰프의 사계절 건강 밥상>빈자적, ‘貧者’를 위해 부쳐냈던 ‘한입 빈대떡’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고소하면서 바삭바삭한 식감이 일품인 빈자적. 작고 동그란 모양에 색상도 노르스름하니 고와 추석 명절에 손님맞이용으로 적합한 음식이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전 - 생선·육류 등에 달걀 옷 입혀 한입 크기로 양면을 지져낸 요리

적 - 불에 구워서 만든 음식 총칭 꼬챙이에 꿰어 굽는 의미로 변해

부침개- 재료에 밀가루 반죽 섞어 번철에서 큼지막하게 부쳐낸 요리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가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명절 중 으뜸으로 꼽는 추석도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명절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여럿이지만 평소보다 넉넉히 장만하는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전’이라 할 수 있겠다.

전통 한식에는 튀김요리는 거의 없고, 부침 요리가 많은데, 전은 부침 요리의 총칭으로 볼 수 있다. 흔히 전, 적, 부침개 등으로 구분하는데, 전은 궁중 음식인 전유화(煎油花), 전유어(煎油魚)에서 온 말이다. 한자 전(煎)은 달일 전, 졸일 전, 지질 전 등을 의미한다. 민간에서는 저냐·전·부침개·지짐개라고도 불렀다. 생선류, 패류, 채소류, 육류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며 주로 한입 크기로 자르고 저미거나 잘게 다져 밀가루, 달걀로 옷을 입혀 기름을 두르고 납작하게 양면을 지져 만든다. 생선전, 고추전, 굴전, 화전(花煎) 등 한입에 먹을 수 있는 것과 파전, 김치전, 부추전 등도 전에 포함된다.

전이 각종 부침 요리를 모두 포괄하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부침개’는 재료를 밀가루 반죽에 섞어 큼직하게 부친 것을 뜻한다. 또한 적은 산적(散炙)에서의 적을 뜻한다. 적은 본래 불에 구워 만드는 음식을 총칭하다 꼬챙이에 여러 가지 재료를 꿰어 굽는 음식으로 그 의미가 변했다. 적은 크게 산적·누름적·지짐누름적으로 나눌 수 있다. 산적은 익히지 않은 재료를 각각 같은 길이로 썰어서 양념하여 꼬챙이에 꿰어 굽는 것이고, 누름적은 재료를 미리 익힌 뒤 꼬챙이에 꿰는 것이다. 지짐누름적은 재료를 꼬챙이에 꿰어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을 씌워 전(煎)을 부치듯이 번철(솥뚜껑처럼 생긴 무쇠 그릇)에 지지는 것으로 그냥 적이라고도 부른다. 대부분 전류를 상에 낼 때는 초간장이나 양념장을 곁들인다.

그런데 특이하게 녹두를 맷돌에 갈아 치는 녹두전은 통상 빈대떡이라고 부른다. 보통 녹두반죽에 간 돼지고기와 숙주, 고사리, 김치나 배추 등을 넣어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굽는다. 빈대떡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제법 많은 설이 전해져 무엇이라고 특정하기 어렵다. 확실한 것은 요즘 사람들은 밀가루로 부친 것은 전이나 부침개로, 녹두 반죽으로 부친 것을 빈대떡으로 구분해 부른다.

이 빈대떡을 옛날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먹음직스러운 음식이라는 의미의 ‘빈자(貧者)떡’이라고도 불렀단다. 그리고 내가 대안 스님께 사찰음식을 배울 때는 ‘빈자적’이라는 이름으로 배웠다. 조금 생소할 수 있는데, 대안 스님께서는 ‘빈대떡의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빈대떡보다 훨씬 작은 한입 크기로 부친다’며 빈자적의 뜻을 알려 주셨다.

빈자적은 2011년에 프랑스 파리의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대한불교 조계종의 ‘한국 불교 문화 체험’ 행사에서도 대안 스님과 함께 선보인 바 있다. 이때 대안 스님은 다섯 색깔의 채소를 녹두반죽에 섞은 다음 손바닥에 한 숟가락씩 떠서 동그란 모양을 만들어 팬에 부쳐냈다. 현장에 참석한 프랑스인들은 고소한 빈자적 냄새에 현혹돼 만드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으며 맛을 본 뒤에는 ‘음식 자체가 자연을 옮겨놓은 느낌이다’라며 극찬했다.

오늘은 사찰음식이 아니기에 빈자적에 고기를 넣은 조리법을 소개한다. 빈자적은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작은 불에서 천천히 구워야 바삭바삭하게 완성된다. 손에 반죽을 올려 잡으면 예쁘긴 하지만 번거로우므로 팬에 조금씩 떠 놓으며 모양을 잡아주도록 한다.

한식당 다담 총괄·사찰음식 명인


어떻게 만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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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2인분 기준)

깐 녹두 2컵, 돼지고기·푹 익은 배추김치·고사리·숙주 각1/2컵씩, 청홍고추 각 2개, 파 1뿌리, 식용유 1/2컵, 소금 1큰술(윗면을 납작하게 깎아서 계량), 참기름 1작은술, 돼지고기 양념(간장1/2큰술, 소금·다진 마늘·깨소금 1/2작은술씩, 다진 파·참기름 1작은술씩)



만드는 법

1 깐 녹두는 6시간 정도 물에 담가 충분히 불린 다음 물을 붓고 손으로 살살 비빈다. 남은 껍질이 분리되면 깨끗한 물을 여러 차례 갈아주며 알맹이만 남긴다.

2 돼지고기는 사방 0.2∼0.3㎝로 잘게 썰어서 돼지고기 양념에 재워 둔다.

3 푹 익은 배추김치는 배춧속을 털고 잘게 썬 다음 참기름에 무친다.

4 고사리는 딱딱한 부분을 잘라내고 2㎝ 길이로 썬다.

5 대파는 채 썰고 청·홍고추는 고추씨를 털어내고 다진다.

6 녹두에 물 1컵 정도를 붓고 믹서기 또는 핸드블렌더로 간다.

7 6의 간 녹두에 양념한 돼지고기, 김치와 손질한 대파, 고사리, 고추 등을 넣어 고루 섞는다.

8 팬에 기름을 두르고 한 수저씩 떠 넣어 모양을 잡아가며 앞뒤로 노릇하게 부쳐 접시에 담아낸다.



조리 Tip

1 녹두는 껍질 깐 녹두를 구입하도록 한다. 껍질부터 벗기려면 손질하기 번거롭다. 사용 후 남은 녹두는 밀봉해서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2 빈자적에 들어가는 김치는 익은 김치를 이용하는 게 더욱 맛있다.

3 녹두를 불려서 갈 때 조금 남겨두었다가 갈지 않은 녹두를 반죽에 넣어 부치면 씹는 식감이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