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스크래치 골퍼’ 실력의 허윤경프로 예비 시아버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경재 일진 PMS㈜ 회장이 지난 3일 충남 태안군 현대솔라고골프장 솔코스 9번 홀 그린 주변에서 어프로치 샷을 하고 있다.

박경재 일진 PMS㈜ 회장

박경재(64) 일진 PMS㈜ 회장은 골프에 관한한 ‘복’을 타고 난 것 같다. 27세부터 지류(紙類) 유통업에 뛰어든 박 회장은 30년 전 골프를 시작해 1년도 안 돼 싱글 패를 받더니, 요즘도 언더파를 유지하는 ‘스크래치 골퍼’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또 지난달 36홀 규모의 골프장 오너로 변신했고, 다음 달이면 국내 정상급 여자프로 골퍼를 맏며느리로 맞게 된다.

박 회장을 지난 3일 충남 태안군 자신이 운영하는 현대솔라고 골프장 클럽하우스 집무실에서 만났다. 박 회장은 인근 태안 골든베이 골프장에서 열리고 있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한화금융클래식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이날 3라운드에서 ‘예비 며느리’ 허윤경 프로가 선두로 나섰기에, 박 회장은 “허 프로가 우승하면 우리 골프장에서 대회를 열어줄 것”이라고 말하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10월 이곳 골프장에서 박 회장 아들과 결혼식을 올릴 예정인 허 프로는 인터뷰 다음날 4라운드에서 컨디션 난조로 아쉽게 우승을 놓쳤다.

박 회장이 골프와 인연을 맺은 건 30년 전이다. 박 회장은 지류 회사에서 대리점 모임을 골프장에서 한다는 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골프를 배웠다. 박 회장은 골프를 배운지 11개월 만이던 1987년 가을 78타를 쳐 첫 ‘싱글 패’를 받았다. “운동 신경이 좋지만 이왕 시작했으니 더 열심히 하자”고 다짐했던 박 회장은 골프 시작한 지 3개월쯤 지났을 무렵, 상가 주택 옥상에 2타석짜리 간이 연습장을 만들었다. 박 회장은 “연습장에 다니려니 시간 내기가 어려웠다”며 “제약이 있었기에 옥상에 그물망을 설치해 짬이 날 때마다 아침저녁으로 올라가 연습했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이전까지 90∼95타를 오가던 ‘보기 플레이어’ 수준이었다. 78타는 경기 용인 골드 골프장 챔피언 코스에서 기록했다. 엇비슷한 기량의 친구들과 내기를 했다는 박 회장은 “그날따라 홀이 세숫대야처럼 크게 보였다”며 “치면 (핀에) 붙고, 치면 (홀로) 들어가 마치 ‘그분이 오신 날’ 같았다”고 기억했다. 박 회장은 “그날 이후 골프가 두세 단계 업그레이드됐다고 느껴질 정도로 쉬워졌다”며 “이후 80대 타수를 벗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골프는 박 회장의 사업에 큰 도움이 됐다. 한번 만나면 다음 약속까지 이어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게 됐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골프를 “해도 해도 지루하지 않은 재미를 안겨주는 스포츠”라며 “건강과 대인관계를 유지하는데 최고”라고 평가했다. 박 회장이 ‘한 수’ 지도해줄 정도의 실력이 되기에 사람들을 초청하면 모두 기꺼이 응했다. 이로 인해 인맥을 쌓을 수 있었고 거래처를 늘릴 수 있었다. 박 회장은 서울 중구 충무로 인쇄 골목에서 성공한 기업가로 평가받고 있다. 지류 유통뿐 아니라 일본의 고모리 시리즈의 인쇄기를 판매하고, 충무로 사옥 내에 골프연습장 등 스포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박 회장의 골프는 5년쯤 지나 ‘피크’를 맞았다. 언더파를 치더니 1992년 경기 용인의 강남 300 골프장에서 4언더파 68타의 ‘라이프 베스트’를 남겼다. 이날 버디를 무려 7개나 뽑아냈다. 인터뷰 전날에도 박 회장은 자신이 소유한 이곳 솔코스에서 2언더파 70타를 쳤다고 귀띔했다. 지금도 드라이버로 210∼220m까지 보낸다는 박 회장은 대개는 70대 타수를 유지하고, 서너 차례는 언더파를 남긴다. 여전히 친구들과 어울려 한 해에 54홀씩을 두세 차례 걸어서 칠 정도로 골프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2년 전 경기 화성의 리베라 골프장 레이크코스 2번 홀(파3·155m)에서 5번 아이언으로 홀인원의 기쁨을 안았다. 박 회장의 아내는 10년 전 2주 사이 홀인원을 두 번이나 경험하는 등 지금까지 3차례나 기록했다.

박 회장이 골프장 오너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 골프가 좋아지면서 자연스레 골프장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한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골프장 부지를 물색했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한창 골프장 건설이 붐을 이룰 때였고 회원권 분양으로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었다. 박 회장은 아내의 고향인 태안에 갔다 처가 인척 소개로 현대가 간척한 서산간척지 중 농사용 용지를 매입했다. 골프장 대신 벼농사를 짓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165만㎡(약 50만 평)를 매입한 것.

박 회장은 이곳에서 지금도 연간 1만 가마의 쌀을 수확하고 있다. 박 회장은 3년 전 추수 후 남아도는 볏단으로 소를 길러 보겠다고 현대로부터 골프장 예정 부지(48만 평)를 추가로 매입했다. 현대가 간척지로 개발한 AB지구는 총 6개의 골프장이 들어서기로 결정됐고, 박 회장은 그중 2개 코스를 개발해 줄 것을 제안받았으며, 2년 만에 36홀 규모의 현대솔라고 골프장을 조성해 꿈을 이뤘다. 지난 2년여 동안 1주일 중 월요일은 서울에서 근무하고, 나머지 6일은 골프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애정을 쏟아낸 결과였다. 스페인어로 태양을 의미하는 ‘SOL’과 호수를 뜻하는 ‘LAGO’의 합성어로 골프장 이름을 택한 현대솔라고는 ‘태안태락(泰安泰樂)’을 추구한다. 큰 평안과 큰 즐거움이 남아 있는 골프장이란 것이다. 박 회장은 “밋밋한 간척지에 들어선 코스지만 설계 단계부터 다양한 재미를 안겨줄 요소를 만들었고, 홀마다 특색을 더해 다시 찾아오는 골프장으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골프장 인근의 서산 기업도시는 기업 유치가 목표치의 10% 선에 그치고 있지만, 앞으로 5∼10년 이내에 이곳에 자리 잡는 기업들이 늘어나면 수도권 못지 않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며 “그동안 제주도나 해외로 가던 골프 인구가 서해안 쪽으로 몰리게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태안 = 글·사진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