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늦추니, 삶이 경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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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 /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정은석 옮김 / 더숲

“삶이란 스포츠를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저자 베른트 하인리히는 생물학자다. 큰까마귀를 연구한다. 미국 북동쪽 최북단의 메인주, 자신이 자랐던 고향의 숲속에다 오두막집을 직접 짓고, 겨울엔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곳에서 전기도 수도도 없이 살아간다. 메인의 울창한 원시림에는 확실한 마력이 있는 것 같다. 하인리히의 선배들인 헨리 소로나 스콧 니어링 부부도 이 숲에서 자연을 몸으로 겪어가면서 소박한 일생을 살았다.

서류를 작성하고, 메모를 보고, 회의에 참석하고, 논문을 쓴다. 연구자로서 스물다섯 해나 계속한 무난하고 괜찮은 삶이다. 그러나 이 삶에는 어떠한 마법도 없다. 자연과 몸으로 직접 맞닥뜨리면서 미지의 것들을 자세히 탐험할 때에만 생겨나는 생생함 말이다. 저자는 과감히 도시를 떠나서 혼자 숲속으로 들어간다.

‘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는 한 해 동안 숲속 오두막에 살면서 저자가 자연인으로서 경험한 것을 세밀히 기록한 책이다. 하지만 이런 유의 책에서 흔히 보이는 선험적 자연 예찬이나 도덕적 초월이 전혀 없어서 좋다. 성자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저자는 자연의 엄혹한 조건에 끊임없이 순응한다. 시도 때도 없이 파리와 모기가 달려들고, 추위를 피해 들어온 들쥐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몰아치는 폭풍에 새는 벽을 막으려 고심한다. 우물까지 물을 뜨러 가기가 귀찮아 설거지는 몰아서 하고, 커피잔은 결코 씻지 않는다. 하지만 생존의 치열함이 가중될수록 오감이 예민해지면서 “감지하기 힘든 작은 것들”이 느껴진다.

“바람 소리가 오르내릴 때 나무도 신음 소리와 삐걱대는 소리를 함께 낸다. 가지와 몸통이 서로 비벼대고 뒤섞이면서 마치 커다란 더블 베이스처럼 낮은 곡조로 울어댄다. 끊임없이 딸각대고 찰칵대는 나뭇가지가 서로 부딪히고 심하게 휘어지고 재빨리 일어서는 소리가 타악기 소리처럼 들린다.”

정직한 문장이다. 사소한 것조차 놓치지 않으려 호기심 가득히 기록하는 탐험의 문장이다. 자세하기가 세밀화 같다. 하지만 번잡하지는 않다. 인정을 일절 담지 않고, 귀에 들린 만큼만 표현한 덕분이다. 바람 소리를 이렇게 들으려면 도대체 어떤 귀를 가져야 할까. 자기 몸을 촉매로 삼아 세계와 화학반응하는 이런 종류의 문장은 독자들한테 패배와 동경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감히 다다를 수 없는 내공’에 대한 감동과 ‘그 삶에 잠시라도 동참하고 싶다’는 마음을.

생물학자로서 저자는 쉬지 않고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로 쓴다. 교훈의 문장은 쓰기 쉽지만, 체험의 문장은 쓰기 어렵다. 이 책은 저자가 겪어서 알아낸 것들의 결과만을 공유하려 하지 않았다. 잘 쓰인 책들의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저자는 독자들의 감각에 온전한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 책은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문장이 우리를 저자가 서 있는 현장으로 데려가서, 거기에서 함께 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 책을 손에 든 순간, 우리는 하인리히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책을 읽다 보면 세계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부딪혀 오는 것을 느낀다. 인간의 본래 몸은 세계와 상호작용할 때 이렇게까지 섬세하게 조정할 수 있는 기계였던 것이다. 그러나 일상이라는 사슬은 특정한 방식으로 감각을 결박해 육체를 식민화한다. 그 결과 “주변의 경치는 흐릿한 형체가 되어”버리고 마침내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된다. 보고도 볼 수 없고, 듣고도 들을 수 없는 상태, 즉 노예로서의 삶이 반복된다. 하인리히는 어느 날 자신의 노예성을 깨달았고, 삶의 주인이 되고자 숲속으로 홀로 들어갔다.

저자는 말한다. “소리를 들으려면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 아주 천천히.” 삶의 속도를 늦춘 자만이 마음에 경건함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경건한 마음속에만 인생과 자연의 경이로운 신비가 찾아온다. 이 책은 삶의 속도를 늦추어 경건함을 되찾은 한 생물학자의 겸손하면서도 생기발랄한 기록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반드시 천천히 씹으면서 읽는 게 좋겠다. 아니, 아니, 차라리 한 문장, 한 문장을 느껴야 한다. 도감을 곁에 두고 식물과 동물의 모양을 눈으로 살핀 후, 다시 눈을 감고 스크린을 열어 자연과 온전히 노출된 자신을 상상하면서 오두막 주인과 온 감각을 함께해야 한다. 동식물의 세부를 관찰하는 예리한 눈과 수십㎞를 지치지 않고 달리는 강건한 다리와 자연을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이는 냉철한 이성과, 무엇보다도 때때로 짙은 고독에 몸서리치는 피부를 말이다. 그럴 수 없다면, 야생 속에서 자기 삶의 규칙을 다시 세움으로써, 자연인으로 되돌아가려 했던 저자의 글이 더없이 아름답고 풍요롭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들 것이다.

“올 한 해 동안 나는 매일 산을 바라보면서 지냈다. 몇 시간씩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냈다. 며칠씩, 아마 몇 주 동안. 하지만 그런 시간이 전혀 낭비로 생각되지 않는다.”

어떤가. 우리가 꿈꾸던 그 삶이 아닌가. 장은수 출판평론가·순천향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