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국민투표 2題>테러수사권 강화한 중립국… 감청허용법 통과

- 찬성 65%로 가결

“정보기관 손발 묶였는데
지하실서 무대로 올라와”

스위스가 테러 등을 방지하기 위해 정보·수사기관이 전화를 감청하거나 이메일을 열람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정보기관법을 국민투표로 통과시켰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 존중 차원에서 전화 감청과 이메일 열람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금지한 지 30여 년 만에 일어난 대변화여서 주목된다.

25일 더 로컬과 dpa 통신 등에 따르면 스위스는 이날 국민투표에서 정보기관법을 65.5%의 찬성률로 가결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서 스위스 정보당국과 경찰, 검찰 등은 테러와 연관된 사건에 대해 전화 감청과 이메일 열람을 할 수 있게 됐다. 스위스 정부는 전화 감청과 이메일 열람이 테러 연관 사건에 한정되며, 연방 법원과 국방부, 내각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스위스 정부관계자는 급박한 위협이 있는 테러 사건에만 전화 감청과 이메일 열람이 허용될 것이기 때문에 실제 집행 건수는 1년에 10여 차례에 불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야닉 부텟 기독민주당 부대표는 공영방송 RTS와의 인터뷰에서 “(법안이) 감시를 일반화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보기관들이 그들의 일을 하도록 해주는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스위스 정보기관은 그동안 손발이 묶여 다른 나라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기 파르멜랭 스위스 국방부 장관도 “스위스가 지하실을 벗어나 국제적인 기준에 맞는 무대로 올라오게 됐다”고 말했다. 반면 야당인 녹색당은 “테러 공포에 호소한 결과”라고 비판했고, 국제사면위원회는 “표현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스위스는 냉전 끝 무렵인 1989년 정보당국이 자국민 90만 명의 정당 지지 성향, 노조 가입 상황 등과 관련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보기관 규제 주장이 높아졌고 전화 감청과 이메일 열람이 불법이 됐다. 하지만 최근 유럽 각국에서 테러가 잇따라 벌어지면서 테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전화 감청과 이메일 열람을 허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만들어진 정보기관법은 지난해 의회를 통과했지만 녹색당 등 야당의 반대로 국민투표에 부쳐졌고 가결됐다.

스위스뿐 아니라 유럽 다른 국가들도 테러 관련 수사권을 강화하고 있다. 프랑스는 올 5월에 정보·수사기관의 감청 활동을 확대하고 테러 용의자 구금을 허용하는 내용의 대테러 법안을 제정했고, 독일은 이메일 등 인터넷 통신 감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김석 기자 su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