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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Her Story 게재 일자 : 2016년 09월 28일(水)
전인지 “마지막 홀 혼잣말… 영어로 우승소감 연습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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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인지가 지난 21일 경기 성남시 서판교에 위치한 남서울골프장 제2 연습장에서 드라이버를 들고 몸을 풀기 전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LPGA 메이저대회 ‘역대 최저타 우승’ 전인지

지난 18일 프랑스 에비앙 르뱅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 4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목격된 장면이다. 티샷을 마치고 페어웨이를 걷던 전인지(22)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전인지는 러프에서 레이업을 한 뒤, 그리고 그린까지 걸어가면서 계속 입술을 움직였다. 이미 우승이 확정된 전인지는 메이저대회 역대 최저타 기록 경신을 앞두고 긴장을 풀기 위해 시상식에서 말할 우승 소감을 영어로 외우던 중이었던 것. 마지막 홀에서 파를 남겨 메이저 역대 최소타 기록을 작성한 전인지는 우승 소감을 묻자 유창하지는 않지만, 또박또박 생각했던 대로 영어로 이야기했다. 전인지는 가족과 캐디, 매니저, 코치 등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메이저 우승컵을 안고 돌아온 전인지는 도착 첫날부터 방송사 출연 섭외 1순위가 됐고, 미디어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지난 21일 경기 성남시 서판교에 위치한 남서울골프장 제2 연습장에서 전인지를 만났다. 한쪽에선 모 방송사 취재진이 전인지와의 인터뷰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먼저 에비앙 챔피언십에서의 중얼거림을 물었더니 “영어로 우승 소감을 외우고 있었는데 그게 카메라에 잡혔던 것 같다”고 설명하며 웃었다. 마지막 홀 파 퍼팅보다 영어로 우승 소감을 말하는 게 더욱 부담스러웠던 눈치였다.

올해 LPGA투어 정식 멤버가 된 전인지는 에비앙 챔피언십이 첫 우승이었기에 공식 석상에서의 영어 인터뷰 또한 처음이었다. 물론 사석에서 외국 선수나 캐디, 투어 관계자 등과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지만,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간 ‘골프여제’ 박인비도 “처음엔 영어 울렁증 때문에 우승하더라도 겁이 났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 선수들에겐 영어가 넘어야 할 또 다른 벽이다.

전인지는 올 시즌 중반까지 부모와 함께 투어 생활을 했다. 하지만 지난 7월 2연패를 노렸던 US여자오픈에서 컷 탈락하자 스승인 박원(박원골프아카데미 원장) 코치와 상의한 뒤 홀로서기를 시도했다. 박 코치는 “영어에 서툰 부모님이 딸에게 짐이 될 수도 있다고 여겨 결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딸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뒷바라지하던 부모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박희영의 캐디였던 호주 출신 카일리 프랫(39) 여자 매니저, 북아일랜드 출신인 캐디 데이비드 존슨이 전인지의 곁을 지켰다. 전인지는 “매니저 덕분에 영어를 빨리 익히고 외국 선수들과도 잘 어울리게 됐다”고 말했다.

전인지는 “미국 진출 첫해인 올해 목표를 상금 랭킹 톱 10으로 잡았다”며 “2015년보다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이 정도(상금 톱 10)면 스스로 잘했다고 칭찬해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인지의 시즌 상금은 140만 달러가 넘어 이 부문 4위다. LPGA투어는 ‘아시안 시리즈’를 비롯해 최종전인 CME그룹 챔피언십까지 8개 대회가 남아 있다. 전인지는 올해 톱 10에 10차례나 들어 이 부문 2위(63%)를 달리고 있다. 우승은 1번뿐이지만 2위와 3위는 3차례씩이다. 평균타수는 69.52타로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에 이어 2위, 60대 타수 라운드 수(33라운드) 2위, 언더파 라운드 수(43라운드) 3위, 평균 퍼팅 수(29.02타) 4위, 파온 후 퍼팅(1.74타) 2위를 유지하고 있다. 신인왕은 사실상 1위를 굳혔다. 전인지는 “미국 진출에 대비해 지난겨울부터 헤드 스피드를 늘린 효과”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선 헤드 스피드가 91마일 안팎이었는데 지금은 97마일이나 된다. 이 덕분에 비거리가 늘었다.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전인지의 평균 비거리는 245.20야드였지만, 올해 LPGA투어에선 255.39야드로 10야드 이상 늘어났다. 비거리가 늘다 보니 그린 공략이 한결 수월해져 샷 정확도를 높일 수 있고, 핀에 좀 더 가까이 붙일 수 있어 퍼팅 능력까지 향상됐다. 전인지는 26일 발표된 세계 랭킹에서 리디아 고, 에리야 쭈타누깐(태국)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최고인 3위에 올랐다.

전인지가 미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배경’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다. 전인지는 지난해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면서 미국 진출 기회를 얻었지만 ‘미국에 꼭 가야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리우올림픽으로 인해 생각이 바뀌었다. 전인지는 “세계 무대 진출의 기회가 생긴 데다 올림픽 출전 가능성까지 열렸는데 도전해 보지 않으면 두고두고 아쉬움과 후회가 남을 것 같아 미국행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나름대로 준비했지만 올림픽 경기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공동 13위. 그러나 전인지는 올림픽이 끝난 뒤 한 달도 안 돼 에비앙 챔피언십 정상에 오르면 미국 진출 후 8개월 동안 계속되던 우승 가뭄을 해갈했다.

전인지는 국내 투어에 데뷔한 2013시즌 어깨 부상 탓에 시즌 일정을 ‘완주’하지 못했다. 4개월 가까이 목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고생했다. 그래서 이듬해부터 몸 관리에 공을 들여 전인지라는 이름을 알렸고, 지난해 국내 투어를 평정했다. 전인지는 그러나 올해 초 싱가포르에서 발생한 ‘가방 사건’으로 또다시 부상 악몽에 시달렸다. 장하나의 아버지가 싱가포르공항 에스컬레이터에서 떨어트린 가방 탓에 전인지가 다쳤다. 가방 사건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전인지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부상으로 한 달 이상 출전하지 못했다. 게다가 가방 사건 이후 양쪽 부모, 매니지먼트사, 그리고 팬 사이에서 상처를 주는 언쟁이 이어졌기에 하루빨리 가방 사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전인지는 “미국에 진출한 선배, 동료들이 많아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면서 “한국에서도 잘 안 풀릴 때면 학교 친구들을 만나 긍정의 기운을 받곤 했는데 미국에서는 선배, 동료들을 보면서 낯선 곳의 두려움을 떨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물론 전인지 특유의 친화력은 정평이 나 있다. LPGA투어 사무국이 실시한 ‘동료와 직원이 뽑은 사랑스러운 선수’ 설문 조사에서 전인지는 톱3에 끼었다. 에비앙 챔피언십이 끝난 뒤 김세영, 리디아 고 등 한국(계) 선수뿐 아니라 브룩 헨더슨(캐나다) 등 다국적 선수들이 전인지에게 샴페인과 물로 축하 세례를 퍼부었다. 그리고 전인지는 따뜻한 인성을 갖췄다. 미국의 스포츠채널 ESPN은 “전인지는 상대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미소를 지녔다”고 칭찬했다. 리디아 고는 전인지가 여자골프의 간판이 될 만한 성품의 소유자라고 치켜세웠다. 리디아 고는 “전인지는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한다. 전인지의 성품은 모두가 그를 정말로 좋아하는 이유다. 우승 후 그렇게 많은 선수가 샴페인을 터뜨리며 축하해준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전인지에게 ‘웃음 철학’을 물었다. 전인지는 “샷이 안 된다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려봐야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또 웃었다. 전인지는 “웃으면서 플레이하는 것이 내 스타일이고 그렇게 하면 결과가 더 좋다”면서 “특히 많은 팬의 응원에 감사한 마음이 들다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전인지의 웃음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미국의 골프채널은 “전인지의 미소는 공식적인 여자골프 올해의 미소”라고 평가했다.

전인지의 공식팬카페 ‘플라잉 덤보’의 회원은 8000명이 넘는다. 전인지 팬들은 노란 모자를 쓰고 대회장에서 그를 응원한다. 메이저대회 등 미국에서 열리는 주요 대회에서 원정 응원을 펼치는 열성 팬들도 적지 않다. 늘 웃는 전인지에 반해 한번 ‘꽂히면’ 헤어나지 못하는 삼촌 팬들이 참 많다.

전인지는 긍정적이다. 눈앞에서 우승을 놓치더라도 좌절이 아닌 ‘성장통’으로 받아들인다. 전인지는 “올 시즌 2위와 3위를 3차례씩 하면서 우승을 위한 발판이라고,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나 스스로 언젠가는 우승할 것이라는 걸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메이저 퀸’으로 불릴 만큼 경력에 비해 메이저 우승이 많은 것도 전인지의 긍정 마인드 덕분이다. 전인지는 지난해 한·미·일 투어에서 8승을 거뒀는데 이 중 메이저대회를 5차례 석권했다. 올해 LPGA 첫 우승도 메이저대회에서 챙겼다. 지난해 US여자오픈을 포함하면 LPGA에서 거둔 2승의 무대는 모두 메이저대회다.

전인지의 머릿속에선 더 큰 꿈이 꿈틀거린다. 전인지는 “아직 내 인생의 꽃은 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주부터 일본과 한국에서 연이어 열리는 메이저대회 2연패가 단기 목표다. 전인지는 지난해 일본 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일본여자오픈과 K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정상에 올랐다. 4년 뒤 올림픽 금메달을 깨무는 게 장기 목표다.

인터뷰 = 최명식 부장(체육부) mschoi@munhwa.com
e-mail 최명식 기자 / 체육부 / 부장 최명식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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