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수풀이 우거진 공원과 같은 올스도르프 묘지 모습.
장시정 駐함부르크 총영사
올해는 연초부터 데이비드 보위, 프린스, 무하마드 알리 등 유명인이 유난히 많이 유명을 달리한 해다. BBC 방송에 따르면 올해 1월에서 3월간 유명인 부고를 낸 것이 24회였음에 반해 2015년 같은 기간엔 12회에 그쳤고 2012년에는 5회에 그쳤다고 한다. 올해 유명인 부고 소식이 많았던 이유는 전쟁이 끝나면서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가 노년층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 7월 우리 총영사관 직원들과 함부르크 시내에 있는 ‘올스도르프 묘지’를 방문했다. 1877년 설립된 이 묘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공원식 묘지로 외국에서도 많은 방문객이 찾아오는 곳이다. 주말을 이용해 직원들 각자의 희망에 따라 참여 여부를 물어보고 묘지 방문행사를 진행키로 했는데 뜻밖에도 많은 젊은 직원이 함께 참여했다. 소풍이나 등산이 아니고 뜬금없는 묘지 방문이라니. 그것도 주말에. 그래서 희망자가 많지 않겠다 싶었는데 의외였다. 말들은 안 하지만 한 번쯤은 죽음에 가까이 가보고 싶은 생각들이 있었나 보다.
이 묘역의 설계자인 빌헬름 코르데스는 묘지가 망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도시인들에게도 휴식을 줄 수 있는 쉼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무와 꽃과 산책로가 있는 영국식 정원처럼 만들었다고 한다. 나지막한 언덕과 연못이 탁 트인 녹지와 어우러져 있고, 사이 사이로 개울이 흐른다. 이곳에는 450여 종의 수목과 100여 종의 조류가 서식한다. 대자연 학습장인 셈이다. 코르데스는 실제로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이 무언가 배워가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묘역 간 경계를 만들지 않아 더욱 편안한 느낌이었다. 크고 화려한 비석들로 가득 차 버린 듯한 유럽의 여느 묘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여기에서 안식하고 있는 주인공들의 생전 삶이 어떠했는지 몰라도 지금은 누구보다도 호사를 누리는 것 같다.
‘부루노 테슈’, 그는 1933년 나치가 집권하면서 처형당한 56명의 청년과 함께 묻혀 있다. 묘비에 1913∼1933년으로 표시돼 있는 것을 보니 20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이 묘역에는 나중에 그들의 부모들도 같이 묻히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그리고 ‘고모라 묘지’, 2차대전 중 고모라 공습으로 사망한 함부르크 시민들의 묘지인데, 가족묘가 아닌 동네별로 구분된 묘역이다. 고모라 공습은 1943년 7월 마지막 주에 이뤄진 연합군의 대공습으로 사망자만 4만 명에 이르렀다. 1945년 2월 6만 명의 사망자를 낸 드레스덴 폭격과 함께 대참화로 기록되고 있다. 많은 시신이 신원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탔기 때문에 동네별로 수습했다 한다. 이들은 동네 이웃사촌에서 영원한 이웃사촌이 된 셈이다.
‘내가 어떻게 독일인을 사랑하는 것을 배웠나’의 저자, 미국인 찰스 그린은 독일의 묏자리가 50년 시한이 있으며 25년만 사용할 경우는 할인해준다는 것을 알고서 이를 ‘독일적인 공정함’이라 했다. 빈의 ‘음악가의 묘지’에서 보듯이 인류가 기억할 만한 위인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차지하고 있던 묏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곳 올스도르프 묘지에서도 묘지 주인이 바뀐 곳이 많은데 옛 주인의 묘비에 새 주인의 묘비를 덧붙여 주인이 바뀌었음을 볼 수 있다. 돈 많은 함부르크 상인들의 묘지도 검소하다. 이들의 전통은 돈 많은 티를 내지 않는 것이라 한다. 얼마 전 에쏘 회장이 넓은 무명묘지를 사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자신도 그곳에 비석 하나 없이 묻혀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서양의 기부문화가 묏자리에서도 이어지는 모습을 본다.
우리는 어떤가. 묏자리 대부분은 시한이 없다. 선산이라는 곳은 더욱 그렇다. 묘지에 시한이 있다는 것은 사람이 태어났다가 죽으면 그 죽은 삶조차도 지구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인데 이런 인식은 분명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독일 기업이나 부자들의 사회공헌 활동이나 기부행위가 생활화되어 있는 것도 이러한 인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사회적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성공적인 독일모델의 아주 소박한 출발점이 아닐는지. 과거 중국의 역사에서 보듯 진시황은 천년만년 살고자 했고 순장이라는 끔찍한 관습도 생겨났다.
우리 사회의 탐욕스러운 일단의 모습들도 이런 ‘천년만년’이라는 아주 불합리한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닌지, 자자손손 영화를 누리겠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이 사회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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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정(58) △제15회 외무고시 △주독일1등서기관 △중구과장 △주몬트리올참사관 △주독일공사참사관 △한국국제협력단 이사 △주카타르대사 △주오스트리아차석대사 △주함부르크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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