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차이나’ 모든 토대, 鄧이 닦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1989년 4월 개혁파 후야오방이 사망한 뒤 추모식에 자리한 자오쯔양, 덩샤오핑과 리펑. 후의 사망은 톈안먼 사건으로 이어지며 중국의 개혁 개방은 위기를 맞게 된다. 아래 작은 사진은 1989년 톈안먼 사건 당시 모습. 민음사 제공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전 3권) / 조영남 지음 ／ 민음사

세계는 지금 미국과 중국, 이른바 주요 2개국(G2) 시대로 재편되었다. 혹자는 중국이 곧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 국가 시대를 구가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세계 지형의 변화무쌍함이 그것을 용인할지 알 수 없지만, 세계가 한참 동안 발아래로 깔보던 중국이 급부상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개혁과 개방’ ‘파벌과 투쟁’‘톈안먼 사건’의 세 권으로 구성된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시리즈는 오늘의 중국이 경제, 군사, 정치,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강대국 지위에 오른 것이 “덩샤오핑 시대가 이룬 토대”임을 강조한다. 중국 정치에 정통한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망한 1976년 9월부터 1992년 공산당 14차 당대회까지를 세 권의 책으로 나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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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개혁과 개방’은 1976년부터 1982년까지 개혁 개방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 )의 행적을 면밀하게 묘사한다. 덩샤오핑 시대는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한 1978년 12월 공산당 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부터 그가 사망한 1997년 2월까지의 기간”을 가리키지만, 저자는 1976년 9월 마오쩌둥의 사망시기부터 실권을 잡기 직전인 2년의 기간에 주목한다. “중국이 개혁 개방을 부분적으로 실시하는 탐색기이면서 동시에 덩샤오핑이 집권을 준비하는 과도기로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 덩샤오핑은 경제 질서 회복에 사활을 걸었는데, 여러 산업 분야 중 철도를 “국민경제의 동맥”이자 “핵심 고리”로 판단하고 정돈하기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농업개혁, 기업개혁, 임금제도개혁, 외국의 선진 기술 도입과 무역 확대를 담은 ‘공업 20조’를 착실하게 수행하며 개혁 개방의 원형을 확립해 나간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후원으로 성장한 화궈펑을 물리치고 집권하면서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당-국가’가 전체를 통제”하는 시스템을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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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파벌과 투쟁’은 1983년부터 1987년 사이, 개혁 개방을 두고 보수파와 개혁파의 노선투쟁 등을 담고 있다. 1982년 공산당 12차 당대회 이후 덩샤오핑의 권력은 공고했지만, 보수파와 개혁파는 특히 개혁의 속도와 범위를 놓고 격돌했다. 개혁파를 이끈 것은 당연히 덩샤오핑이었다. 그는 “경제개혁 우선” 혹은 “경제개혁을 위한 정치개혁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시장경제의 전면적인 도입을 주장한 시장주의자로 흑묘황묘론(黑猫黃猫論)이 이를 대변한다. 정책 결정과 집행의 효율성 면만 보더라도 “사회주의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보다 우월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불어 덩샤오핑은 과감한 대외개방을 주장한 “개방론자”이기도 했다.

반면 보수파는 “계획 위주와 시장조절 보완”을 주장했는데, 이는 “중국 사회주의의 주요한 특징인 농촌 인구가 전체 인구의 80%를 점한다”는 사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혁명 이후 30년 넘도록 농민은 굶주렸고 도시라고 생활 수준이 향상된 것은 아니다. 결국 이런 특수성을 인정하고 “대외개방을 하되 점진적이면서 제한적인 개방”을 해야 한다고 보수파는 주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개혁파와 보수파의 투쟁이 반드시 권력투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경제 영역이 아닌 정치적 견지에서 보면 개혁파와 보수파 모두 보수파에 속하는데, 덩샤오핑은 보수파와 개혁파의 조정자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3권 ‘톈안먼 사건’은 덩샤오핑의 집권 후반기, 즉 정치적으로는 불안했지만 “덩샤오핑의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건설 이론”이 확립된 시기를 다룬다. 1989년 세계는 요동치고 있었다.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민주화 과정에 속도를 냈고, 폴란드와 헝가리 등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일당 독재는 흔들렸다. 개혁 개방의 영향으로 중국 내 민주화에 대한 열망도 차츰 높아지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개혁 개방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는데, 당정간부의 부패와 급격한 물가상승과 생활난, 소득격차로 인해 사회적 불만과 불안이 증폭됐다. 지식인들은 민주적 정치개혁을 요구했고, 마침내 1989년 톈안먼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언론 자유를 포함한 과감한 정치 개혁을 추진하다 실각된 인물 후야오방의 죽음과 이후 추모 열풍은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톈안먼 사건을 ‘동란(動亂)’으로 규정하면서 계엄군을 동원한 유혈진압에 나선다. 덩샤오핑을 비롯한 당시 중국 지도부가 개혁 개방이라는 앞선 시각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사고방식은 여전히 문혁 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저자는 진압 후 중국 내 다양한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지 못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체 상황을 파악해 활동 계획을 수립하고, 집권 세력과 민주 제도의 도입을 둘러싼 협상을 벌이는 등의 역할은 정치 조직과 사회단체의 몫”인데 중국에 이런 시스템이 부재했던 것이다. 결국 톈안먼 사건으로 대표되는 1989년 학생운동은 “부패 척결, 민주적인 정치개혁, 언론과 결사의 자유와 같은 추상적인 목표, 학생운동의 재평가와 학생조직의 합법화라는 과정상의 목표” 어느 것 하나 달성하지 못했다. 민주화 열기는 점차 높아졌지만 “개혁 개방의 공산당 노선과 공산당 일당제의 현행 정치체제를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정치조직이나 사회단체가 없는 것은 경제에 의해 좌우되는 오늘날 중국 사회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발아래로 보던 중국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러러볼 필요도 없다. 오늘 현실이 된 중국을 알기 위해 어제 일을 살피고, 내일을 대비하면 될 뿐이다.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시리즈가 어제의 중국을 알고 오늘과 내일을 내다보는 데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을 듯하다.

장동석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