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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명작의 공간 게재 일자 : 2016년 09월 30일(金)
전설과 현실 맞닿은 지중해… 갈라진 南北의 아픔과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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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단의 비극을 그린 소설 ‘아테네 가는 배’의 배경이 된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뒤쪽으로 푸른 지중해가 넘실대고 있다. 1980년대 소설 속 그리스와 지중해는 전설과 현실이 마주치는 공간이자 분단된 남북이 하나 되는 공간이었다.

52 정소성 소설 ‘아테네 가는 배’ 의 그리스

제17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아테네 가는 배’는 민족분단의 비극을 다룬 중편소설이다. 1985년 ‘문학사상’ 3월호에 발표된 이 작품은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 유럽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남북 분단과 그리스 신화를 대비시키면서 이야기를 펼쳤다. 이탈리아 항구도시 브린디시에서 서양사를 전공하는 역사학도인 종식이 주인공이다. 그는 오랜 외국 유학생활과 학업에 지쳐 처음으로 짬을 내어 그리스 여행에 나선다. 그는 학업을 따라가기도 벅찬 가운데서도 틈만 나면 생계를 위한 노동에 시달리느라 무척 여유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국인 유학생 사회에서 따돌림을 받고 있는 주하는 종식을 유난히 따른다. 주하는 프랑스 유학생으로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을 지니고 있으나 이를 드러내지 않고,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할 만큼 장애가 있지만 매우 밝은 성격의 인물이다.

그에게는 불가리아계 그리스인으로 따뜻하고 여린 마음을 지닌 엘리자베스라는 애인이 있다.

아테네로 가는 배에서 우연히 주하를 만난 종식은 그에게서 놀라운 사실을 듣는다. 주하의 어머니는 실향민이며, 이북에 아버지가 생존해 있다는 것이다. 종식으로선 처음 듣는 얘기다. 주하는 이에 대해 한 번도 내색을 한 적이 없다.

주하가 그리스로 향하는 배에 오른 것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주북한 불가리아대사를 지낸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를 통해 제3국에서 부자간의 상봉을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배가 그리스 테살로니키 항구에 도착했을 때 주하는 아버지가 워낙 고령이라 거동이 불편한 나머지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절망감에 졸도했던 주하는 품 안에 고이 간직해온 어머니의 백발 머리채를 엘리자베스에게 전한다.

지중해의 밤, 저 멀리 항구에서 뱃고동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지팡이에 의지한 주하가 신화의 숲으로 뒤덮인 낯선 땅 위에 서 있다.

30여 년 전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인 소설이었다. 1980년대 초, 2차세계대전 후 시작된 ‘냉전체제’의 긴장이 뚜렷할 때였다. 유학생들의 거동을 감시하는 국내 정보기관의 움직임도 종종 느껴졌다.

▲  1983년 프랑스 유학시절 그리스 아테네를 방문한 정소성 작가. 정소성 작가 제공
나는 프랑스 동남부의 그르노블대에서 불문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소설 속 종식처럼 고된 유학생활을 이어갔다. 30세가 넘어 뒤늦게 시작한 유학생활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983년 10월 드디어 박사 학위를 끝마치고 혼자 여행을 떠났다. 이탈리아까지 기차로 간 후 로마와 나폴리를 거쳐 이탈리아 반도의 발뒤꿈치에 위치한 브린디시에서 발칸반도로 향하는 이오니안스타호에 몸을 실었다. 넓게 펼쳐진 아드리아해와 지중해를 바라보며 문득 그리스 신화를 떠올렸다.

트로이를 함락시킨 그리스의 왕이 절세미녀인 트로이 왕의 아내를 그리스로 데려와 자신의 아내로 삼으려 했으나 도무지 마음을 열 수가 없었다. 그리스 왕은 그녀에게 트로이에 살던 때의 궁전과 똑같은 궁전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궁전에서 하도 많이 울어서 궁전 앞으로 강이 생겼다는 전설이었다.

소설은 이오니안스타호를 타고 다녔던 유학생활 최초의 여행과 그리스 신화를 뼈대로 해서 민족의 비극을 생각해본 것이다.

소설 속 주하의 실제 모델인 유학생 친구의 존재도 한몫했다. 몸에 장애가 있던 그는 같은 그르노블대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분단의 비극적 이야기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오니안스타호로 누볐던 지중해와 그리스 아테네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소설 속에서 주하의 비밀이 드러나고, 주하가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를 만나려 했던 공간으로서 내게 뚜렷하게 각인돼 있다.

이 소설은 여러 가지 다른 의미의 얼개로 이루어진 공간을 제시한다. 단일민족의 삶의 터전, 즉 문화의 공간을 떠받치는 얼개들이 여러 개 있다. 이런 여러 얼개들에 의해 소설은 구성된다. 그리스는 전설과 현실이 마주치는 시간적 인식의 공간이자 분단된 남북이 하나 되는 정치적 공간이다. 동시에 아내와 남편, 부부애의 공간이고 프랑스와 한반도의 지리적인 공간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이 소설의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소설이 발표될 당시만 하더라도 남북관계는 정말 엄중했다. 지금은 탈북자들도 있고, 비정기적으로나마 이산가족 상봉의 기회도 있다. 그러나 당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외국으로 나갈 때에는 누구도 예외 없이 국가 정보기관에 가서 사전 반공교육을 받았고, 귀국해서는 보고서를 써내야 했다. 그리고 여권에도 외국여행 중 목적지 외에 환승지나 임시기착지도 필히 기재하도록 했다. 다시 말해 남북사람들이 얼굴을 대할 수 있는 일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었다.

죽어서 저승에서 만날 수 있는 것 이외에는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일이란 있을 수 없으니 소설 속에서처럼 기발한 아이디어로 만나지는 못할망정 생사의 소식이라도 전하면 천만다행이었다. 하기야 지금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상황이 크게 개선된 것도 아니다.

분단된 남북을 이어주는 끈은 한민족이라는 개념이다. 민족은 공통된 삶의 터전, 즉 문화의 공간을 가진 인간의 집단이다. 보리밥 먹고 된장국 마시고 김치 먹고 씨름대회하고 윷놀이하는 삶의 모습! 이것이 우리 민족이 이룩한 문화의 공간이다. 이것을 행하는 공간이 국제정치력의 농간으로 둘로 찢어졌을 때 그 같은 놀이 공간을 가진 사람들의 무리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된다.

같이 놀이하던 삶의 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좋은 멍석을 깔아주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놀이의 흥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선조들의 실수로 민족의 힘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우리를 농간한 소위 강대국들의 모습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5000년 동안 단일민족이었다. 덩치는 작지만 잘만 다스렸다면 강대국의 반열에도 오를 수 있는 규모의 땅과 인구를 가지고 있다. 서로를 믿지 않고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던 탓에 강대국들의 농간에 휘말려 고통을 겪어야 했다.

분단가족이건 아니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민족분단의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 민족을 분단민족으로 만든 이들은 흔히 말하는 강대국들이다. 구한말 우리나라를 강점한 일본부터, 역사적인 종주권을 주장하면서 끊임없이 파병한 중국, 일본과의 태평양전쟁 당사국인 미국, 카이로회담에서 미국의 권유를 받고 뒤늦게 태평양 전쟁에 참여한 옛 소련 등이 한국을 두 개의 나라로 만든 장본인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소련의 스탈린에게 만주와 38도선 이상의 북한에 소련군의 진주를 허용했다. 죽자 살자 식으로 지독하게 버티는 일본을 응징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중국·미국·소련 이 네 나라가 한반도 분할의 당사국들이다. 소위 세계 4대 강국들이다. 이들 4강이 태평양전쟁의 종말과 더불어 우리 상하이(上海)임시정부에 정권을 넘겨주고 깨끗이 한반도에서 물러났더라면 오늘과 같은 비극은 야기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35년간 나라를 잃었다가 타국의 힘으로 되찾았으나 두 동강이 난 상태였다. 여기에서 우리 민족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갈라진 민족끼리 서로 죽이는 전쟁을 치렀고 국토는 분단된 상태 그대로다.

요즘은 다문화 국가론이 부각되고 있으나 우리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단일 민족국가라고 했다. 체격이 비슷하고 얼굴 모양과 머리털 색깔이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민족이 아니다. 같은 삶의 방식, 즉 문화가 같아야 단일민족이다. 인도에 가면 한국사람들과 거의 비슷한 외양의 한 종족을 발견하곤 놀라게 된다. 인도인은 세 개의 이질적인 모습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양인과 같은 아리안계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계, 그리고 동양족이 그들이다. 동양족 중에서 특히 한국인과 일본인을 닮은 족속이 있다. 그런 외양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족이 아니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문화의 차이란 결국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다.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먹고 자고 놀이하는 방식이 곧바로 문화이다. 놀이하는 방식이라고 말하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생각하기 쉽지만, 그림 그리고 책 쓰고 전쟁하는 것도 놀이하는 방식에 포함된다.

결국 문화의 차이란 인간이면 이 지구상에서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서 행하는 행위, 즉 먹고 자고 노래하고 춤추고 생각하면서 책 쓰고 전쟁하고 농사짓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의 문화, 즉 비슷한 삶의 방식을 가진 어떤 인간의 집단은 필히 어떤 일정한 지역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화의 본질 같은 것을 깨닫게 된다. 즉 문화는 어떤 일정한 지역적 공간 속에서 특징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문화와 지역성은 필수적이다.

동일한 삶의 공간은 민족형성의 기본 조건이다.

이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치른 브라질의 경우, 국가 브라질을 형성하는 민족은 누구일까. 브라질 국민은 원주민과 포르투갈족의 혼성민족이다. 인디언 계열의 원주민도 아니고 정복자 포르투갈족도 아니다. 인디언·포르투갈족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다른 민족이다.

텔레비전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이들 정치지도자들의 얼굴을 보면 유럽의 서양인을 닮은 이도 있고, 브라질 축구영웅 펠레처럼 검은 얼굴도 볼 수 있다. 이들을 인디언·포르투갈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두 민족 간의 피의 섞임 때문이기도 하지만, 브라질이라는 새로운 국토에서 같이 살면서 이루어진 동질의 문화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포르투갈인들은 약소민족적인 자각에서 비롯된 유순한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 똑같은 투우를 해도 스페인 사람들은 소를 죽이지만, 포르투갈인들은 소를 죽이지 않는다. 바스쿠 다 가마 등 포르투갈인들이 대서양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선 동기도 영국·스페인·프랑스인들과 같은 강력한 정복 의지 탓이 아니었다. 그들은 브라질을 정복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영역에서 같이 산 것이었다. 즉 혼혈을 한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민족이 탄생한 것이다.

한민족의 문화공간인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다. 문화공간이 둘로 갈라진 것이다. 민족도 갈라졌다. 그러나 한반도는 여전히 한인들의 삶의 터전이자 문화의 공간이다. 소설 ‘아테네 가는 배’는 그 공간을 신화적 성찰로 들여다본 것이다.

정소성 소설가·단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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