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의 동네 집 이야기>안산 맑은 샘물 흐른 곳… 떡도 사람도 좋은 영천시장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서대문구의 대표적 전통시장인 영천시장은 최근 인근 직장인들을 겨냥한 시장 뷔페 ‘고루고루’를 시작하는 등 새로운 사회문화적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변신을 진행 중이다. 김선규 기자 ufokim@

낮 12시를 조금 넘은 시간, 하루 중 손님이 가장 뜸한 시간인데도 서울 독립문 인근 영천시장(서대문구 영천동)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사람들 손에는 휴대용 도시락이 들려 있고 도시락에는 맛있게 보이는 시장 음식들이 한가득 담겨 있다. 얼마 전 붉은 벽돌로 새 단장을 한 영천시장은 점심시간을 활용해 시장 인근 직장인들이 먹거리를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시장 뷔페 ‘고루고루’를 시작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영천시장은 100여 년 전부터 이곳에서 열리던 영천장에서 유래가 됐다고 한다. 서울의 오래된 시장들은 성문과 관련이 있는데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처럼 서대문 인근의 영천시장 역시 짧지 않은 역사를 지녔을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이야 서울의 중심지 중에서도 중심이지만 소설가 박완서가 자전적 소설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에서 밝힌 것처럼, 개성에서 바로 서울로 입성하지 못하고 영천시장 인근 현저동에 살면서 주소지만 옮겨 성안의 학교를 다녔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이곳은 사람의 교류와 함께 성안의 공산품과 성 밖의 농수산물이 만나는 최적화된 장소였을 것이다.

영천시장은 안산 골짜기의 맑은 샘물이 흘러내리는 천(川) 위에 지어진 시장이다. 시장 안에는 석교라는 상호를 붙인 가게들이 있는데, 지금은 사라졌지만 조선 말 수선전도에 그려져 있는 돌다리(석교)에서 유래됐다. 이 지역의 샘물이 과거시험 합격에 영험하다 하여 조선시대 과거 응시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고 하니 물이 좋은 곳에서 생산하는 음식이 맛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천시장에 떡집들이 성행 중인 것도 질 좋은 물과 연관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표 음식으로 떡, 꽈배기, 떡볶이가 유명하지만 영천시장의 진면목은 다양한 식재료에서 반찬, 문구, 열쇠, 중고서적 등 없는 것 없이 생활에 필요한 작은 것까지 고루고루 판매하고 있는 동네시장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동네 사람들은 멀리 가지 않아도 웬만한 것은 시장 안에서 다 해결할 수 있다.

전통시장은 마을의 흥망성쇠와 운명을 같이한다. 마을이 번성하면 시장도 번성하고 마을이 쇠퇴하면 시장도 그 모습을 잃게 된다. 그래서 도심의 오래된 마을을 활성화하려는 도시재생사업에서 전통시장의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를 생각해보면 가까운 곳에 시장이 있어야 생활하기 편하다. 대형마트는 대량으로 물건을 살 때는 좋지만 급하게 필요한 생필품을 구매하는 것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의 시장이 더 편리하다.

더구나 시장은 단순한 물품 구입의 기능만 수행하는 곳은 아니다. 예로부터 시장은 지역의 중심공간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사회문화적 공감대를 이루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지금도 선거 때만 되면 시장을 찾는 정치인들을 보면 아직도 그 기능은 충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통시장을 지역의 새로운 사회문화적 공간으로 재설정하기 위한 노력이 여러 곳에서 시도되고 있다. 광주 대인시장의 경우 시장 전체를 문화공간화해 시장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대구 방천시장에서는 가수 김광석의 이야기를 도입해 전통시장에 익숙지 않은 젊은이들을 불러들여 지역과 시장을 활성화하고 있다. 이 시장들은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어 지역의 주민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성공사례 속에는 상인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수원 못골시장 상인들은 스스로의 서비스개선과 환경개선을 통해 ‘대박’ 가게들을 만들고 있다.

밤에 보는 영천시장은 낮보다 더 화려하다. 동네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붉은색 벽돌건물 안으로 화려한 불빛이 출렁인다. 미디어갤러리로 불리며 시장 천장에 멋진 그림을 그려내는 발광다이오드(LED) 패널은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은 늦은 밤,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을 지키는 보안등 역할을 하고 있다. 오사카(大阪)의 부엌이라고 불리면서 400년 동안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일본의 구로몬(黑門)시장처럼 오래도록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우리의 전통시장을 영천시장에서 기대해 본다.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