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전망대>트럼프의 납세의혹과 세제개편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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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3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가 대표적인 경합주의 하나인 콜로라도주 러브랜드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유세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미국 대선을 5주 앞두고 터져나온 트럼프의 납세 회피 의혹으로 표심이 변화할 조짐이 보이자 트럼프 진영이 긴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신보영 워싱턴 특파원

2016년 미국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은 워싱턴을 중심으로 한 주류 인사들과 일반 유권자 간 괴리 현상이다. 이게 민주·공화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각각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 도널드 트럼프 등과 같은 ‘아웃사이더’ 돌풍이 거셌던 근본 원인이었다. 이런 괴리는 11월 8일 선거를 5주 앞두고 터져나온 공화당 대선 후보 트럼프의 납세 회피 의혹에서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트럼프 캠프에는 최대 악재가 될 수 있는 요건을 갖춘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미국 내 여론은 다소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납세 내역을 특종 보도한 뉴욕타임스(NYT) 등 언론은 일제히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면서 비판적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이를 계기로 트럼프에 대한 파상 공세를 펼치고 있다. 특히 클린턴 전 장관이 지난 9월 말 제1차 TV 토론에서 트럼프의 납세 회피 의혹을 집중 제기했던 만큼, 이번 사안은 클린턴 캠프에는 선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의 지지율 만회를 무산시킬 수 있는 안성맞춤 호재다.

하지만 밑바닥 여론은 다소 다르다. 플로리다주 출신의 한 미국인 친구는 최근 기자와 만나 “절세를 비난할 수는 없다”면서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부자가 돈을 투자해서 변호사·회계사를 고용해 세금을 절감했다면, 그 절세는 정당하다는 논리다.

사실 트럼프는 1987년 내놓은 자서전 ‘거래의 기술(원제 Art of Deal)’에서 1980년대 부동산 개발 과정에서 뉴욕시 당국과의 협상을 통해 얼마나 많은 세금을 감면받아서 이득을 냈는지를 집중 설명하고 있다. 절세가 부 축적의 수단이었다.

트럼프가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고 할 수는 있지만, 딱 불법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고 ‘정치인’ 트럼프에게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말이다.

주류층과 일반 유권자 간 괴리는 감세 논쟁으로 가면 더욱 커진다. 최근 뉴욕에서 만난 아만다 한 뉴저지 주립 킨 대학 경영학과 교수는 “소득세에 사회보장세, 퇴직연금 등까지 다 따지면 사실상 소득의 50% 가까이를 세금으로 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중산층이 퇴직 이후 자칫 잘못하면 빈곤층으로 몰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행 최고 소득세율(39.6%)을 33%, 법인세율(39%)도 15%로 인하하고 저소득층 세금 감면과 귀환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을 담고 있는 트럼프의 세제개편안을 주류층에서는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실제로는 중산층 지지자가 적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반면 클린턴 전 장관의 세제개편안에는 중산층에 대한 배려가 없다. 트럼프 지지층을 단순히 분노한 백인 남성들뿐이라고만 폄하할 수 없는 이유다.

한국에서도 야당인 국민의당·더불어민주당이 내년도 예산안 심의를 앞두고 최근 세제개편안을 발의했다. 감세안이 아니라 증세안이다. 500억 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25% 최고 세율을 적용하고, 과세표준 200억 원을 초과하는 기업에 부과하는 법인세 최고 세율을 현행 22%에서 24%로 인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 세계에서 경기회복이 가장 빠른 미국이 감세안을 놓고 논쟁하는데, 체감경기가 바닥인 한국은 정반대로 가겠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포퓰리스트’라고 비판받는 트럼프지만, 최소한 트럼프의 세제개편안은 기성 정치권이 해결하지 못한 노동계층·중산층의 좌절과 두려움에 대한 나름의 답은 제시하고 있다. 거야(巨野)의 증세안도 국민의 좌절뿐 아니라 경제상황까지 감안해 고민 끝에 나온 해답인지 묻고 싶다.

오히려 내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아닌 특정 계층에 경기침체 탓을 돌리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기우일까.

boyoung22@